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을 보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학원을 보내는 기준입니다만
아이가 7세가 되었다. 아이가 다니는 기관에서 받아쓰기 시험을 치기 시작했다. 공부를 따로 해 본 적 없는 아이는 매주 시험치는 받아쓰기를 세 달 넘게 빵점을 받았다. 원장 선생님께서 전화가 오셨다. 어머니, 아이 공부 좀 시켜주세요.
7세가 되니 여러 학원 추천을 많이 받는다.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 아이의 동선을 확실히 짜 놓으려면 지금부터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단다. 이 건물에 영어학원이 괜찮고, 저 건물은 미술이랑 태권도가 괜찮은데 저학년은 일단 예체능부터 먼저 보내면 좋다고 했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태권도를 하고 싶단다. 잘됐다. 그럼 태권도부터 먼저 보내야지. 관장님과 면담을 보고 아이는 다음날부터 태권도를 갔다. 아이가 즐거워한다. 나도 마음이 좋았다. 둘째가 형아 태권도를 가는 것을 보더니 자기도 가겠다고 징징댄다. 아직은 안돼. 너무 어려. 좀더 안전하게 보이는 미술학원엘 갔다. 워낙 만들기나 블록을 좋아하는 아이라 미술학원에 잘 맞았다. 무언가 하루하루 바퀴가 잘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좋았어.
코로나가 점점 더 심해지고 그나마 청정 지역이었던 우리 동네의 첫 코로나가 아이가 다니던 태권도에서 시작되었다. 사회적 시선이 무서운 때여서 2주 동안 태권도장 운영을 하지 않았다. 같은 시간 수업하지 않았는데 앞 뒤 타임에 수업한 아이들도 전부 가서 PCR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음성이 나왔는데 기관에서는 일주일 자가격리를 권했다. 워킹맘인 나는 아이들과 비행기를 타고 친정으로 갔다. 아이들은 그 곳에 두고 나만 집에 돌아와 회사를 출근했다. 아수라장. 몸도 마음도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 때서야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학원을 멈추니 아이가 보였다.
학원을 멈추니 삶이 보였다.
학원을 멈추니 가치가 보였다.
나는 언제부터 아이가 좋다고 말하면 곧바로 실행해 주는 엄마였을까. 아이스크림 먹을래? 네 좋아요 하면 나는 바로 사주는 엄마였던가. 아니면 놀이공원가고 싶어요 하면 바로 그래 내일 가자 했던 엄마였던가. 기준을 세운 것에서는 아이가 원하든 원치않든 그 때가 어떻든 상관없이 기준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아니었나. 왜 나는 아이가 무엇을 배운다고 하는 것에는 아이가 좋다고 하니까 곧바로 학원에 보낸걸까. 학원에 대한 나의 기준은 무엇인가. 나는 아이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삶을 살길 바라는가. 그 꿈과 삶의 가운데 학원의 유무가 필요한 것인가.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소리없는 눈물을 흘렸다.
한국은 학기제가 3월부터 시작된다. 그러니까 2월 중순까지는 아이가 7세 때 다니던 기관을 마지막까지 다닐 수 있다. 2월에 졸업을 하면 아이는 약 2주간의 시간 동안 3월부터 초등학교 입학 모드로 돌입한다. 9월 학기제를 하는 외국에서는 여름방학을 기점으로 학년이 바뀌기 때문에 세 달 정도의 시간이 있는데, 우리나라 아이들은 2주면 준비 완료다. 우리가 이사를 하려고 집을 옮길 때도 지역부터 학군, 동네 분위기, 꼼꼼하게 따져가면서 새로운 곳으로 가는데 아이들의 기한은 2주다. 3월 2일에 입학식을 하고 나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두달 정도로 아이는 보호자와 함께 학교를 간다. 그 이후부터 아이는 모든 것을 혼자서 감당하기 시작한다. 등하교도, 학교 적응도, 친구들과의 관계도 오롯이 자기의 몫이다. 숨쉴틈 없는 학교와 학원 사이에서 아이들은 점점 표정이 없어진다. 마치 통근시간에 지하철에 서 있는 직장인의 표정처럼.
학원을 멈춘 7세 11월. 나는 아이를 다시 관찰하기 시작한다. 가고 싶다고 해서 다닌 태권도인데, 학원 안 가고 집에서 동생이랑 노는 아이의 표정이 훨씬 밝다. 스트레스를 받긴 받았었구나. 학원에 대한 기준을 세운다. 가고 싶다고 해서 전부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서른 밤 자고 나서도 계속 가고 싶으면 그 때 체험 수업을 한 번 가보자. 체험 수업 이후에 열 밤 더 자고 나서도 계속 가고 싶으면 그 때 엄마한테 말해줘. 등록하러 가자. 아이는 말한다. 네, 좋아요 엄마.
언젠가 또 학원을 다닐 수도 있겠지. 그 갯수가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겠지. 이렇게 기준을 세워 아이가 학원 가는 것을 결정한다면 적어도 기다리는 수많은 날들 동안 아이가 얼마나 학원을 원하는지 자기 스스로도 나도 알 수 있겠지. 아이의 삶에서 어느 학원을 보내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원을 보내는 기준이니까. 기준 없이 보냈던 아이의 첫 학원에서 코로나 사태를 겪은 것에 감사하다. 그런 사건이 없었으면 잠시 멈추어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지금 아이는 열 살이 되었다. 아이는 지금 일주일에 두 번 검도를 배우고, 일주일에 한 번 피아노를 배운다. 검도를 배운지는 1년, 피아노를 배운지는 3년이 되었다. 지금은 학원을 가는 것에 대한 기준보다 학원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한다. 그렇게 보내달래서 간 학원을 그냥 가기 싫어서 바로 그만두는 것도 안되니까. 바른 기준. 아이를 양육하면서 계속해서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