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사진을 봐도 그렇고 선생님이 이 동작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왜 수업을 이렇게 짰어요?
M : 피크포즈를 '밧다 파르스바코나'로 정했고 거기로 가기 위해서 몸통을 비틀어내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수업을 구성했습니다.
T : 선생님, 이 동작 한번 취해 보세요.
(나의 몸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며 자세을 하나씩 만들어주시는 강사님. 내 몸은 이리 삐그덕 저리 삐그덕)
T: 본인이 이 동작의 느낌을 알아야만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고 했잖아요. 느낌을 잘 모르겠으면 미리 조언을 구하기라도 했으면 좋았겠죠.
요가 TTC(Teacher Training Cource)의 마지막 티칭 실습에서 날카로운 피드백들이 쏟아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아사나만 가르친다." 수업 시간에 익히 들었던 말이지만 요가 동작에 있어서 완성이라는 것은 없다. 내가 완전히 소화해 낼 수 있는 동작들로만 구성하자니 실습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제약이 컸다. 고심 끝에 시퀀스를 짜고 동선을 짜고 일주일 내내 멘트를 외워가며 준비했던 수업이었다.
실습이 끝나고 나니 이 시간을 위해서 노력했던 시간들과 5개월간 수련하면서 체력이 달려서 욕심만큼 해내지 못했다는 자책이 밀려오면서 내 몸이 원망스러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한더위가 시작되고부터 최근 2개월은 아토피 재발과 왼쪽 이상근 부상으로 수련을 게을리해왔던 것이다. 요가를 오래 하면서 유연성도 많이 늘었고, 요가를 못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세계를 들여다보니 기예 수준의 아사나를 멋지게 소화해 내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게다가 40대에 접어든 내 몸이 젊은 피 도는 20대의 싱그러운 몸을 따라잡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요가는 아사나가 전부가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내 강점인 비즈니스와 해부학 이론을 접목해서 내 몸을 건강하게 가꾸면서 웰빙과 치유의 요가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자기가 요가를 너무 좋아하는 거 아는데 이러다가 좋아하는 마음이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돼.
남편이 며칠 전 수련에 진전이 없는 듯 해 속상해하는 나를 보며 한 말이다. 내 대답은이랬다.
최소한 아직은 아니야
어제 실습 이후에 내 눈물의 의미는 뭐였을까.
기대했던 만큼, 노력한 만큼 타인의 평가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세상은 늘 내 기준과 타인의 기준이 일치하지 않는 상태로 흘러간다. 연습한 만큼 보여줬다면 그걸로 된 것인데 요가를 20년 동안 한 사람의 기준에서 지적하는 내 몸의 결함을 더 크게 받아들였다. 이런내 몸으로는 요가를 가르칠 수 없는 것일까, 라며 서러움이 밀려왔던 것이다.
아사나는 완벽하게 시연하지 못했지만 멘트와 동선,
최소한 내가 알고 있는 하체 감각은 충분히 전달했어!
그게 내가 스스로 내린 평가다.
부족한 부분은 꼭 지적을 받지 않았어도 이미 느끼고 있는 부분이었으니까 천천히 해나가면 된다. 글을 적고 나니 어제 폭풍 같던 마음이 잔잔해지는 것 같다. 이렇게 조금씩 성장해 가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