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만도 못한 존재들
어제 새벽부터 자꾸 벌레들이 눈에 밝힌다.
낡은 28년 된 아파트.
자꾸 벌레들이 나온다 최근에 하수도 공사를
했었다. 그런데 자꾸 내 눈에만 밟힌다.
날아다니는 바퀴벌레가
꼬리 달린 집게벌레가
딱딱한 갑옷 같은 옷을 입은 이름 모를 벌레까지
새벽에 내 손에 죽은 벌레들이다
그들은 화장실 변기에 뭉게 죽어 버려졌다.
마치 이 세상에 살았던 적 없었던 것처럼.
오늘 커피숍에서 카페라테를 먹다가 거품에 초파리가 빠진다.
나 살려달라 살려 달라 열심히 허욱적 거리지만
나의 레이더망에 갇혔다.
포크로 살포시 거품과 초파리 들어 휴지로 감싼다.
난 태연하게 다시 커피와 케이크를 먹을 수없다
글을 쓴다.
그들의 짧디 짧은 생명은 내 손안에 있다.
그들을 내버려 두었으면 나의 먹는 행위를 귀찮게 했겠지만, 그다지 나에게 해는 없었다.
하지만 모든 벌레들은 내 손안에 죽었다.
내버려 두어야겠다는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작년 초가을쯤이었다.
모모와 난 산책 중이었고 따뜻한 햇살을 조명처럼 받고 있는 어린 고양이를 보았다.
그는 행복하게 털 그루밍을 하며 혼자 보내고 있었다
“어려 보이는데 왜 혼자 있을까? 이 산책이 끝 맞히고 제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알았다 왠지 어미 고양이에게 버림받았을 거라는 느낌을…
한 시간 뒤에 왔을 때도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동네 동물병원 원장에게 전화했다.
“어미 고양이가 주변에 있을지 모르니 만지지 마세요. 기다려보시는 게 좋을 거예요.”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데려갈까요?”
그때 원장의 한마디
“키우실 건가요?”
할 말이 없었다.
“우선 가만히 냅둬보세요. 어미가 찾아올 거예요.”
난 집에서 우유와 사료를 챙겨서 그 고양이 곁으로 갔다.
크게 하악질을 하고 날 피했다.
날 피하는 모습에서 뒷다리를 저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다 저 고양이는 어미에게 버림받은 것이다.
겉으로 봐도 상태가 엉망이다.
그러나 나는 키울 수가 없다.
하지만 지나 칠 수없었다.
우선 먹을 것만 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마음이 밟혔다 저녁 9시가 돼서 고양이가 있던 장소로 가보니 고양이는 싸늘한 시체로 널브러져 있었다.
너무 충격이어서 오열했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슬픈 기억이다.
마음이 저린다 지금도…
아파트 경비원 분께 부탁했다 고양이가 죽어있으니 묻어달라고.
귀찮은 듯 삽을 들고 푹푹 흙을 파내더니 고양이는 흙속에 파묻혔다.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고양이에게 잘 지내냐고 혼잣말을 한다.
지금은 그쪽으로 잘 산책을 가지 못한다.
그렇다 그 고양이는 내가 살릴 수 있었다.
내가 좀 더 적극적이었다면 내 손안에 그 작은 생명이 숨을 쉬며 살 수가 있었다.
내 손안에 달려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생각하고 내가 계획하고 내가 쓴 데로 된다.
내가 벌레를 하찮게 생각한 것이고 그들은 그렇게 짧은 생을 더 짧게 죽음을 맞이했으며,
어쩌면 나의 눈에 띄어 목숨을 연장했을법한 고양이는 결국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아닐 수도 있고.
나의 죄책감을 피할 방도가 없다
나의 언행 또한 그렇다.
남에게는 그렇지 않지만 가족에게는 객관적이고 비수가 되는 말들을 잘한다.
엄마를 닮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난 나니까
물론 보고 배운 부분도 있겠지만 말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법이니까.
나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는 것 같다.
내 목숨과 남의 목숨을 죽이고 살리는 힘 말이다.
아직도 가끔씩 생각이 난다.
조금은 마시고 남은 듯한 우유 그릇과 밝은 빛을 받으며 혼자 그루밍을 하며 행복해하던 아기 고양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