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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나날

by 미히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모르겠다.


움직일 수도 없고, 들어오는 빛도 없다.


그저 생각이 있다. 생각이 있는 채로, 계속 있다.


아마도… 꽤 오래 누워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날이 밝았다 어두워졌다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것마저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는 시간도, 날씨도, 공간도 모른다.


단지—


내 머릿속이 살아 있다는 것만 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내가 있는 이 방은


한 칸짜리 셋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창이 있었던가.


창문을 본 게 마지막이었나.


누런 커튼 사이로 비치던 아침 햇살이 있었다.


그 햇살이 벽지에 번지던 모습.


중앙에 걸려있는 경애하는 동지의 초상화...


조용히 우는 어머니의 목소리.


그리고 그 뒤에서 들려오던


누군가의 명령.


조용히 하라.


겁먹지 말라.


그 말이, 지금도 머릿속에 맴돈다.


겁을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두려움은 죄가 되고,


두려움은 불씨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겁을 먹지 않으려고 했다.


계속, 계속 참고 참았다.


그러다, 지금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공기도 없고, 소리도 없고,


눈도 뜰 수 없고,


몸의 감각은 바닥에 놓은 돌덩이 같다.


그런데도,


생각만은 꺼지지 않는다.


그리고 꿈속에서만,


그 모든 것이 돌아온다.


먼저,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른다.


지금은 잊어버린 이름.


그 목소리는 낮고 조용하며, 조금은 떨려 있다.


다시 부르면, 나는 고개를 돌린다.


그 순간—


따뜻한 입김이 귓가를 스친다.


숨결이 있다.


공기가 있다.


숨을 들이쉴 수 있다.


달큰한 냄새.


익은 향.


무언가, 달궈지는 냄새.


배가 고프다는 감각이 있다.


다음 순간, 나는 식탁 앞에 앉아 있다.


하얀 접시 위에


김이 피어오른다.


붉은 기름이 맺히고,


그 위에 올려진 고기는 반들반들 윤이 나 있다.


나는 천천히 그것을 집어 든다.


입에 넣고,


천천히 씹는다.


따뜻하고, 쫄깃하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짠 기름이 혀 위에 녹는다.


뼈가 있다.


나는 그것을 조심스레 입술로 물어 빼낸다.


눈앞에는


의자 하나가 비어 있다.


거기에 누가 있었더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햇살이 커튼 사이로 스며든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미소 짓는다.


그 꿈은 오래가지 않는다.


곧 다시 돌아온다.


무감각.


무표정.


무시간.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살아 있는 걸까.


아니면,


아직 죽지 않은 걸까.


겁을 먹지 말라던 말은 진심이었다.


이젠 겁조차 먹을 수 없다.


나는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 살아 있는 걸까.


아니면, 아직도 죽지 않은 걸까.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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