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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피아 Nov 03. 2023

비상금은 나의 재정 구명조끼

과연 얼마나 필요할까?

뜨거웠던 지난여름, 난생처음 북유럽을 여행하게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타니 어김없이 안내방송이 나오면서 비상 상황에 어떻게 탈출해야 하는지, 어디에 구명조끼가 있는지, 산소 호흡기는 어떻게 착용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할 확률은 0.00001%로 매우 낮다. 하지만 확률이 낮다는 이유로 항공사가 비상사태에 대비한 준비를 전혀 해놓고 있지 않다면 과연 승객들이 안심하고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건에는 법적으로 안정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자동차에 설치되어 있는 에어백 같이 말이다. 하지만 법은 우리에게 인생의 비상 상태에 대비하는 매뉴얼을 만들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투자를 잘하려면 우선 내가 스스로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금전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비상금은 투자의 바다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게 도와주는 재정 구명조끼이다. 살다 보면 내가 아플 수도 있고, 자녀가 아플 수도 있고, 실직을 할 수도 있고, 이사를 가야 할 수도 있고, 갑작스럽게 큰 목돈을 써야 할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아무리 확률이 낮다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돈이 없다면 여유로운 마음으로 투자를 하기는 어렵다.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의 구 시가지, 감라스탄

비상금은 얼마나 필요할까?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비상금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 그다음에 오는 질문이 "그럼 얼마나 필요한가요?"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달라지지만 많은 재정전문가들은 '최소한으로 필요한 비상금이 세 달치 생활비'라고 말한다. 한 달치 필수 생활비를 모른다면 지난 한 달 동안의 모든 소비내역을 정리해서 나의 고정지출과 필수변동지출을 계산하면 된다 ('타고난 소비쟁이를 위한 기초 회계 상식 두 번째' 참조). 최소한은 세 달 치의 생활비이나 나의 견해를 덧붙이자면 다음과 같다.


상황 1: 부모님과 함께 사는 미혼 성인

주거비와 식비가 따로 들지 않기 때문에 3개월의 용돈을 가지고 있는다.

상황 2: 빠른 시한 내에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자취하는 미혼 성인

150만 원의 비상금을 갖고 있는다. 비상금이 없는데 갑작스럽게 아프거나 급전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필요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또 빚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상황 3: 빚이 없거나 주택융자금만 있는 자취하는 미혼 성인

3개월에서 6개월의 생활비를 가지고 있는다. 나는 6개월을 선호한다.

상황 4: 자녀가 없는 부부

3개월에서 6개월의 생활비를 가지고 있는다. 나는 6개월을 선호한다.

상황 5: 자녀가 있는 부부

12개월의 생활비를 가지고 있는다. 일 년 정도 직장이 없어도 자녀와 함께 버틸 수 있는 자금이 필요하다.

상황 6: 반려견과 함께 사는 경우

자녀의 유무를 떠나 9개월에서 12개월의 생활비를 가지고 있는다. 동물병원 진료비는 생각보다 비싸다.

상황 7: 단독 주택에 사는 경우

자녀의 유무를 떠나 9개월에서 12개월의 생활비를 가지고 있는다. 예기치 못한 수리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면 단독 주택에 살 면 안된다.

상황 8: 55세 이상의 은퇴자

24개월에서 36개월의 생활비를 가지고 있는다. 예상치 못한 의료비가 발생할 수 있는 시기이다.


비상금은 어떻게 보관해놔야 할까?

30만 원 정도는 현금으로 보관: 요즘 대부분 카드로 결제하는 시대이지만, 자연재해의 위험이 높은 지역에 사는 경우, 정전이 발생했을 때 카드 리더기가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머지 비상금은 비상금 전용 통장에 보관: 비상금은 말 그대로 비상시 사용하는 돈이기 때문에 비상금 전용 통장을 따로 만들어서 보관해 두는 것이 좋다.

나는 내 비상금을 금리가 높은 통장 (High-yield savings)에 넣어 놓는 걸 선호한다. 적금도 괜찮다. 포인트는 당장 쓰지 않을 돈일지라도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안전자산에 넣어 두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이 비상금을 정말 비상 상황이 아니면 손대지 않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에어백이 터지는 자동차는 자동차가 불량이거나 차주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영끌' 투자는 비상금이 없다는 뜻이다.

'영끌' (영혼까지 끌어모으다) 투자는 위험하다. 비상금까지 털어서 투자를 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유와 인내심은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성공의 열쇠다. 여유 없는 투자는 성공할 확률이 낮다.


마지막으로 미니멀한 생활을 할수록 적은 양의 비상금이 필요해진다 ('타고난 소비쟁이가 투자보다 먼저 해야 할 일 1' 참조). 적은 양의 비상금은 좀 더 빠른 시간 내에 확보할 수 있고, 비상금을 빨리 확보할수록 부자로 갈 수 있는 다음 단계를 더 빨리 밟을 수 있다. 요즘 많은 콘텐츠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1억 원의 목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1억 원의 목돈을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나의 재정 구명조끼 '비상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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