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주
4월 19일. 화요일
즐겨보던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TV를 꺼버렸다.
기후위기와 이로 인한 야생동물의 죽음을 통해
인간과 지구 위기에 대해 다루는 내용이었다.
오늘은 유리창에 충돌해 죽는 도시 속 새들이 나왔다.
유리창이 있는 곳에서라면 고층빌딩, 교회 심지어 방음벽에까지
부딪쳐 기절하거나 죽는 새들이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다.
10여분 남짓밖에 보지 않았는데 차마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서
TV를 꺼버렸다.
너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일 거다.
그래도
'쾅!'
유리창에 부딪치던 새들의 모습은 쉽사리 잊을 수가 없을 듯하다.
4월 20일. 수요일
길가 풀밭에 들꽃이 많이 피어 있다.
전에는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 같은 꽃만 보였는데
잠깐 눈을 내려 땅을 보니 우거진 풀숲에 작은 꽃들이 눈에 띈다.
작지만 노란 꽃, 하얀 꽃, 보라꽃 갖가지 색으로 화려하다.
원래 풀밭에 이렇게 많은 꽃이 피었었나?
그런데 이름을 아는 건 하나도 없다.
그중에 눈에 띄는 하나, 노란색 민들레.
이름을 아는 유일한 꽃이 반갑다.
4월 21일. 목요일
저녁에 멍게를 먹었다.
멍게를 사는 일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일이다.
가족 중에 멍게를 먹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다.
돼지고기는 못 먹고, 소고기도 살코기만
닭고기도 가슴살만 먹는 내가
호불호가 갈리는 멍게는 좋아한다.
가리는 음식이 없는 사람들도
멍게는 그 특유의 향 때문에 안 먹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오묘한 향 때문에 군침이 돈다고 하면
다들 신기해한다.
어려서부터 가리는 음식이 많다고 엄마에게 핀잔을 많이 먹었는데...
산낙지에 해삼, 그리고 번데기까지 너무 좋아하는 나는
입이 짧은 게 아니라 그냥 취향이 좀 다른 것뿐이었다.
4월 22일. 금요일
주민센터에 갔다가 여권을 온라인 발급받을 수 있다는 안내서를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여권의 유효기간이 다가오는 것 같아
갱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여권을 찾으니 어디에 두었더라 기억도 없다.
책사상 서랍 구석구석을 뒤져
'세 상 에...'
여권 만료기간이 이미 1년 전에 끝나 있었다.
2020년 이후 해외여행을 포기하고 있어서
여권을 들여다보지도 않아서 유효기간이 끝난지도 몰랐다.
새삼 그동안 코로나로 여행이 멈춰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 여행을 향한 설렘이 시작되는 것 같다.
여권을 다시 만들려면 사진부터 찍어야 하나 싶어
집 근처 사진관을 검색해 본다.
4월 23일. 토요일
2월 말에 영화 대신 소설을 먼저 보았다.
주말 TV로 볼만한 영화를 뒤적이다 마침 2000원 할인권도 있어
드디어 영화를 보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 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를 바탕으로
단편소설이 3시간짜리 영화가 되었다.
소설에는 없는 많은 상황과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신기하게도 소설의 연장선에 있는 느낌이다.
정말 소소하고 잔잔한 이야기들 뿐인데도
3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가 말을 하고 이해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그 말뜻을 이해한다고 해서
정말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인간을 소통하게 하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진심과 공감이라는 것을
깊은 울림을 통해 전해 준다.
4월 24일. 일요일
코로나 이후 체육관을 찾기가 힘들어 좀 더 열심히 하게 된 홈트.
2년 넘게 이런 채널, 저런 채널, 인기 유튜브 홈트 채널들을 따라 했다.
이제는 맨손 운동을 넘어 덤벨을 이용한 홈트를 하느라
1kg, 3kg 중량별로 덤벨도 장만하고
다리나 팔에 끼워 쓰는 루프 밴드도 샀다.
처음엔 요가매트에서 시작해 운동복이었는데
이젠 다양한 운동 기구까지 필요한 게 늘었다.
집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게 홈트의 장점인데
이래도 되나 싶어 살짝 갸우뚱하게도 된다.
그래도 나 전보다 더 건강해지고
덤으로 라인도 쫌 살아난 거 같은데
그럼 된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