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전의 이야기 #1
자취방으로 가던 길, 편의점에서 1000ml우유를 샀는데 들어와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더니 어제 샀던, 뜯지도 않은 또다른 1000ml우유팩이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얘 참 어이없군' 하는 듯한 표정으로.
- 그 무렵의 일기 中
정신병이 무서운 이유는 천천히 다가오기 때문이다. 결코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씩 천천히. 병에 걸린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살금살금. 병을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한참이나 늦어버린 뒤다. 정신적인 병은 그렇게 찾아온다. 슬그머니 밀려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켜버리는 쓰나미처럼.
처음 이상함이 느껴지기 시작한 건 군대에서였다. 의무소방이라는 이름 하에 소방서에서 군복무를 하던 시기. 정확히 언제부터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마 입대 후 1년 정도 지난 즈음이었을 것이다. 내 나이 스물셋 무렵. 뭔가가 그저 예전과는 달랐다. 두뇌의 활동을 무엇인가가 방해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희뿌연 베일이 한겹 머릿속을 감싸고 있는 것 같았고 생각을 한다는 것이 조금 버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저 몸이 좀 피곤한가보다 라고만 생각했을 뿐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리 심한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군대는 언제나 몸과 마음의 긴장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공간. 규칙적인 일과와 여러 선후임 동기와 함께하는 단체생활 속에서 나 자신의 상태에 집중하고 신경 쓸 여유가 없기도 했다. 필요했던 ‘나’에 대한 관심이 뒤로 밀려버렸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뇌종양은 천천히 내 머릿속을 좀먹어 들어가고 있었다.
제대와 함께 찾아온 신체적 자유는 역설적으로 병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군대에서의 몸과 정신을 사로잡고 있던 긴장의 끈이 풀려버린 순간 뇌종양이라는 병은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야말로 나를 집어삼켜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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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신체보다 정신적인 부분에서 먼저 찾아왔다. 언제나 사고는 몽롱하기만 했고 말한 것처럼 뭔가가 내 머릿속을 한 꺼풀 덮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잠에서 깨어나기 힘들다는 것이 가장 큰 증상이었다.
아무리 일찍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아도 다음 날 깨어나는 시간은 언제나 정오 이후일 뿐. 알람을 맞춰 둬도 알람소리를 듣고 깨어난다는 건 바라기 힘들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벅차기만 했던 것이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오른 지 오래, 힘겹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만나도 별다른 이야깃거리를 꺼내지 못한 채, 다른 이들의 말에 간단한 대답 정도만 던지며 자리를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분명한 것은 나를 뒤덮고 있던 피곤함이란 신체적인 피곤함이 아니라 정신적인 피곤함이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떠오르는 당시의 기억 하나. 대학 후배에게 혼났던 기억이다. 역시나 평소처럼 정신적인 상태가 좋지 않던 날 그런 날이라면 누군가를 만나는 건 상대에게 폐만 끼치는 행동일 텐데 나는 그저 누구라도 만나고 싶었다. 누구라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야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나에게나 상대에게나 최악의 행동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전화를 걸어 만나자 했고 만난 자리에서 역시나 후배의 이야기에 추임새를 넣거나 간단한 대답만 했을 뿐, 내 이야기는 전혀 꺼내지 않았다. 않았다기보다 꺼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때의 나는 어떤 이야기도 머릿속에서 꺼내 들려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으므로.
자리를 파하고 밖으로 나와 걷던 길, 후배는 참다 못해 말한다는 듯 나에게 언성을 높였다. 왜 그렇게 말이 없냐며, 그것도 사람을 불러내 놓고. 사람을 불러냈으면 뭐든 말을 해야 할 것 아니냐면서.
“지금 솔직히 짜증이 날 지경이야.”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판단도 못한 채, 당황한 나는 얼버무리며 되도 않는 변명만 늘어놓았다. 내 변명을 듣던 후배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떠나 버렸고 나는 얼마간 머뭇대다 머쓱한 기분으로 방으로 돌아왔을 뿐이었다.
다른이가 아닌 후배에게 혼이 났던 그날의 일은 당시의 내 상태가 어땠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머릿속과 정신이 한참이나 무너져 있었던 내 상태를. 흔히들 하는 표현 가운데 ‘정신이 나가있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내가 딱 그런 상태였다. 그 즈음의 나는 정말로 정신이 나가 있었다. 반쯤은 죽어 있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언젠가 엄마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네 눈을 보면 흐릿한 뭔가가 한 겹 덮여 있는 것 같았어’라고.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것을 바라보며 살았던 것일까. 아마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 것도 보지 않은 채로 시간만 보내며 살아가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나에게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결코 들지 않았다. 그저 몸 관리를 잘 하지 못해 피곤한 탓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내 증세가 어떤 병 때문일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차라리 어디가 아팠더라면, 기침이 나거나 열이라도 났다면 당연히 병원을 찾아 의사선생님의 진료를 받았을 텐데. 그랬다면 ‘땅땅땅’ 법봉을 치듯 내가 앓고 있는 병명을 진단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몸이 아닌 정신에 찾아온 병은 그럴 의심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뇌종양이라는 병은 신체적인 병인 동시에 정신적인 병이다.
뇌라는 신체 부위에 비정상적으로 증식한 세포 덩어리를 의미하는 뇌종양은 기본적으로 신체 질환으로 분류된다. 수술이나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 등 신체적 치료법이 주요 치료가 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뇌종양은 그러나, 동시에 정신을 괴롭히는 병이기도 하다. 인간의 정신 활동을 담당하는 뇌라는 기관에 생긴 종양은 인간의 사고나 감정, 기억, 성격 등에 영향을 줘 환자에게는 정신질환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나에게 찾아온 뇌종양은 신체에 찾아오기에 앞서 정신에 먼저 찾아왔다. 다른 정신병들과 마찬가지로 정신에 찾아오는 병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이다. 결코 서두르지 않고 병에 걸린 본인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조용한 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서서히. 오늘의 내 상태는 어제와의 차이를 느끼기 힘들고 내일의 나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시나브로, 병은 정신을 좀먹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정신적인 문제는 진행되어 갔고 그 느린 속도 탓에 나는 병이 찾아왔음을 느끼지 못했다. 마치 조금씩 뜨거워지는 물 속 상황을 눈치 채지 못하고 결국 삶아져 버리고 마는 개구리처럼 말이다. 그것은 너무나 참혹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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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살아가던 나날들. 병은 언젠가부터 정신을 넘어 신체에까지 번져나갔다.
증상은 먼저 혀에 찾아왔다. 음식을 먹어도 음식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도 혓바닥은 그저 텁텁함만이 느껴졌을 뿐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손. 뇌종양이 발생한 부위가 좌뇌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일까?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글씨를 쓰기가 힘들었다. 친구에게 쓰려던 편지는 힘없어 너무나 지저분하기만 한 필체가 부끄러워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둘 수밖에 없었다. 평생 오른손잡이로 살아왔던 나는 지금도 왼손으로 뭔가를 하는 것이 오른손보다 편하다. 그 다음은 다리. 손과 마찬가지로 오른쪽 다리에도 힘이 빠져 제대로 걷기 힘들었다. 똑바로 걷지 못하고 마치 소아마비를 앓기라도 한 사람처럼, 오른발을 끌듯 절뚝이며 걸었다.
놀라운 사실은, 내 몸과 정신이 그런 지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나는 내가 병에 걸렸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조현병이나 양극성장애, 망상장애 등의 정신병을 앓는 환자들은 자신이 정신병에 걸렸음을 인정하지 않고 부정한다고 한다. 뇌가 이미 손상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를 ‘병식(病識)의 결여’라고 말한다. 병을 인식하는 능력 자체가 뇌가 하는 것인데 뇌가 병에 영향을 받아 망가져버려 스스로의 병을 자각할 수 없는 상태. 나도 아마 그랬던 모양이다.
나는 완전히 망가져버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