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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eer Jan 31. 2023

아빠의 장례식

다른 이들이 기억하는 아빠에 대하여

  내게 장례식은 두려운 곳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장례식장에 갈 일이 종종 생기곤 했으나 장소가 주는 무게감이 컸다.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어떤 말을 건네기도 어려웠다. 장례식장에서의 예절도 걱정스러웠다. 이렇게 입는게 맞는 걸까. 여기서 웃어도 되는건가. 내게 장례식장은 두렵고 어려운 곳이었다. 그랬던 내가 아빠의 장례식장을 지키게 될 줄은 상상치 못했다. 이렇게 이별이 빠르게 올 줄은 나도 몰랐다.



  장례식장에는 아빠를 아는 다앙한 사람들이 찾아왔다. 아빠의 지인들을 거의 모르는 나로서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부고장을 보내야할지도 어려웠다. 무작정 아빠 휴대폰 연락처를 전체 선택하여 부고장을 보냈다. 갑작스러운 사고였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놀라서 전화를 했다.


"어제 아빠랑 밥 먹었었는데."

"엊그제 아빠랑 차 마시면서 이야기했었는데"

"믿을 수가 없어서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어요."


  사고 전후로 아빠가 활발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었는지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황망해하는 사람들 앞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들을 위로했다. "많이 놀라셨죠? 갑작스러운 사고였어요." 



  평소 낯을 가리며 아빠 손님들께 인사만 했던 나는 더이상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손님들이 아빠와 어떤 인연으로 온 분인지 몰랐기 때문에 먼저 그들의 테이블에 앉아 아빠와의 인연을 물었다. 손님들은 나에게 아빠와의 사연을 이야기해줬다. 



  아빠와 항상 점심을 드시던 보험회사 아저씨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빠랑 내가 맨날 점심을 같이 먹었다고. 내가 회사에 안나오기만 하면 아빠가 나한테 전화를 했다고. '형님 어디신교? 같이 밥 먹읍시다. 제가 그 쪽으로 갈게요.' 그렇게 만나면 아빠가 평소 주식 얘기랑 그런 얘기를 했다고. 좋은 종목있으면 아빠가 '형님 이 종목 잘 보세요' 말했다고. 그리고 진주에 이율 높은 저축은행있다고 해서 둘이 같이 적금도 들러갔다 왔다고."  

  아저씨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웃음이 났다. 너무 아빠다웠기 때문이다. 평소 아빠는 돈에 관심이 많았다. 주식투자해서 돈 버는 것에 가장 큰 희열을 느꼈고 이자같은 것들에 크게 반응했다. 점심시간에 친한 동료 아저씨를 만나 신나게 수다떨었을 아빠가 떠올랐다. 



  어떤 아주머니와 따님 분도 함께 찾아오셨다.

"아빠랑 같이 일하면서 알게 됐어요. 참 꼼꼼하셨어. 얼마전에도 들리셨는데. 믿을 수가 없네. 참 좋은 분이셨어. 사람들을 잘 도와줬다고." 아주머니께서 말하셨다. 

"맞아요. 얼마 전에도 오셔서 저를 막 놀리고 그러셨어요. 엄마한테 딸 날로 돈벌게 해주는거 아니냐면서 장난치셨는데. 아. 그리고 책 내신다면서요. 아빠가 오셔서 자랑하셨어요. 믿어지지가 않아요" 따님 분도 덧붙이셨다. 역시 아빠다웠다. 재미도 없는 시덥지않은 농담을 나한테 말고도 밖에서도 던지고 다녔구나 싶었다. 



  아빠의 오랜 동료 분들도 찾아오셨다. 조선업에 일하실 때부터 아버지를 알아오신 분들이셨다. 그 분들의 눈에는 황망함과 슬픔이 어려있었다. 나 역시 어릴 때부터 그 분들을 알아왔고 가끔씩 만나면 용돈도 주셨다. 내 결혼식에도 찾아와주신 분들이었다. 그 분들은 많은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 그저 허탈한 눈빛으로 앉아 계셨다. "사장님이 장례식장에 웬만하면 오지 않는데. 아버지는 우리의 오래된 동료였어. 안 올 수가 없었지."

 


  아빠의 옆자리에 앉았다던 보험회사 아저씨도 만났다. 

"저를 조카라고 부르셨어요. 제가 조카뻘이었거든요. 제가 아버지 태블릿 pc 잘 못하시는 거 도와드리기도 했는데. 제가 집에 가서 해드리기도 했어요. 그때 사모님이 과일이랑 내주셨는데요. 근데...아버지가 딸 자랑 진짜 많이 했어요. 진짜 장난이 아니라. 진짜 자랑 많이 했어요. 책 낸다고. 학교 다닌다고. 저도 딸 있어서 그 마음 아는데요. 진짜 이야기 많이 하셨어요"




  그렇게 아빠의 생애동안 아빠를 아꼈던, 혹은 곁에서 함께 했던 많은 이들을 장례식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아빠의 많은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소중한 이를 잃은 이들을 만나 함께 슬픔을 나누었던 자리였다. 


  3일간 장례식을 치르면서 장례식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바뀌었다. 살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아빠만 생각했던 시간들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3일 내도록 아빠를 떠올리고 슬퍼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며 많은 위로도 얻었다. 나와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다시 깨달았다. 장례식은 무섭기만 한 곳이 아니었다. 돌아가신 분을 함께 기리는 마지막 잔치였다. 



  그리고 아빠의 사람들을 만나며 많은 이야기를 들은 결론은 결국 아빠는 딸바보였다. 만나는 이들마다 온통 그 이야기였다. "딸 얘기 진짜 많이 했어요. 엄청 자랑스러워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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