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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eer Jan 31. 2023

아빠를 기억하기 위해서

프롤로그

  어느날 아빠가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아빠에게는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아빠는 늘 그랬듯 일을 다녀와서 저녁 식사를 하셨고 매일 다니던 길로 산책을 나가셨다. 그 길에서 아빠는 사고를 당했고 '평소와는 다르게'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극적이게도 나는 태국에 있었다. 그날은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떠나기 전날 밤이었다. 치앙마이에서 한껏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생각에 들떠있었다. 방콕에 비해 서늘하다는 날씨, 내가 좋아하는 초록빛 풍경, 입맛을 자극하는 음식들, 매일 같이 열린다는 마켓들..그 모든 것들을 누릴 생각에 빠져있었다. 집에 대한 생각은 내 머릿 속에 없었다. 그런 밤이었다. 



  그 밤,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빠가 다쳤어. 집에 돌아와야겠다."

 엄마의 말은 강력했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엄마는 내가 놀고 있을 때 되도록 연락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런 엄마가 태국에 있는 나에게 돌아오라고 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중한 상태라는 말이었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너무 무서웠다. 호텔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서두르지말고 되는대로 빨리 오면 된다고 말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문자를 받은 순간 바로 짐을 다 챙겼다. 그리고는 공항으로 뛰었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아빠는 지금 도대체 어떤 상태인걸까.'

'뇌를 다쳤다는데...'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지?'

'어떤 모습이던지 아빠를 그대로 사랑해줘야겠다.'

'그래도 아직 모르는거야.'


 그러면서도 마음을 다잡으려고 애썼다. 마음을 강하게 먹고 엄마와 아빠를 돌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국에 도착했고 집에서 엄마를 만나기로 했다. 



  엄마는 예상보다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빠가 교통사고로 다쳤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식이 없었다고. 그리고 내가 한국에 도착한 새벽에 상태가 심각해져서 뇌수술을 했다고 말했다. 의사는 일단 뇌압이 너무 높은 상태라 경과를 봐야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니 우리가 조금 기다려보자고. 아빠를 응원하고 있자고. 



  그렇게 며칠을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기다렸다. 피 말리는 시간들이었다. 병원에 가볼 수도 없었다. 중환자실은 아무나 면회할 수 없었고 담당의사도 면담신청을 해야 정해진 시간에 겨우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병원에 일찍 가서 무작정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때는 희망이 있었다. 아빠가 힘내서 좋아질 수도 있어. 아빠는 강한 사람이니까 분명 회복할거야. 엄마는 아빠 카드로 주유소에서 기름값을 넣으면서 말했다. "이거 일부러 아빠 카드로 긁는거야. 내가 마음대로 카드 그은거 알면 아마 너네 아빠 열받아서 벌떡 일어날걸?" 그렇게 믿었다. 

 


  그러다 그 전화를 받았다.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던 의사의 전화였다. 의사는 아빠의 뇌압이 낮아져야하는데 낮아지지 않고 오히려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렇게 볼 때 뇌사로 판정된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가족들끼리 논의하여 연명치료를 할지를 결정해야한다고. 전화 한통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다. 



  우리는 평소 아빠의 뜻대로, 아빠를 더는 힘들게 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연명치료를 중단하기로 했다. 그 다음 날 중환자실에서 마지막으로 본 아빠의 모습은 생각보다 편안해보였다. 사고당한 사람같지 않게 안정된 표정이었다. 우리는 아빠의 손을 꼭 잡으며 하고 싶은 말들을 내뱉았다. 끝내 아빠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언젠가 티비에서 청각은 마지막까지 살아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끝까지 말했다. 고마웠다고. 덕분에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내 목소리가 아빠에게 닿을지도 몰라. 


  그렇게 아빠를 보냈다.   



  세상에서 아빠를 잃어버린 나는 이 상황이 믿을 수 없었다. 아빠는 다정하고 상냥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큰 버팀목이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냥 눈을 비비고 다시 고개를 들면 내 앞에 나타나 손을 흔들것만 같았다. 늘 그랬듯 실없는 농담을 하며 내 어깨를 툭 칠 것만 같았다.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이 글을 쓰기로 한 건 아빠를 기억하고 싶어서이다. 지금은 아빠의 모습이 3D처럼 선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언젠가 아빠의 모습이 흐려질까 두려워졌다. 아빠의 모습이 3D가 아니라 사진 속 2D처럼 기억될까봐. 아빠의 목소리, 걸음걸이, 재미없는 농담, 음식 취향... 그런 것들을 잊게 될까봐 두려워졌다. 그래서 글을 쓰기로 했다. 지금은 이걸 쓰는게 힘들고 어렵지만 내가 아빠를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 



   질질 짜면서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아빠를 기억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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