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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01화

스친다는 건, 전기가 흐른다는 것

by 미히

신선고등학교 1학년, 전우성.


교실문을 들어서자마자, 놀림조의 소리들이 우성을 반겼다.


"이야, 띨띨이,


오늘은 검은 뿔테 안경이네! 너는 도대체 안경이 몇 개야."


한정민이 가장 먼저 소리쳤다. 옆에서 신재화가 입을 맞췄다.


"오늘도 폭탄 머리네, 오다가 번개 맞았냐?"


우성은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부시시한 머리와 안경을 쓴 학생이었다.


평범한 학생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그는 초능력자였다.


정확히는 전기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우성은 초등학생 시절, 어릴 적 어느 날 맞닥뜨린 번개로 인해 이 힘을 얻게 되었다.


번개가 치던 그날, 엄청난 전류가 온몸을 휘감으며, 곧바로 전기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생긴 부작용은 그를 평범한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그가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이유는 단순히 스타일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몸에서 흐르는 전류는 시신경을 방해해, 눈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시력은 점점 떨어졌고, 그래서 발명가인 아버지는 그에게 특수한 안경을 만들어주었다.


그 안경 덕분에 시력은 유지되었지만, 그 때문에 그의 눈은 돋보기처럼 크게 보였다. 그 모습이 더욱 그의 외모를 놀림거리로 만들었다. 하지만 우성은 그럴 때마다 무심하게 넘겼다. 그저 눈을 가늘게 뜨고 천천히 교실로 들어갈 뿐이었다.


"띨띨아! 거기 서봐!"


갑자기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정이나였다. 항상 활기찬 그녀도 우성을 놀리는 장난에 가담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거 해봐, 그거!"


우성은 또 한 번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돌아봤다.


"한번만 해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색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신, 신실하, 하고 선, 선한... 신, 신선, 신선인..."


그 말이 끝나자마자, 교실 곳곳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항상 말을 더듬는 것이 그를 놀리는 가장 큰 재미였다.


감전된 것처럼 말을 더듬는 것도 그가 번개에 맞은 이후 생긴 부작용 중 하나였다.


학생들은 매일처럼 우성을 통과의례처럼 놀렸고, 그는 이미 이 모든 상황에 익숙해져 있었다. 무심하게 자리에 앉아, 가방을 열고 책을 꺼냈다.


교실 한쪽에서는 몇몇 학생들이 핸드폰 화면을 보며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그들이 보고 있던 것은 인기 아이돌 그룹 ‘사이렌’의 영상이었다.


"야, 내일 고척돔에서 사이렌 공연 열리는 거 알지?"


"와, 진짜 이뻐."


학생들의 대화에 맞춰 휴대폰 속에서 아이돌들이 본인을 소개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Like a Siren, 안녕하세요, 페르테, 노페, 레우코, 시아, 리게아입니다!"


각각의 멤버 이름이 학생들의 입에서 회자되었다. 그들은 사이렌의 외모와 퍼포먼스에 빠져 있었고, 내일 있을 고척돔 공연에 대한 이야기가 교실 전체를 뒤덮었다.


그러나 전우성은 그들의 떠들썩한 대화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머리카락을 헝클거렸다. 늘 그랬듯, 고개를 돌리려던 그 순간, 그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머리카락이 살짝 일어서는 기분.


"이거 뭐지?"


우성은 살짝 고개를 들었다. 창밖에서 이상한 정전기가 서서히 밀려오는 것 같았다. 기묘한 전류가 공기 중에서 느껴졌다.


그때 뒤에서 손이 툭 얹혔다.


정이나가 장난스럽게 우성의 머리를 쓸어올리며 웃고 있었다.


"야, 아침부터 머리카락 서 있는 거 봐! 전기뱀장어냐?"


그녀는 마치 전류를 직접 느낀 것처럼 손끝을 힐끗 보더니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짜야! 정전기 장난 아닌데?"


우성은 그녀가 머리를 만져서 그런가 생각하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 느낌이 단순한 장난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머리에서 스쳐가는 이상한 전류가 계속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상한데...'




전우성은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정전기 같은 전류가 자신을 휘감는 듯한 느낌이 조금 전부터 지속되고 있었다. 교실에서 울려 퍼지는 아이돌 영상과 학생들의 수다는 그저 먼 배경음처럼 들렸다.


그러던 중, 갑자기 교실 곳곳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웅성웅성 커지기 시작했다.


"어, 왜 이래? 영상이 멈췄어!"


"내 것도 멈췄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네..."


학생들이 각자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이리저리 확인하고 있었다. 우성도 고개를 들어 살짝 그 모습을 지켜봤다. 화면은 정지된 상태였고, 아무리 새로고침을 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반 문이 열리며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선생님은 약간 헝클어진 머리와 피곤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네요. 오늘 아침에 신호등이 고장 나서 길이 완전 차로 막혔어요. 도로가 엉망이라 차들이 움직이지 않더군요."

학생들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이상한 일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는 듯했다. 휴대폰 영상 멈춤, 그리고 신호등 고장까지.


선생님은 한숨을 돌리고, 잠깐의 침묵 후에 다시 말을 꺼냈다.


"자, 다들 주목. 다음 주에 우리 구에 새로 개장하는 아쿠아리움에 현장학습 간다는 거 다들 기억하고 있죠?"


학생들은 그 소식에 약간 들떴다.


아쿠아리움 개장 소식은 이미 여러 번 들었지만, 실제로 현장학습으로 가게 된다는 건 새삼 기분 좋은 일이었다.


"선생님, 벨루가도 있나요?"


누군가가 말했고, 학생들 사이에서 재미있겠다는 반응들이 이어졌다.


전우성은 여전히 무심한 듯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때, 교실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119 불러요!"


교실 밖에서 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선생님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지? 무슨 일이야?"


교실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심각해졌다. 선생님은 급하게 교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학생들도 곧바로 소란스러워졌고, 모두들 창문 밖과 교실 복도 쪽을 바라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한 학생이 급하게 들어오며 소식을 전했다.


"교무부장 선생님이 쓰러지셨어! 심장마비 같대!"


학생들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아연실색하며 서로를 쳐다봤다.


"뭐? 심장마비?"


"진짜야?"


순식간에 두려움과 혼란이 교실을 휘감았다. 학생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복도로 몰려나갔다.


복도 끝, 교무실 앞에는 이미 여러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전우성도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갔다.


교무부장 선생님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한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체육 선생님이 곧바로 CPR(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고, 주변의 다른 선생님들은 응급처치를 돕고 있었다.


"어떡해..."


학생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교무부장 선생님을 지켜봤다.


"AED! AED를 가져와!"


체육 선생님이 긴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학생들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아연질색했다. 그 순간, 전우성이 조용히 다가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쓰러져 있는 교무부장 선생님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손끝에 전류를 흘려보냈다.


우성의 머리 위에서, 부스스 서 있던 머리카락이 살짝 가라앉았다.


정전기처럼 서 있던 그의 머리카락이 조용히 내려앉는 것을 정이나가 우연히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교무부장 선생님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그를 쳐다보았다.


"선생님! 정신이 드세요?"


체육 선생님이 재빨리 그에게 물었고, 선생님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AED를 가져온 다른 선생님이 도착했지만, 상황은 이미 정리된 상태였다. 교무부장 선생님은 깨어났고, 숨을 쉬고 있었다.


"다행이에요..."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체육 선생님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에 있던 학생들도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안심하는 분위기였다.


정이나는 여전히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방금 전에 일어난 그 장면을 떠올리며, 그녀는 전우성을 힐끗 쳐다봤다.


"쟤가... 지금 뭔가 한 것 같은데..."


그녀는 분명 전우성의 머리카락이 내려앉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교무부장 선생님이 깨어난 것이다.


"혹시... 쟤가 심장제세동을 한 거야?"




정이나의 머릿속은 여전히 아침에 일어난 일이 떠나지 않았다. 교무부장 선생님이 쓰러진 그 순간, 전우성이 살짝 손을 댄 것만으로 선생님이 깨어났던 그 장면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정이나는 전우성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성의 머리는 여전히 부스스하게 떠 있었고, 그의 몸 주위에서 미세한 전류가 느껴지는 듯했다.


'설마 쟤가... 전기를 몸에서 만들어내는 거 아냐?'


그 생각이 들자 정이나는 참지 못하고 살짝 손을 내밀어 전우성의 팔을 건드려보았다. 순간, 짜릿한 느낌이 손끝에서 퍼져나가며 심장에 충격이 느껴졌다. 마치 정전기를 느낀 듯한 기분이었다.


"앗!"


정이나는 손을 휙 뒤로 빼며,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전우성을 쳐다보았다. 우성은 그녀를 째려보듯이 바라봤다.


"아, 아냐! 그냥... 미안."


정이나는 급하게 사과하며 상황을 넘기려고 했다. 속으로는 당혹스러웠다. 분명 뭔가가 있다. 우성이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장 그에게 묻기에는 너무 황당한 이야기였다.


쉬는 시간이 되자 정이나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을 확인해보니 배터리가 7%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아, 베터리 충전하는 걸 깜빡했네..."


그녀는 살짝 짜증난 듯 말했다.


휴대폰을 켜고 SNS를 확인하던 중, 갑자기 뜨는 특종 뉴스에 그녀의 눈이 커졌다.


"어? 뭐야?"


정이나는 놀란 얼굴로 영상을 다시 살펴봤다. 그 영상은 건물 붕괴 사고에 대한 뉴스였다. 커다란 빌딩이 주저앉아 버린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 충격적이었다.


그때, 옆에서 전우성이 조용히 그녀의 휴대폰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는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눈을 좁혔다.


"잠깐만, 이거 진짜야?"


"저 건물이 무너졌다고?"


주변에서 다른 학생들도 같은 영상을 보며 놀라고 있었다.


전우성이 그녀의 휴대폰을 가져갔다.


휴대폰 화면에 충격적인 뉴스가 계속 재생되는 중이었다. 붕괴된 건물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그 광경은 믿기 힘들 정도였다.


정이나는 다시 전우성의 얼굴을 쳐다봤다. 돋보기 안경 너머의 그의 눈빛은 점점 심각해졌다.


"야! 나도 잘 못 봤어!"


정이나가 급히 휴대폰을 다시 가져가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휴대폰을 다시 가져간 순간, 또다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이거 진짜... 어? 뭐야..."


정이나는 한마디 하려다가 휴대폰 배터리를 확인하고 다시 놀랐다.


분명 아까만 해도 7%였던 배터리가, 지금은 완충 상태였다. 100%였다.


'분명 7%밖에 없었는데...'


그녀는 당황한 눈빛으로 휴대폰을 보았다.


"뭐지...?"


정이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확실히 우성에게 뭔가 이상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전기와 관련된... 뭔가가.


그때, 갑자기 학교 전체의 불이 꺼졌다. 교실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TV와 방송이 일제히 꺼지고, 형광등이 깜빡거리다 완전히 꺼졌다.


"이거 뭐야?"


학생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정전이야?"


순식간에 교실은 혼란에 휩싸였다. 학생들은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며 서로를 쳐다봤다.


전우성은 그 순간, 머리카락이 다시 서서히 일어서는 것을 느꼈다. 그 느낌은 정전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마치 도시 전체에 흐르는 전류가 그의 몸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듯했다.


'이건... 뭔가 잘못됐어.'


이건 단순한 정전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학생들이 어두운 교실에서 웅성웅성거리는 가운데, 선생님이 후레쉬를 들고 교실로 들어왔다.


"학교 건물이 모두 정전됐어요."



선생님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창밖을 가리켰다.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인 듯해요. 대규모 정전 사태로 보입니다."


학생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그럼... 전 도시가 다 정전이란 말이에요?"


한 학생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아마 전 도시가 지금 정전 상태일 거예요. 하지만 걱정하지 말고, 우선 지하 대피소로 이동할게요."


학생들은 복도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곧 1반부터 줄을 지어 1층 복도 끝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2학년과 3학년 학생들도 차례차례 복도를 내려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학교의 가장 끝에 있는 문이었다.


평소엔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는, 모두가 신경 쓰지 않았던 문.


그곳은 항상 닫혀 있었고,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아무도 몰랐다.


"저 문이 원래 있었나?"


누군가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1반 선생님이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그 너머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그리고 그 계단 아래에는 어둡고 깊은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줄을 지어 그곳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스며들었다.


후레쉬 빛에 의존해 발밑을 조심히 내려가자, 거대한 보일러 장비들이 눈에 들어왔다.


학생들 사이에서 긴장된 숨소리가 들렸다.


"안으로 들어가세요."


선생님들이 중간중간에 서서 학생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학생들은 하나둘씩 넓은 지하 공간 안에 차곡차곡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그 공간은 학교 복도만큼 긴 지하실이었다.


어둡고 차가운 배관들이 머리 위로 뻗어 있었고, 그 아래에서 학생들은 서로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마치 거대한 창고처럼 보였지만, 그곳은 정식 대피소였다.


언제 이런 곳이 만들어졌는지 아무도 몰랐지만, 학생들은 불빛에 의지해 그곳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곳은 전쟁이 발생했을 때 학생들이 대피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진 것이에요."


선생님이 말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학생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누군가는 SNS로 상황을 확인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휴대폰도 전원이 꺼져 있었다.


정이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눈이 교실에서부터 우성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전우성이 보이지 않았다.


"띨띨이... 어디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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