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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Oct 10. 2022

5.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일

나의 작은 아기 사자 : 달작가 글뚜레의 소설(이야기책) NFT



5     



“전화를 못 한 이유가 고작 그거야?”     


촬영을 나가기 전, 잠깐 시간을 내어 한 전화에 아내는 퉁명스레 답했습니다. 잠기운이 가득한 목소리였지요. 아프리카의 아침은 한국의 밤이니까요.     


“내가 보낸 초음파 사진은 봤어?”     


보지 못했습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곯아떨어져서 아침에서야 겨우 몸을 일으켰거든요. 통신 상태가 좋지 않아서 업무 연락 외에는 휴대폰을 잘 만지지도 않았고요. 어느새 휴대전화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는 습관은 사라진 지 오래였습니다. 이곳에 오래 머문 다른 사람들처럼요. 그러다 보니 초음파 사진을 보내 준 것도 모르고 있었죠. 아내에게 이른 아침부터 전화한 것은 그저 수많은 부재중 전화에 대한 답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행복에 겨운 목소리를 기대했던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전 초음파 사진을 봤다고 답했습니다. 혼자서 뱃속의 아기를 돌보느라 고생이 많다는 말을 덧붙였죠. 남편으로서 당연히 줘야 할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요. 아내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습니다.      

저만치 코디가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린 채 빨리 오라고 성화였습니다.     


“다음 달에 휴가 받을 수 있는 거 확실하지? 다음 달부터 조심해야 된대. 아기가 예정보다 빨리 나올 수도 있으니까...”     


아내는 뭐라고 말을 덧붙였습니다만, 난 코디에게 알겠다고 손짓하느라 바빴습니다. 입으로는 아내를 어르고 달래는 말들을 기계적으로 건네는 중이었죠. 아내는 곧 전화를 끊었고, 난 차에 올라타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시동을 걸자마자 무전이 날아왔습니다.     


“빨리빨리 좀 다녀요.”     


빨리빨리. 그의 말에 담긴 유일한 한국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말이 귀에 확 꽂혔습니다. 현지 가이드가 촬영팀에게 배운 첫 번째 한국말, 빨리빨리. 이걸 내가 역으로 듣게 될 줄이야. 부인과 전화한 거라고. 곧 태어날 우리 아이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그렇게 말하려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코디에겐 그저 미안하다고 얼버무렸죠. 늦을 때마다 가족 핑계를 대는 선배의 얼굴이 눈앞을 스쳤습니다. 현지 코디는 선배의 말에 딱히 반박은 하지 않았지만, 믿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긴 싫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초원으로 향했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에 시뻘겋게 불타는 하늘. 듬성듬성한 나무와 풀들의 산발적인 검은 실루엣. 빛이 가르는 길을 따라 두 대의 차가 나란히 달렸습니다.      


“미스터 지. 코끼리 무리가 길을 막았어요. 나는 잠시 멈춰야 할 거 같아요. 먼저 가지 말고 기다려요.”  

   

소란스러운 잡음과 목소리. 현지 코디의 무전이었습니다. 거대한 진동과 모래바람, 거친 숨소리. 코끼리들의 분주한 몸짓이 등 뒤에서 느껴졌습니다. 여느 때처럼 물가로 향하는 중이었죠. 나는 그들의 아침 일과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차를 멈추고 엔진 소리를 낮추었습니다.     


코끼리들의 요란한 대화가 잦아들 때 즈음, 저만치 토피 영양 한 마리가 보였습니다. 온화해진 하늘 사이로 고고하게 세운 두 개의 뿔. 단단한 앞발로 바위를 딛고 서 있었습니다. 매우 신중한 고갯짓으로 왼편 아래에 펼쳐진 초원을 내려다보고 있었죠. 나는 무전기를 집어 들었습니다.     


“직진하지 말고 왼쪽으로 갑시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코디의 답신이 돌아왔습니다.     


“왼쪽이요? 왼쪽으로 가면 한참을 돌아가야 합니다.”     


미심쩍은 목소리였죠.     


“저쪽에서 풍경이 더 잘 잡힐 것 같아 그렇습니다.”     


코디는 알겠다며 무전을 끊었습니다. 지지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희미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죠. 알아듣지 못하는 스와힐리어였지만, 기쁨의 탄성이 아니라는 것쯤은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꺼져가는 무전을 붙들고 잠시 사과라도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굳이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영양은 여전히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 채 저편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토피 영양은 이른 아침, 종종 언덕 위에서 어딘가를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포식자들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그들만의 아침 일과죠. 누구도 겁을 집어먹은 채로 아침을 시작하긴 싫을 테니까요. 그게 토피 영양일지라도 말입니다.     


영양의 시선 끝에는 대체로 사자가 있습니다. 사자는 사바나에서 토피 영양이 마주칠 수 있는 최상의 포식자이기 때문이죠. 사자들은 조금만 기온이 올라가도 금세 덤불 속으로 숨어 버립니다. 그늘에 있는 그들을 인간의 눈으로 찾기는 쉽지 않지만, 초식동물들의 눈은 언제나 사람을 능가하죠. 생명을 건 절박함만큼 정확한 건 없으니까요. 천적을 탐지하는 길잡이들의 신호를 알아채는 건 언제나 촬영에 큰 도움이 되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토피의 시선을 따라 조금 더 달리자, 무성한 덤불이 나타났습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지만, 높게 자란 풀들은 한없이 흔들렸죠. 몹시도 부자연스럽게요. 난 이곳에서 멈춰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멈췄다 갑시다.”     


무전 너머로 들리는 한숨.           


“이번엔 또 뭐죠?”          


“사자 무리를 발견했어요. 잠시 촬영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코디는 답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난 그가 결국 멈출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 다큐멘터리의 최대 분량을 차지하는 건 사자였으니까요. 감독은 이곳에서 머무르는 모든 시간 속의 사자들을 영상으로 담길 원했습니다. 심지어 일개 촬영 기사인 제게도 그 오더가 내려질 정도였죠. 난 코디의 답변을 굳이 기다리지 않고 카메라 덮개를 열었습니다. 이번만큼은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죠.     


“사자가 맞긴 한 거죠?”     


카메라를 고정하고 있을 때, 무전이 날아왔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내가 되물었습니다.     


“여긴 사자들이 잘 머무는 곳이 아닙니다. 촬영하시는 분들은 가끔 풀이 흔들리는 걸 보고 사자와 혼동하기도 하더군요. 미스터 지의 차에 가려 앞을 명확히 볼 수 없어서 그런데, 사자가 맞는지 한 번 더 확인을 해 주면 좋겠습니다.”     


코디의 말에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한바탕 무전에 대고 떠들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방금 우리 앞에 있던 토피 영양의 존재와 그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열렬히 설명하려 했죠. 다만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낼 순 없었지만요. 수많은 사실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난 그 많은 말들을 차마 늘어놓지 못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저 그렇게 중얼거렸을 뿐입니다.     


그가 단지 코디로서 자신의 일을 한 걸지도 모르니까요. 신입이자 홀로 촬영을 나온 카메라맨이 걱정되어 그런 말을 던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혹시나 그게 아니더라도 굳이 사서 문제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무전기 버튼을 누르고 말을 건넸습니다.      


“사자가 맞습니다. 혹시 모르니 카메라로 확인하고 연락드리죠.”        

  

정중히 답변을 마치고서 무전기를 옆자리로 냅다 던져버렸습니다.     


“촬영 경력만 십 년이라고 십 년.”          


카메라에 바짝 다가가며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습니다. 무전기를 흘끔 쳐다봤습니다. 무전기의 잡음과 함께 들렸던 코디의 나직한 한숨처럼 나의 중얼거림도 슬며시 저편으로 전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창문 밖으로 엄지를 들어 보였습니다. 사자가 맞다는 수신호였습니다. 무전에서는 나지막하게 ‘알았습니다.’라는 답변이 날아왔습니다.     


덤불 속에 있던 건 암사자들이었습니다. 어미들이었죠. 졸음이 밀려오는지 눈을 꿈벅이는 그들 사이로 한 쌍의 점박이 귀들이 팔랑거리며 날아다녔습니다. 귀 뒤에 보송보송한 짙은 솜털들. 아기 사자임을 알리는 표식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미의 다리 밑을 파고들어 반대편으로 나오기도 하고, 저들끼리 뒤엉켜 구르기도 했습니다. 복슬한 작은 몸들로 아침을 맞는 즐거움을 한껏 표출 중이었죠.     


카메라를 찬찬히 움직이며 아기 사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습니다. 저도 모르게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어젯밤 마주친 사자 무리가 자꾸만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닐 겁니다. 사자는 고유의 영역을 가진 무리 동물입니다. 일정 거리 안에서 자신들만의 촌락을 만들고 생활하죠. 드넓은 사바나에 사자 무리가 하나는 아닐 테지만, 어제와 오늘의 촬영 장소는 그다지 멀지 않았습니다. 난 밀려오는 기대감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토실한 아기 사자 하나가 앵글에 잡혔습니다. 눈 밑에 독특한 하얀 점이 있는 동그란 얼굴. 분명 어제 만난 아기였죠. 두툼한 발과 통통한 배를 자랑하며 달려들던 아기 사자. 나의 작은 아기 사자를 단숨에 제압하던 형제 사자였습니다. 바로 옆에는 어미도 있었죠. 어미 사자의 허리에 난 묘한 상처를 내가 잊을 리 없었습니다. 저만치 누워 있는 수사자마저 어제의 그 사자라는 걸 확인하자 기대는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심장은 거칠게 뛰었습니다. 익숙한 사자들의 얼굴이 하나씩 지나갈 때마다 마음은 조급해졌습니다. 유독 눈에 띄지 않는 한 마리의 얼굴이 아른거렸죠. 고작 하룻밤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혹시 그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걸까요. 덜컥 겁이 났습니다.      


다시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제발. 제발. 제발. 읊조리며 삼각대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습니다. 입술을 물어뜯으며 천천히 카메라를 움직였습니다. 3분 남짓한 시간이 3시간은 족히 되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마침내 그의 얼굴이 커다랗게 화면을 채웠을 때, 비로소 나는 숨 쉴 수 있었습니다. 사자 무리와 조금 떨어진 덤불 사이를 어정거리며 걷는 그의 발걸음에 허탈한 웃음마저 나오더군요.     


나의 작은 아기 사자. 그는 오늘도 용맹하게 살아있었습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야위었고, 약간 더 비틀댔지만, 여전히 살아있었죠. 어미는 여전히 그가 다가오는 걸 꺼렸고, 주변 사자들은 그의 존재를 모른 체 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꿋꿋하게 그들 중 하나로서 그곳에 있었습니다.     


"좋았어."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카메라를 고정했습니다. 그에게 초점을 맞추자 다른 것들은 금세 잊혀졌습니다.     

나의 작은 아기 사자.


지금 내게 중요한 건 그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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