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증을 반납하러 가서 퇴사하는데요, 했더니 직원분이 나를 보며 퇴사하세요? 놀란다. 옆에 있던 동료 분이 '아는 분이예요?' 하니 알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래도 기억에 없는 얼굴이다. 약간 뜸을 들이시더니 예전에 업무 도움을 받았었다고 한다. 내 이름이 워낙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나보다, 했지만서도 5년 전에 하던 업무인데 누군가 내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게 어떤 발자취처럼 느껴졌다.
2007년부터 사용하던 사원증과 작별할 시간
퇴직날짜 6월 21일은 "UN세계요가의날" 이라고 한다. 이런 우연이 있나 싶은데 참 신기하다.
아련한 기억들
매일 아침 나는 몸담고 있던공장뷰를 바라보며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련한 그 곳
나보다 먼저 퇴사한 어떤 이는 고속도로를 지날 때 보이는 회사 건물만 봐도 토가 쏠린다고 했다. (다소 과격한 표현이지만 바꿔쓸만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누군가의 생계를 책임져 주고 커리어를 만들어준 소중한 회사인데 꿈에서도 보고 싶지 않은 곳으로 기억되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회사라는 존재 자체보다는 그 사람을 내쫓은 그 누군가를 향한 분노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분을 지독히도 괴롭히던 팀장은 여전히 승승장구 잘 다니고 있다.
왜 퇴사하세요?
3년 전쯤 같이 일하던 파트너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 왔다. 흔히 말하는 갑을 관계였고, 내가 어린 갑이었다. 그 분은 나에게 "을" 처럼 굴지 않았다. 갑을 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동등하게 서로 할 말은 하고 쿨하게 일했다. 재미있었고 성과도 났다.
그 분이 이직하면서 3년 가까이 잊고 지냈는데 카톡 프로필을 보고 뜬금없이 묻는다. 그 정도로 대단한 사진은 아니었는데 ㅋ
나 또한 그 곳에 절대 용서하지 못할 누군가가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게 퇴사의 이유는 아니다. 계속 직장인으로 살아도 미래가 불안한 건 똑같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하루살이 같이 살고 싶지는 않다. 그 안에서의 나는 영혼 없이 살았고그래서 늘 불안했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내 삶을 너무 타인에게 맡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과 향하는 곳을 알면 타인의 중요성은 뚜렷하게 약해진다고도 했다.
나는 거기서 항상 "을"처럼 굴었다. 나를 중심에 두지 않고 타인의 목소리에 너무 민감했다.누군가는 나에게 쉬운 길을 두고 왜 어려운 길을 가려 하냐고 물었다.명확했다. 나에겐 거기가 쉽지 않다. 또 누군가는 어차피 돈 벌려고 일하는 건데 돈 많이 주는 곳이 최고 아니냐고도 했다. 그런가? 난 잘 모르겠다. 후회는 하더라도 나중에 할란다 ㅋㅋ 어차피 죽을 때 되면 못해본 것에 대한 후회가 더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