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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치 Apr 05. 2024

50가지 거짓말

복수

그와 헤어지고 며칠 뒤 다시 만났다. 그는 본인이 한 거짓말을 에이포용지에 빼곡히 적어왔다.

이 이야기의 제목인 '그 새끼의 50가지 거짓말'의 정점이었다. 그가 한 거짓말을 사소한 것부터 큰 사건까지 다 적어왔다.


내가 아닌 여자와 동거 중인 상태

나와 만나고 있는 중에 다시 재결합

그 여자가 자동차를 사준 사실

그가 직업에 관련하여했던 수십 가지의 거짓말들

거짓말에 거짓말을 낳은 것들

그 여자가 나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

자신의 신상정보까지

.

.

숫자를 세기도 힘들었고, 어느 정도 예상했던 거짓말들도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을 포함 한 거짓말들이 다 적혀있었다. 그러나 그가 아직 헤드헌터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히 사실이라며 주장했다. 일단 이 사실은 접어두고 더 화가 나는 그 여자와의 관계를 물었다.


"이게 다야?"

"응, 정말이야."


사람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면 머리가 차게 식는다는 말을 어딘가 들어본 적이 있다. 바로 그날 내가 그랬다. 그는 또 이상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 여자는 이상한 여자야. 나를 안 놔줘. 집착해."

"그럼 이참에 같이 살고 있는 집에서 나와. 전화해서 헤어지자 해."


퍼스트에게 전화를 걸어 내 앞에서 헤어지자고 이별을 고하도록 시켰다. 그가 한 거짓말이 괘씸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복수였다. 그는 나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며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걸고,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우리 헤어져요."

"네? 무슨 말이에요?"

"우리 헤어지자고요! 그만해요!"

"네? 왜 그래요?"


그 여자는 당황하는데 그는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하는 건지, 헤어지자고 소리를 질렀다. 신뢰라고는 0.0001프로도 남아있지 않아서였던 걸까? 진심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연기하는구나, 잘하네. 아이고' 하고 쳐다볼 뿐이었다.


그가 전화를 걸었고,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다시 그 여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급하게 다시 헤어지자고 통보하며 소리쳤다. 단 몇 초간의 전화통화로 둘의 인연이 끝났을 리 없지만 둘의 관계가 다시 이어가기 위해서는 남자가 사과하고, 변명할 것을 생각하면 통쾌했다.


퍼스트는 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했다. 우리가 사귀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그의 사랑을 지지해주었다고 했다. 그 둘의 관계가 과연 어떤 관계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정상적인 관계는 아닌듯했다.


"전화번호 바꿔."

"지금 주말이라 못 바꿔."

"바꿀 수 있어. 인터넷으로 지금 해."


두 번째, 그에게 전화번호를 바꾸게 했다. 1년이나 사귄 남자친구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퍼스트와의 관계가 불안정하고, 놔주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하던 그의 말을 인용하여 전화번호를 바꿀 것을 설득했다. 진짜 목적은 내가 그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인터넷으로 전화번호를 바꿨다. 전화번호를 바꾸는 도중 우리의 1주년 커플링이 완성되었다며 찾으러 오라는 문자가 왔다. 1주일 전 함께 맞춘 커플링이었다.


[커플링이 완성되었습니다. 찾으러와 주세요._00점]


정말 영화 같은 타이밍이었다. 커플링을 맞췄었지? 맞아. 그제야 그와 커플링을 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분노가 다시 불타올랐다.


세 번째, 커플링을 다 가져버리자.


그 문자를 받고 우리는 커플링을 찾으러 갔다. 커플링은 금반지였다. 행복한 커플인 것처럼 커플링을 받고 나오며 그와 이야기했다.


"이건 내가 다 가지고 있을게. 네가 거짓말한 거 다 수습하고, 내가 널 용서하면 그때 줄게."


당연히 줄 생각도, 용서할 생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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