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인간에게 영롱한 두 눈을 주며 곁눈질까지 허락한 까닭은 짐작하건대, 더 넓게 주위를 살펴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먼저 고르게나. 난 좀 더 생각해 볼 테니. 자네도 알지만, 선택은 행복이고 행복은 선택이잖나. (Choice is happiness and happiness is choice.)"
- 김경일, <나무無> 중 발췌
나주의 작은 책방, ‘사직동, 그 가게 나주에서’ 만난 책입니다. 티베트 난민을 위한 비영리 민간단체, ‘록빠’에서 운영하는 서점이었죠. 헌책방의 수익금으로 티베트 난민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책을 제작한다는 그곳의 곳곳에는 티베트 난민촌의 현장을 담은 책자와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먼 타국에서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이들을 아무 조건 없이 지원하고, 알리며, 지지하는 글들로 가득했죠.
‘나’보다 ‘타인’을 위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그곳에서 더불어 사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고른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나무無>라는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이번에는 ‘이 책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이끌리듯 확신에 차서 책을 골라보기도 오랜만입니다. 제목의 無는 그만큼 돋보이는, 책방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한 글자였습니다.
<나무無>는 기자의 에세이집입니다. 특종보다 훈훈한 미담을 찾는데 마음이 꽂혀 버린, 큰길보다는 샛길을 걷는 기자의 글 모음집이죠. 300페이지에 육박하는 꽤 두툼한 책이지만, 두께가 무색하게 책은 금세 읽어집니다. 짧은 호흡으로 일화와 생각들을 나열하고 있거든요.
작가는 서두에서 책에 대해 분명하게 서술합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나누고 베푸는 나무(無)한 사람(내가 없거나 적은, 나보다 타인을 위하는 사람)’의 일화들을 다룰 거라고요. 덜어내고, 비워내는 사람. 모두가 채우려 할 때,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내려놓으며 다른 이를 품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요.
그러나 책은 도덕책처럼 성인군자들의 이야기만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재산이 쌓이는 족족 기부에 ‘탕진잼’을 하는 여사의 이야기, 조혈모세포를 기증한 의사의 이야기 등, ‘미담’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책에는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작가는 따뜻한 일화들보다 더 많은 분량을 ‘마냥 따뜻하지 못한 우리네 삶’을 되짚는 데 할애하거든요. 가끔 책은 작가의 일기장처럼 느껴집니다. 혹은 실상을 기록한 취재 노트처럼 읽히기도 하지요. 비우려 했지만 비우지 못한, 내어주려 하지만 미처 내어주지 못하는, 자꾸만 쥐려 하는 ‘현실적인’ 삶과 후회에 대한 상념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으니까요.
그런 사적인 솔직함은 되려 이 책에 더 빠져들게 합니다. 어차피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매일이 빛날 수는 없거든요. 삶은 한번 환하게 반짝이고 저무는 무언가가 아니니까요. 나무(無)가 삶의 방향성일지라도,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살고자 해도, 매 순간 갈등하는 게 우리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잠시 빗나가더라도 결국 다시 목표로 되돌아오게 만드는 힘 또한 그 갈등이죠. 그래서 작가의 불꽃 같은 갈등들, 하루가 멀다하고 반복되는 고민들. 그런 매일을 이겨내며 나무(無)가 되기 위해 나아가는 일상은 설득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도 우리도, 종국엔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니까요.
책은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나무(無)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놀라우리만치 그 반대죠. 하지만 갈등의 순간들을 견디며, 감내하려는 의지를 재차 다지며, 마침내 ‘나무(無)’의 상태에 이룩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서두의 말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과정이 지난하고 미진해 보일지라도, 이 책의 모든 장과 구절은 내어주려는 마음, 비워내려는 노력으로 채워져 있으니까요.
나무(無)가 되기 위해 오늘도 은은한 마음의 불씨를 당기는 저자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한 발자국 내딛고 싶지만, 자꾸만 뒷걸음질하는 자신을 자책해 본 적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 볼 만한 책입니다. 나무(無)가 되고 싶지만, 미처 그러지 못해 고민하는 모습조차도 부질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책이거든요. 결국 그런 마음마저도 세상을 좀 더 옳게 만들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