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07화

커넥팅 도어

by 미히

전우성은 커넥팅 도어 너머로 들어갔다. 도서관이었던 곳은 이제 수많은 모니터로 뒤덮여 있었다. 각 모니터에는 여러 객실들을 비롯한 학교의 여러 공간들이 비치고 있었다.


마치 비밀 감시실처럼 변한 이 공간이 그의 불안을 자극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그를 놀라게 한 것은 방 안에 있는 한 젊은 여자였다.


전우성은 그녀를 한 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지하철에서 그에게 안경을 주워다 준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녀는 사서 자리에 앉아 있었으며, 모니터로 전우성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모습과 침대에서 누워 있는 모습을 돌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뭐, 궁금한 거 있어?"


그녀는 방긋 웃었다.


"전부. 내가 보고 들은 게 전부 어떻게 가능한 건지 말해."


전우성은 감정이 조금 격해졌다.


그녀는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이야기를 알려줄게."


그리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내 이름은 주지영이야."




방 안에 있던 모니터들이 하나둘씩 깜빡이며 주지영의 과거를 비추기 시작했다. 전우성은 모니터에 나오는 영상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 서울로 올라왔어."


주지영의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화면에는 그녀가 대학에 합격한 후 서울로 상경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지.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순조로웠어. 내가 계획한 대로, 내가 꿈꿔왔던 대로."


모니터에 비친 그녀의 표정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에는 설레고 기대도 됐어.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자취 생활도 시작하게 됐으니까."


화면에는 주지영이 작은 자취방에 짐을 풀며 웃는 모습이 보였다. 서울의 밤거리를 걸으며, 그녀는 도시의 화려함에 매료된 듯 보였다.


그러나 분위기는 곧 어두워졌다. 화면 속 서울의 화려한 네온사인은 불편한 진실을 비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들을 마주하게 됐어."


주지영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모니터에는 그녀의 침대가 나타났다.


"밤마다 네온사인 불빛이 내 방 침대까지 들어왔어.


집 밑에 있는 술집에서 나는 음식 냄새가 내 몸에 베였고,


같이 사는 이웃들은 밤늦게까지 즐거움인지 고통인지 모를 고성을 질러댔어.“


주지영의 몸은 떨리고 있었다.


"쾌락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끔찍해."


이제 그녀의 목소리는 깊은 혐오와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전우성은 모니터에 비치는 그녀의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지영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하루는, 잠을 자려고 베개로 귀를 틀어막고 있었어. 밤마다 들려오는 소음들 때문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어. 그날도 복도에서 한 이웃 남자가 기분이 좋았는지, 쩌렁쩌렁 소리를 내며 올라왔어. 술에 취해서, 노래를 부르며 시끄럽게 굴었지."


주지영의 얼굴에 잠시 분노가 스쳤다.


“도저히 참지 못한 나는 결국 소리를 질러버렸어.


'잠 좀 자자!' 하고."


그녀가 이를 악물고 말하자, 모니터 속에 그날의 장면이 떠올랐다. 복도를 울리던 소음이 순식간에 일순간 조용해졌다. 영상 속 주지영은 놀란 얼굴로 방 안에서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눈을 살며시 뜨자, 나는 한 회사의 프론트에 앉아 있었지, 회색 정장을 입고 말이야."


모니터 속 장면이 바뀌며 주지영이 한 사무실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당황한 듯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앞에 있는 모니터에는 바로 그 남자, 내가 잠을 못 자게 했던 그 남자가 멀끔한 양복 차림으로 출근하는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어.


곧 회사 정문에서 그가 들어와, 게이트를 지나 사무실로 올라갔지."


영상 속 주지영은 남자가 회사 안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의자를 빙글 돌려 뒤를 돌자, 어느새 나는 다시 내 방에 있었어.


현관문을 열고 나갔을 때, 그 남자는 복도에 누워 자고 있었지."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전우성을 바라봤다.


"나는 알게 됐어. 내게 사람을 잠들게 하는 능력이 생겼다는 걸. 그리고, 그 꿈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는 것도."




"그 후에 내가 시도한 건, 이웃 사람들 전부를 한 꿈에 초대하는 것이었어."


주지영은 조용히 웃었다.


"복도에 잠든 남자가 다니던 그 회사였지.


그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각자 회사의 누군가를 연기하기 시작했어.


옆집 할머니는 갑자기 회장으로 변모했지."


주지현은 그 기억을 떠올리며 비웃음을 지었다.


"놀라운 건, 사람들이 모두 그 꿈을 기억한다는 거였어.


평소에 인사도 하지 않던 이웃들이 나에게 눈인사를 하거나, 직접 말을 걸기도 했어.


복도에서 잠들었던 그 남자는 엘리베이터에서 나를 만나더니 이렇게 물었지.


'혹시 우리 같은 회사 다니냐고.'"


주지영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웃 사람 전체를 한 꿈에 초대하는 건 실패하고 말았어.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꿈의 호스트가 가진 기력에 달린 문제였어."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예를 들어, 그 남자의 경우에는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이 고작 9명 정도였지.


하지만, 우리나라의 한 대기업 회장의 꿈에 들어갔을 때는 50여 명의 사람들을 한 꿈에 초대할 수 있었어.


그 회장의 사옥 1층 프론트에서,


나는 듀얼 모니터뿐만 아니라 내 휴대폰과 확장 모니터까지 프론트 아래로 내려놓고,


50여 명의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었지.


1층에 앉아있는 프론트 걸이 모든걸 다 보고 있을줄은 몰랐을거야."


그녀가 깔깔 웃었다.


"재미있는 건, 꿈이 그 사람의 무의식을 따른다는 거야.


본인이 익숙한 장소, 원하는 상황, 보고 듣고 생각했던 무의식 속의 재료들이 꿈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지지"


주지영은 그 무의식 속에서 이뤄지는 광경들을 떠올리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다음에 내가 착수한 건 뭘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전우성은 말없이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기력이 좋은 사람을 찾는 거였어. 세상 인류 전부를 한 번에 재울 수 있는 사람 말이지."


전우성은 주지영의 이야기가 점점 더 위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더 이상 단순한 실험을 넘어선 무언가 거대한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꿈 속을 건너뛰다가 너를 찾게 된 거야."


주지영은 이제 전우성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keyword
이전 06화신선호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