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다행이야, 뇌종양이라니’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MRI촬영을 하고 뇌종양이라는 진단 결과를 받았을 때, 엄마는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라고.
'정말 다행이야, 우리 아들이 이상해졌던 게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뇌종양이라는 질병 때문이었다니. 이유를 찾았으니 그 병만 치료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야.'
항상 느끼는 거지만 엄마는 참 긍정적인 사람이다.
군에 입대했을 때도 그랬다. 다른 친구들은 훈련소에서 군복으로 갈아입고 벗어 둔 사복과 운동화를 상자에 담아 집으로 보내면 엄마의 위문편지에는 꼭 ‘네 옷이 담긴 상자를 열어보고는 네가 정말 입대했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어’하는 문장이 담겨 있다던데 우리 엄마로부터의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네가 보내온 옷상자를 보니 참 반가웠어’라고….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엄마에게는 언제나 믿음직스럽고, 시키지 않아도 제 할 일 하고, 공부하란 소리 안 해도 알아서 잘 하던 듬직한 큰아들. 그랬던 내가 갑자기 이상해져 버렸으니 엄마 그리고 아빠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증세가 뚜렷했다면, 차라리 어디가 아프기라도 했다면 무슨 병이든 병에 걸린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겠지만 내 증상은 잠을 자는 것, 그것뿐이었다. 하루 종일 멍한 눈으로 지내다 그저 잠만 자는 것.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 준비한다고 서울에 올라갔던 나는 그 해 여름 집으로 내려와 좁은 방에 틀어박혀 잠만 잤다.
정신적으로 몽롱했던 탓에 그때의 기억은 흐리멍덩하기만 하다. 애써 떠올려 보면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책도 읽지 않고, TV도 보지 않고, 친구도 만나지 않고, 그렇다고 가족들과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저 잠만 잘 뿐 아무것도. 그런 나를 보다 못한 부모님은 병원에라도 가 보자고 부탁하셨지만 나는 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느끼지 못하고 9월에 복학하면 괜찮아질 거란 말만 들먹이며 병원에 가지 않았다. 부모님 앞에서 그렇게 고집을 부리고는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지겹도록 잠만 잤던 것이다.
한참 뒤에, 병원에서 뇌종양 진단을 받고 치료를 마치고 나서도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나는 전혀 모르고 있던 이야기를 동생에게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시기 집에 내려와 방에 틀어박혀 잠만 잘 생각만 하던 나를 보며 아빠는 정말로 당황하셨다고. 그래서 엄마를 닦달하셨단다. 쟤 좀 이상해진 것 같다고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알았더라면, 뇌종양 때문이라는 그 이유를 알았더라면 오히려 조금은 마음이 놓이셨을 텐데 아무 이유도 모르는 채 그러는 나를 보며 아빠는 그저 이상해진 것 같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 괜히 화를 내며, 무슨 소리 하는 거냐고 대훈이가 어디가 어떠냐고 따지셨다고 한다. 마음속에 피어나는 불안함을 애써 숨기고서. 그렇게 아빠에게 소리친 뒤, 동생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엄마는 동생에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어보셨다. 네가 봐도 형 좀 이상하냐고. 동생은 자기가 봐도 형 좀 이상해진 것 같다고 말했고 동생의 대답을 들은 엄마는 동생이 앉아 있던 침대에 엎드려 한참이나 소리 내 우셨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동생은 나에게 들려 주었다.
동생의 그 이야기가 떠오를 때면 언제나 눈물이 고인다. 부모님에게 그리고 동생에게 너무나 죄송스럽고 미안해서 말이다. 그때 내 나이 스물넷 스물다섯 무렵. 우리 가족의 한참이나 어두웠던 시기다.
산다는 것이 도무지 사는 것 같지 않아 스스로 행하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있다. 이전에는 왜 하필이면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인지 의아해 하기만 하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그들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던 것이다. 얼마나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으면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인지가.
우리 가족의 어두웠던 시기와 스스로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던 시기. 그것이 그저 멀고 먼 과거의 일이라는 사실이 어찌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지금의 나는 정신적으로 그리고 신체적으로 건강하다.
나는 생각한다. 만약 가족이 없었다면, 아빠가 없었다면 동생이 없었다면 그리고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엄마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도 없었을 거라고.
이제,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가 어떻게 뇌종양을 이겨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 과정 속에서 우리 엄마, 우리 가족은 어떤 역할을 해 주었는지.
뇌종양이라는 병을 겪고 난 후 나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런 이야기를.
앞서 말하자면 제목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
이것은 긍정적인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