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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성은 방 안을 가득 채운 모니터들을 바라봤다. 주지영은 모니터들 속에서 웃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승리감이 가득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을 재울 거야. 1분 만이라도, 아니, 기분이 좋다면 10시간, 열흘도 괜찮지. 100일도 좋고."
그녀는 모니터를 똑바로 바라보며 외치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광기가 담겨 있었다.
전우성은 이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주지현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모두를 재운 지 5분 정도가 지났어."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어때, 꿈속이? 물론 이곳은 너의 꿈 속이야. 너가 호스트지. 나는 디렉터랄까."
주지영은 천천히 방 안을 둘러보았다.
"다른 모두는 배우이자 관객이지."
"그만둬,“ 전우성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5분도 길어. 더 이상 시간이 지체되면 현실에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할 거야."
주지영은 그의 말에 조용히 웃었다.
"너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린 속한 곳이 달라. 너는 꿈 속에, 나는 현실에 속해 있으니까. 네 꿈 관리만 지금처럼 잘 하길 바래.“
그녀는 전우성에게 다가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궁금한데? 네 아름다운 환상이 얼마나 유지될지. 그리고 너의 시선이 닿지 않는 다른 곳에서는 지금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지."
전우성은 손을 들어올렸다. 그녀를 멈추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우성은 당황하며 다시 한 번 손을 들어 전류를 흘리려 했지만, 그의 전기 능력은 전혀 발휘되지 않았다. 주지영은 그런 전우성을 비웃듯이 말했다.
“꿈 속에서는 전기 능력 대신 너의 잘생긴 눈과, 성대, 스타일을 갖게 됐나 봐? 꿈은 현실과 반대이거든."
그녀의 말에는 조소가 묻어났다.
전우성은 무력감을 느끼며 그녀를 바라봤다.
"자, 그럼 나는 이만 현실에 눈을 뜨러 가볼게."
주지영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뒤통수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모든 모니터 화면이 암전되며 시야가 깜깜해졌다.
그 이후 환한 빛이 그의 눈에 들어왔을 때, 그는 응접실에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커넥팅 도어가 굳게 닫혀있었다.
'꿈에서 깨어나야 해.'
전우성은 절박한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말했다. 주지영의 말처럼 이곳은 그의 꿈 속이었다. 꿈에서 깨어나 주지영의 폭주를 막아야만 했다.
그는 곧장 세면대로 달려갔다. 찬 물을 가득 담고, 얼굴을 물 속에 담갔다. 하지만, 그 찬물은 어느 순간 따뜻해졌고, 물의 수위도 낮아졌다.
전우성은 혼란스러워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는 깨기조차 힘든 안락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는 있는힘껏 벽을 향해 돌진해보았지만, 벽은 순식간에 말랑말랑하고 기분 좋은 감촉으로 바뀌어 전우성을 끌어안았다.
'도대체 나는 무슨 꿈을 꾸는 거야?‘
전우성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뺨을 마구 꼬집었지만, 뺨은 찹쌀떡처럼 보들보들해서 전우성의 마음을 편하게 먄들었다.
그건 전우성의 몸이 번개와 같은 속도, 번개와 같은 강한 자극에 익숙해져 있는 탓이었다. 그에게는 왠만한 시련도 부드럽고 연한 것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우성은 마음을 다잡으며 생각했다. 단순한 물리적 자극으로는 이 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돌파구가 필요했다.
'심리적인 각성이 필요해.'
전우성은 혼란 속에서 머리를 쥐어짰다.
답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다.
'내가 왜 이 방 안에서만 고민하고 있는 거지?'
주지영이 말하지 않았던가. 이곳은 그의 무의식의 공간이라고.
그렇다면, 해답은 그의 머릿속 어딘가에 있지 않았다.
이 세계 어딘가에 실체화 되어 있거나, 아니면 어떤 인물로 상징화 되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 실마리를 찾아야만 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었다.
이 꿈 속의 모든 곳과 심지어 전 인류를 찾아가볼 시간은 없었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고 방황하다가는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될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문득, 그를 잘 알고, 이미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이 세계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주었던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그의 무의식에서 해답을 줄 만한 존재였다.
전우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교무실이다.'
교무실 안에서는 김지현 선생님이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전우성이 교무실 문을 벌컥 열며 들어섰다.
"선생님!"
그는 교무실 안에 그녀만 있는 것을 보고 곧바로 외쳤다.
"엄마!"
김지현은 아들의 능력을 알고 있었고, 가까운데서 비밀리에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가 이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이유였다.
전우성은 급박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긴 내 꿈 속이야.
꿈 능력자가 있어."
전우성은 창문 밖 하늘을 가리켰다.
김지현은 심각하게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꿈이라면 뭐든 할 수 있는 거겠지.
밖에서 안경 없이 다닐 때부터 눈치 챘어야 했는데."
전우성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시간이 없어, 엄마.
꿈에서 깨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지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문제에 답이 있어.
문제를 꼼꼼히 읽어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전우성은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말은 이 상황에서 선문답처럼 들렸다.
“꿈에 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게 뭐야?“
”아마도 열차를 멈추는 거.“
”꿈에 든 이유가 뭐야?“
”전기력을 소모한 틈을 타서 꿈 능력자가 나를 재운 거겠지.“
”꿈에 빠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게 뭐야?“
그 순간, 전우성은 지하철에서 내리던 순간을 떠올렸다.
꿈을 꾸기 직전, 어쩌면 그가 현실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풍경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8시를 가리키는 시간.
휴대폰에 띄워져 있던 메신저.
정이나는 분명 집에 간다고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