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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나는 이시연과 함께 컨텐츠 촬영을 하고 있었다.
방 안에는 이시연의 개인 포스터가 액자에 걸려 있었다.
이시연은 온라인 방송을 켜놓고, 시청자들과 라이브 채팅을 주고받으며 자신에 대한 근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최근 사람들에게 다시 모습을 드러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시연이 채팅을 통해 정이나에게 말했다.
'우성이가 사람들이 내 근황을 궁금해하더라고 해서 처음 방송 켠 건데,
반응이 좋더라.
돈도 잘 벌리고.'
정이나는 약간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왜 목소리가 그렇게 됐어요?"
그녀는 이시연의 변한 목소리가 여전히 궁금하고, 동시에 놀라웠다.
바로 그 순간, 방송 화면에 후원이 터졌다. 큰 후원 알림과 함께, 이시연은 전자음으로 노래 한 구절을 불렀다.
"IS THIS THE REAL LIFE"
정이나는 깜짝 놀라며 이시연을 쳐다봤다.
이시연은 그런 정이나의 반응을 보고 작은 목소리로 덧붙었다.
"시청자들과 약속한 거야. 후원 받으면 노래하기로."
정이나는 여전히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목소리는… 전우성이 그렇게 만든 거예요?"
이시연은 잠시 말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래.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전우성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거야. 그날 백두산에서…"
이시연이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그때, 전우성이 집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정이나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고, 이시연은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정이나!”
전우성이 방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확고하고, 평소의 더듬거리던 말투는 사라져 있었다.
정이나는 그를 보며 놀란 눈으로 물었다.
“너… 안경은 어디 갔어? 말도 안 더듬고.”
”이게 원래 내 모습이야.“
정이나는 여전히 그가 평소와 다른 모습에 적응하지 못한 채,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야, 우리 영상 찍어야 돼. 소설의 한 장면을 영상으로 만드는 수행평가라니까.”
전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로맨스로 하자.
나는 전기를 만들 수 있는 초능력자고…
너랑 닿을 때마다 전류가 커지는 거야.”
정이나는 약간 당황한 듯 그를 바라봤지만, 그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근데,” 전우성이 말을 이어갔다.
“너는 겨울철 정전기 때문에 나를 떠나려 했지.”
정이나는 그저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넌 나에게서 멀어질 수 없어,” 전우성은 자신 있게 대사를 읊었다.
“넌 이미 내 자기장 안에 있으니까.”
정이나는 그 대사에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지만, 전우성의 진지한 표정에 그저 어리둥절했다.
한편,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이시연은 이 모습을 영상으로 찍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미묘한 긴장이 서려 있었다. 그가 단순히 연기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전우성은 갑자기 정이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정이나, 나랑 사귀자.”
그는 진심을 담은 목소리로 연기했다.
정이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고, 그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멍하니 지켜봤다. 전우성은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순간, 번쩍 하는 빛과 함께 전우성은 갑자기 다른 곳에 있었다. 지하철 벤치에서 눈을 뜬 것이었다. 그는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와 함께 있던 온 도시의 사람들도 차례차례 눈을 뜨고 있었다. 마치 모두가 함께 긴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말이다.
전우성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전기력을 발휘해 주지영을 찾아내려고 집중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주지영의 게임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딨냐, 주지영.“
그의 눈에는 단호한 결의가 가득 차 있었다.
주지영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전우성은 그의 능력으로 그녀의 위치를 감지했다. 그녀는 한강공원에 있었다.
전우성은 주지영이 있는 곳으로 번개처럼 빠르게 이동했다.
전우성을 본 주지영이 초연하게 말했다.
"다음에는 비둘기들도 다 꿈꾸게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어. 너무 시끄럽네."
전우성은 그녀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 서서 말했다.
"주지영, 너는 정신질환자야.“
전우성은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그는 미세한 전류를 주지현에게 흘려보냈다. 전류는 그녀의 몸에 닿자마자 천천히 퍼져나갔다.
주지영의 시야가 점점 어두워졌다.
그녀는 잠시 비틀거리더니, 결국 풀썩 쓰러지며 깊은 잠에 빠졌다.
오후, 전우성은 학교에 나와 정이나와 마주쳤다.
전우성은 언제나처럼 돋보기 안경을 쓰고 있었고, 머리는 여전히 삐죽삐죽하게 삐쳐 있었다.
그의 안경은 투명 뿔테였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그의 모습이었지만, 정이나의 마음은 싱숭생숭 했다. 비록 그 일이 꿈이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전우성과 나눈 키스는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정이나는 평소처럼 말을 꺼냈다.
"들었어? 오늘 아침에 전 세계 사람들이 단체로 정신을 6분 동안 잃었다던데?"
전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야, 오늘은 진짜 밤새서 수행평가 해야 돼."
전우성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정이나는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너네 집이 혹시 아쿠아리움이야?"
전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이나는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뭔가 떠오른 듯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럼 우리 둘이 사귀는 건."
전우성은 고개를 저었다.
정이나는 그의 반응에 잠시 당황했다.
자신도 모르게 진지하게 물었지만, 그가 바로 부정하자 어딘가 허탈해졌다.
순간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재빠르게 분위기를 바꿔, 전우성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한 대 쳤다.
"그래, 나도 너 같은 돋보기 안경이랑은 안 사겨."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심장이 자꾸만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