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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나 Jan 24. 2022

신입사원 연수를 통해 배운 것들

최종 합격 소식을 접한 후, 약 4개월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마음이 편하고 여유롭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 기간을 이용해서 중국어라도 배워야 하나 고민하던 차, 내 계획을 잠자코 듣고 있던 학교 선배가 '인생에 두 번 다시 가기 어려울 만큼 먼 곳으로 떠나라'는 조언 한 마디를 던졌다.


그렇게 40일여간 남미 여행을 떠났고, 귀국  곧바로 자사  그룹사 연수에 들어갔다.

아직도  선배에게 마음 깊이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연수 기간은 총 6~7주 정도였다.

회사는 각 본부 별 업무 소개와 함께 '문화'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연수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유명 라디오 작가, 미술계 인사, 패션지 편집장 등을 초청하여 '나만의 음악 취향을 갖는 법', '현대 미술의 이해', '사내 복장 규정을 준수하며 옷 잘 입는 법' 등을 주제로 진행되는 강의를 들었고, 그 외에도 토론, 코딩, 사진 등 다양한 분야를 아주 살짝씩 학습하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출근해서 이 정도의 강의를 듣고 월급도 받았다니... 얼마나 꿀 같은 시절이었던가, 그때는 몰랐다.)




반면, 그 뒤로 이어진 그룹사 연수는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한 듯 놀라웠다. 연수원에 들어서자마자 '높으신 분'의 입장에 맞추어 손뼉 치며 환호하는 연습을 30분이 넘도록 반복했고, 교육시간에는 반드시 정장을 입어야 했다. 기본적으로 '직원'이라 함은 남성 연수생을 뜻했고, 나는 항상 '여직원'으로 불렸다. 그 외에도 교육시간마다 뜨악하며 혼잣말을 되뇌는 일이 여러 번이었다. '아니, 다들 지금 2017년 맞아?'


이 그룹사 연수에서 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공연'이다.


연수생들은 낮에는 그룹의 역사와 핵심가치, 글로벌 진출 현황 등에 대해 공부하고, 밤에는 10명~20명 정도의 소그룹으로 나누어 모여서 전문 공연 기획자들과 함께 무대를 준비했다. 이 공연의 목적은 신입사원들이 그룹에 충성(?)하고, 창업자를 기리며 그 정신을 이어받게끔 하려는 것이었다. 공연 장르도 탭댄스, 케이팝, 연극, 힙합, 아카펠라 등 소그룹별로 매우 다양해서, 연수생들은 밤마다 본인이 맡은 무대를 소화하기 위해 애를 썼다.


재미있는 점은, 이 공연에 등장하는 것은 수백 명의 신입사원이지만 그들이 직접 공연을 만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매년 기수별로 같은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누가/언제/어디서/어떤 대사를/어떻게 할지'도 모두 다 정해져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 공연에서 '해외 공장에서 근무하는 선배 사원' 역할을 맡았다. 앞서 수많은 신입사원들이 그 역할을 나와 똑같이 해냈을 것이고, 그 뒤로도 수많은 신입사원들이 주어진 대사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도록 외워 무대에 올랐겠지.




나였어도, 내가 아니었어도 아무 상관없는 일.

그런데도 왜 우리는 잠을 줄여가며 그 무대를 준비해야 했을까?


각자 주어진 역할에 맞게 딱 시키는 정도만 해내는 것.

'못 하겠어요' 말할 수도 없고 더 나은 방향을 제안할 수도 없는 것.

그것이 내가 회사에서 가장 처음 배운 무기력이었다고, 지금에서야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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