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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치 Jul 28. 2024

인생의 갈림길.

고등학교 3학년 입시 직전 내게 큰 고난이 닥쳤다. 한 가지 목표만 보고 3년을 달려왔는데, 내게는 다른 선택지는 없어야만 했는데! 어느새 길이 두 개가 생겨있었다. 과를 선택하는 길목에서 나는 길을 잃어버렸다. 


어느 날, 꾸준히 요리학과를 지망했던 내게 아빠는 진지하게 얘기했다. 


“너 몸도 안 좋은 애가 무슨 요리냐? 그냥 앉아서 설계하는 건축학과 가.”


아빠가 나의 대학 진학에 관해 먼저 얘기를 꺼낸 것은 처음이었다. 그 처음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관심받았다고 생각했고, 정말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아빠는 내게 여러 번 권유했다. 요리보다는 건축학과로 진학할 것을 말하고, 건축 분야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며 나를 설득했다. 


아빠는 건축업을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흔들렸던 내가 안쓰럽다고 느껴진다. 아빠의 권유가 관심이라 생각했고,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다. 내게 관심 가져주는 모습이 기뻤고, 인생에 중요한 선택을 하는 순간에 결정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두 가지 갈림길 앞에 서버린 것이었다. 결국 나는 한 대학은 요리를 다른 대학은 건축을 지원했다. 둘 중 하나만 합격했으면 좋았을 텐데, 문제는 둘 다 합격한 것이었다.


처음 대학에 합격했을 때 나는 전화로 아빠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요리학과가 있는 대학교 합격 소식이었다. 


“아빠 나 대학교 합격했어! 요리학과!!”


“어. 그래.”


아빠의 반응은 무뚝뚝했다. 기뻐할 것이라 기대했고, 신나게 전화했던 내가 무안해질 정도로 아빠의 반응은 무심했다. 


이후, 다른 대학의 건축학과에 합격해서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나 건축학과 합격했어!”


어!! 축하한다!! 잘됐네!


확연한 차이였다. 5년간 요리를 하겠다고 노력했던 그 모든 순간이 아빠와의 전화 한 통으로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바위처럼 딱딱한 것 같았던 마음이 사실은 설탕 덩어리였던 것처럼 바스러졌다. 아빠에게 관심받고 싶었던 어린아이였던 나는 결국 요리가 아닌 건축을 선택했다.      


애초에 내가 요리를 하는 것은 부모님의 선택지에 없었다. 


나는 그저 노예였다. 이 순간의 선택으로 나의 미래도 이미 저당 잡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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