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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동자 Apr 18. 2022

4월 11일 ~ 4월 17일

15주

다림질

4월 11일. 월요일


오랜만에 와이셔츠를 다렸다.


아들이 인턴을 나가면서 양복을 입으니 와이셔츠가 필요하다.

처음에는 세탁소에 맡겼는데 한 개씩 나오는 셔츠를 맡기기도 애매해서

내가 직접 빨고 다림질을 했다.


신혼 초 남편 와이셔츠를 다리던 시절 이후 정말 오랜만이다.

요즘은 기 옷감이 좋아 다림질할 일이 별로 없고

정장은 아예 세탁소에 맡기게 된다.


집안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들 중에 가장 오래됐으면서

가장 쓰임새가 적은 게 바로 이 전기다리미다.


다른 제품들은 기능이나 디자인 등이 계속 업그레이드되는데

다리미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대신에 스타일러스라는 새로운 전자제품이 나왔으니

언젠가 가정용 다리미 자체가 사라지게 될까?



기대감

4월 12일. 화요일


늘 다니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산책을 갔다.


길가 건물에 처음 본 오픈 임박 현수막이 붙어 있다.

4월 28일, 버거킹 오픈.


지난 주말 아들이 혼자만 사다 먹어서 기분이 상했던

그 햄버거 브랜드다.


얼른 사진을 찍어 아들에게 카톡으로 전달을 하고

그 소식에 들떠서 이야기를 나눴다.


햄버거 가게 하나 오픈하는 게 뭐가 그리 대수인가 싶지만

우리 동네는 그렇다.


평생 서울 사람이었던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다.

몇 년 전부터 지방살이를 하고 나서

서울에서 너무 당연한 그 모든 것이 어딘가에서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이소가 생기고, 올리브영이 들어오고

롯데리아, BBQ 치킨이 문을 여는 하나하나가

너무 신나고 반가운 일이 되었다.

 

나름 이게 지방 사는 소소한 즐거움이랄까?



오해

4월 13일. 수요일


저녁 먹고 아들과 싸웠다.


정확하게 말하면 싸웠다기보다는 내가 일방적으로 화를 냈다.

지난 토요일 부탁한 일이 있었는데 오늘까지 감감무소식이다.


토요일 부탁하자마자 바로 진행을 하길래 곧 끝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 말이 없어 다시 물어봤더니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다.

결론은 아무것도 안 한 걸로....


월요일 지나가는 말로 슬쩍 물어봤을 때도 하고 있다고 얘기했는데

나를 기만한 것 같아 더욱 화가 났다.


한참을 다다다 쏘아붙이고 나서 그럼 그동안 뭐 했냐고 물어보니

내 말은 오해했고 해야 할 과제가 많아 무척 바빴다고 사과를 한다.


딴짓하느라 내 말을 무시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일단 화는 좀 가라앉는다.

바빴던 건 맞는 거 같지만 내 말을 오해했다는 건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


그래도 먼저 이야기를 좀 더 했으면 혼자 열 내고 화내는 일은 없었을 텐데.

역시 대화가 필요해.




두통

4월 14일. 목요일


저녁식사를 하고 난 후부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미루었던 상추 모종 심기를 하고 나니 더 심해진다.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 그대로 침대에 뻗어 버렸다.

깜박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12시도 안 됐다.

여전히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고 속도 울렁거린다.


초저녁에는 그냥 갑작스러운 두통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급체인 것 같다.


어쩌다 보니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다 저녁 먹은 데 전부인데

그게 체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이가 들고부터 체하는 일이 많아졌다.

조금만 과식하거나 밀가루나 건조한 음식을 먹으면

여지없이 소화가 안된다.

그래서 가스활명수는 상비약이 되었다.


오늘도 결국 활명수 한 병 먹고 불편한 속을 다스려본다.

요즘 음식에 방심한 것 같다 후회하면서...




오이

4월 15일. 금요일


계절에 따라 많이 나오는 과일과 채소가 있다.

요즘은 슈퍼마켓에 가면 부쩍 오이가 눈에 많이 띈다.


날씨가 따뜻해지니 오이로 만든 여름 음식 생각도 난다.

오이소박이, 오이지 등등


마침 세일을 하길래 오이를 한 꾸러미 사다가 일단 썰고 봤다.

두 개는 대강 깍둑깍둑 썰어서 양념에 버무려 오이김치 담그고

한 개는 어슷 썰어 식초 넣고 새콤하게 무쳤다.


남은 건 길쭉하게 썰어 통에 담아 놓고 입이 심심할 때마다

하나씩 꺼내 먹어야지.


오이 한 꾸러미로 김치에 반찬, 간식거리까지 한 번에 해결이다.




노란 리본

4월 16일. 토요일


중학교 담장에 노란 리본이 매어 있다.

갑자기 무슨 리본이지 했다가 '아!'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이 그날이구나!

벌써 8년이 지났다고 한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이상한 일이다.

지난 일은 아들 입학식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나인데

8년 전 4월 16일의 일만큼은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내가 어디서 무얼 했는지, 누굴 만났는지...


약속이 있어 내부 순환로를 타고 가다 처음 뉴스를 들었고

저녁에 돌아오면서는  다시 그 길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 이해가 안 돼서 내 귀를 의심했었다.


작은 비정상들이 쌓여 어처구니없는 일로 터지고

결국은 가장 어린 생명들이 희생되었다.


이제 다시 그보다 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일들이

쌓이고 또 쌓여 산을 이룰 것 같다.


그래서 다시 두려워진다.



영업 중단

4월 17일. 일요일


자주 다니던 대기업 프랜차이즈 슈퍼에 갔다.

매장 앞을 지나 입구로 가는 데

내부가 어둡고 진열장이 텅 비어 있다.


오늘이 휴무일인 둘째, 넷째 일요일도 아닌데 무슨 일이지

의아해서 매장 입구로 가 보니 진짜 문을 닫았다.


입구에 붙어 있는 폐업 안내문,

주초에 영업을 중단한다는 안내가 붙어 있다.

2주 만에 왔더니 문을 닫는 것도 까맣게 몰랐다.


좀 돌아가야 하지만 근처에 같은 매장이 있으니

그리 가면 되지만 기분이 좀 그렇다.


나름 단골매장이 갑자기 사라진 것도 그렇지만

코로나 이후 문을 닫는 상점들이 너무 많아졌다.

심한 곳은 개업한 지 몇 달 만에 문을 닫는 것도 보았다.


그만큼 살기 힘들어진 세상이 돼가는 것 같아

내 일이 아닌데도 그냥 내 일처럼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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