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는 내가 미래에도 게으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머리 위의 CCTV 없는 삶
세상에 사람은 2가지 유형으로 존재한다. 유튜브를 시청하는 사람과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유튜브를 만드는 사람은 2가지 유형으로 존재한다. 구독자 1,000명을 모은 사람과 모으지 못한 사람. ‘구독자 1,000명’은 유튜브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튜브를 꾸준히 하는 사람인지 구분하는 척도로 쓰이기 때문이다.
2개월 전, 나는 유튜브 채널을 만든지 1년 2개월만에 구독자 1,000명을 달성했다. 누군가는 '1년 넘게 열심히 했네'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 중 7개월 동안 유튜브를 잠시 '포기'했었다.
블로그에 체험단후기만 쓰던 문창과 졸업생에게 영상편집은 생각보다 고된 일이었다. '퇴사하고 유튜브나 해야지'보단 나름 촘촘한 계획을 가지고 퇴사했는데, 역시 사람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던가. 온 하루 24시간을 머리 위의 CCTV 없이 내 힘으로 채우려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20대 때나 하던 자아실현과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30대에 하려니 이게 맞나 싶었다.
돌이켜보면 이 방황이 길어진 이유는 ‘주변환경’ 탓이 가장 컸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스스로 주변환경을 감옥처럼 만들어 스스로 가둬둔다. 감옥 안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관련된 것들을 주입시키는 스타일이다.
예를 들면 나는 다이어트 한다고 회사 근처에 필라테스 수업을 오전 7시로 끊어놓고, 수업 전날 레깅스를 입고 잤다. 혹시나 새벽 5시에 알람을 못 들을까봐,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설치해둔 CCTV였다.
또 한때는 데이트 비용을 아끼기 위해 5년 동안 맛집 블로그체험단 리스트 72곳을 홈화면 폴더에 저장해두고 지냈다. 스마트폰만 켜도 신청하고 싶어지게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내가 말하는 '주변환경'은 수동적인 환경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구성하는 관심사이자 잘하고 싶은 것들이다.
미국의 목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존 맥스웰은 '내 주변사람 5명의 평균이 나'라고 이야기한다. 가만있어보자, 내가 수시로 카톡하는 가장 친한 사람 5명의 직업이 뭐더라? 내 주변사람 5명 중 4명은 직장인이었다.
그렇다. 나는 매주 자신의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의 삶이 아니라, 여전히 직장인의 주변환경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깨달음을 얻는 데까지 7개월이 넘게 걸렸다.
스스로 CCTV를 설치하는 삶
유튜브 채널 1년 5개월차 즈음, 다시 마음을 다잡고 본격적으로 토요일마다 유튜브채널에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평소 즐겨보는 구독자 60만 명대 채널처럼 ‘깔쌈한’ 썸네일은 못 만들어도, 턱에 생긴 여드름이 절대 사라지지 않더라도 일단 일을 벌려놔야 한다고 생각했다. 100% 완벽하지 않더라도 일단 시작하는 것이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설치하는 CCTV였다.
내 채널의 통계를 살펴보니, 나를 기억하고 반갑게 댓글 남겨주는 ‘재방문 구독자’는 없었다. 그렇게 침묵에 가까운 반응 속에서 2번째 영상을 올렸을 때, 구독자 1,000명을 돌파했다. 이상하게 댓글은 없는데 조회수가 나쁘지 않게 나왔다.
내가 설치한 또 다른 CCTV는 직접 만든 유튜브 스터디모임이었다. 샌드박스 교육프로그램 <리브 앤 라이브>를 수료하면서 수료생 12명을 모아 스스로 ‘매주 유튜브 업로드하는 주변환경’을 만들었는데, 현재는 12명 중 3명만 남았다. 그만둔 9명의 이유는 모두 같았다. ‘현생이 바빠서’였다.
반대로 나는 유튜브 하다보니 현생이 바빠졌다. 더 이상 공허하다시피 고요한 일주일을 보낼 수 없어졌고, 남편에게도 이번주 영상은 언제 올라오냐고 독촉 아닌 독촉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 바쁨과 독촉이 좋았다. 마치 회사에서 해야 할 일이 주어진 사람의 하루일과 같았다. 조금씩 내가 프리랜서의 삶으로 향하고 있다는 게 실감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 자신과의 ‘주1회 업로드 약속’을 2개월째 지키고 있을 즈음, 외부에서는 신기할 만큼 협업 제안 문의가 다시 찾아왔다. 자고 일어나면 협업 문의 메일이 와있고, 밥 먹고 나면 다른 메일이 와있었다. 나름 회사 짬밥으로 롱폼 단가 안내할 때, 제안을 수락할 때, 정중하게 제안 거절할 때 등 상황별 단골멘트를 복붙하며 회사원처럼 대응했다. 구독자 700명 때보다는 확실히 규모 있는 회사의 제안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달콤한 광고수익 꿈도 잠시, 여전히 채널의 아이덴티티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내가 영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정보는 어디까지일까?’, ‘짠테크가 시기적으로 유행이 지난 건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타겟은 2030대인데, 왜 4050대분들도 적지 않은 걸까?’, ‘유튜브가 내 적성에 맞긴 하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에 일일이 대답하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지 다들 알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하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100% 완벽하지 않더라도 일단 시작할 것. 3개월 전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설치한 CCTV를 최대한 오래 유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