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eer Jan 31. 2023

아빠와 산책

아빠에 대한 기억 조각 하나

  아빠는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평소 일 생각, 주식 생각, 각종 세상 돌아가는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찬 아빠는 걸으면서 그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는 듯 했다. 그래서 엄마가 같이 걷자고 해도 무심하게도 혼자 저벅저벅 걸어나갔다. 그렇게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멀리 걸어가곤 했다.



아빠 좀 같이 가자고!!! 




 아빠는 집 뒷편에 있는 성곽길을 좋아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오고 나서는 항상 그 성곽으로 산책을 나갔다. 성곽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면 속이 확 트인다고 말했다. "성곽은 내가 지킨다" 그렇게 말하며 매일같이 저녁 식사 후에 성곽 길을 걸으러 나갔다. 아빠는 항상 같은 길로 그렇게 걸었다. 그러니 사고가 난 그 날도 다르지 않았다. 아빠는 평소처럼 성곽길을 걷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빠가 사고난 후 그 길을 걸었다. 아빠는 어떤 경로로 걷고 있었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 길은 작은 골목이었다. 아무래도 사고가 날 것 같지 않았다. 그 차량은 도대체 왜 아빠를 보지 못한걸까. 온통 의문뿐이었다. 답답하기만 했던 우리는 사방팔방에 수소문하고 다녔다. 사고 장소 주변의 CCTV를 찾았고 주변 차량을 찾아 블랙박스를 보여달라고 애원했다. 그렇게 나는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보게 되었다. 모든 것이 화나고 울분에 찼다. 결국 아빠 인생의 마지막 장면도 산책이었다. 



  

  아빠와의 추억을 떠올리면 바로 머릿 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장면이 있다. 아빠와 등산을 다녀온 날이었다. 평소 엄마와 아빠는 주말마다 산행을 가는데, 그 날은 오랜만에 우리집의 대표 게으름뱅이인 내가 산행에 참여했던 날이다. 엄마, 아빠, 나 세명이 힘들게 산을 내려오면서 산 바로 밑에 있는 식당에서 밥 먹고 가자고 이야기를 했다. 햇빛은 유독 반짝거렸고 우리는 막걸리에 부추전을 먹자는 이야기를 하며 한껏 들떴었다. 산행 끝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상상은 무뚝뚝한 아빠도 신나게 했던 것 같다. 그 때 아빠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 이게 사는 맛이지
    

 

   쇼핑도, 거창한 취미도, 여행도 돈 아깝다며 즐기지 않았던 아빠에게 산책은 그런 재미였던 것 같다. 크게 돈 들이지않고 머리를 식히며 즐길 수 있는 작은 여유 말이다. 그런 재미로 아빠는 평생을 살았나 보다. 결국 아빠는 마지막까지 산책을 즐겼다.  




   

이전 03화 아빠의 장례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