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나도 어쩔 수가 없나 봐

이 땅의 모든 벌레에게 고함

by 모모

나는 벌레를 질색한다.

해충이든 익충이든, 내겐 그저 한낱 '징그럽고 두려운 생명체'에 지나지 않는다.


신혼 초 늦봄 무렵, 남편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나 혼자 집에 있었다.

창문을 열어둔 탓인지 꽤 큰 벌레 한 마리가 집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천장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그 아이'를 발견하자마자 나는 바로 얼음이 되었다.


하필 그 아이 바로 밑에 내 핸드폰이 놓여있었고, 난 나를 구해줄 그 핸드폰이 절실했다.

그 아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살살 조심조심 휴대폰을 향해 움직였다.

코앞까지 겨우겨우 도착해 손을 뻗으려는 찰나, 그 아이가 갑자기 세차게 날갯짓하며 수직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위협적인 저. 공. 비. 행.으로.


마치 내가 본인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보란 듯이, 나를 향해 돌진했다!


임신한 몸으로 최대한 날쌔게 손을 뻗어 휴대폰을 손에 쥔 후 나는 괴성을 지르며 안방으로 도망쳤다.

안방문을 닫고 남편에게 전화해 나의 위급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온다고 하여도 남편이 귀가하기까지는 아직 몇 시간이나 남았다.

안방에 갇혀 기다리는 것까진 괜찮았는데,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당시 우리 집엔 화장실이 거실에 딱 하나뿐이었다.


남편이 올 때까지 어디 있는지도 모를 '그 아이'를 상상하며 버텼던 그 고통스러운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캠핑을 꽤 열심히 다녔다. 해가 저물고 화장실에 갈 때면 거대한 나방들이 나를 반겼다. 두 딸과 나는 비명을 지르며 기겁했고, 그럴 때마다 남편과 그보다 훨씬 어린 서너 살의 아들이 ‘벌레 퇴치단’이 되어 앞장섰다. 우리는 그 용감한 남자들의 비호를 받으며 겨우 화장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하튼 그 정도로 난 벌레를 무서워한다는 말이다.


몇 해 전, 유난히 겨울이 따뜻했던 적이 있었다. 그 이듬해 봄, 등산객들의 SNS는 난리가 났다.

산 전체가 벌레 떼로 뒤덮여 징그러워서 도저히 산에 못 가겠다는 아우성이었다.

뉴스에서도 온 산에 벌레가 득실거리는 모습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날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곤충들은 늦가을에 셀 수 없이 많은 알을 낳고 간다. 본래는 혹독한 겨울 추위에 상당수의 알이 동사해야 하는데, 그해는 유독 겨울이 따뜻해서 알들이 대부분 살아남아 부화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겨울이 오면 ‘제발 춥기를, 아주 춥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따뜻한 초겨울엔 불안함에 떨다가, ‘역대급 한파’가 온다는 기상보도를 들으면, 오들오들 추위에 떨면서도 신이 난다.


‘아, 드디어 추워지는구나. 이제 벌레들이 좀 죽겠지?’


너무 신난 나머지 마음속 생각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때도 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무슨 말이냐고 물어와 대답해 주면 다들 ‘아~’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나는 꽤나 진지하다.


하지만 기분이 좋다가도 마음 한편엔 슬그머니 죄책감이 고개를 든다. 한 생명이 꽃피기도 전에 단체로 얼어 죽기를 바란다니, 이보다 잔인한 마음이 또 있을까 싶다. 그나마 그들의 부모가 수많은 알을 두고 애달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의 죄책감을 아주 조금 덜어줄 뿐이다.


사과하는 의미로, 나는 살아남은 벌레는 잘 죽이지 않는다. 그저 피해 도망 다닐 뿐.


이런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와 또 정신이 번쩍 든다.


‘너, 그러다 정말 벌레에 뒤덮인 세상에 살아봐야 정신을 차리겠니..’


다행히 최근의 겨울은 추위가 좀 늦게 시작될 뿐 한파의 기세는 여전하다.

올해 1월은 평균 기온 영하 1.2도로 최근 10년 중 두 번째로 추운 달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너무 좋다.

내년 봄엔 벌레 걱정을 좀 덜어도 되겠다.


벌레들아, 미안해. 나도 어쩔 수가 없나 봐.

너희보다는 내가 사는 게 먼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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