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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eer Feb 01. 2023

아빠의 돈 사랑

아빠에 대한 기억 조각 둘

  세상 그 많은 것들 중에 아빠가 가장 사랑한 것은 단연코 돈이었다.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아빠의 돈 사랑은 대단했다. 아빠의 제일 가는 취미는 돈 모으기, 돈 관리였다. 머릿 속이 온통 돈 관리로 가득했고 말 끝마다 돈으로 끝났다. 


"그게 돈이 얼만데"

"그거 해주면 니가 돈 줄거가? 얼마 줄건데"

"쟤가 돈 무서운 줄 모르고 말이야"


 피는 못 속이는 지라 나도 꽤나 돈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도 아빠의 돈에 대한 사랑은 따라갈 수 없었다. 아니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돈타령해야하나 싶었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유독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엄마는 아빠와 감정적으로 소통하고 싶어했는데 항상 아빠는 돈에만 관심이 쏠려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빠와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는 애들 이야기, 오늘 있었던 즐거운 일, 맛있는 저녁식사, 주말에 갈 산책길과 같은 소소한 대화였다. 하지만 아빠는 그런 것엔 통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돈이었다.  




  지난 크리스마스,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 따뜻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엄마에겐 달콤한 초콜렛을 선물하기로 생각했다. 아빠를 떠올리니 선뜻 선물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한테 물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엇을 받고싶으냐고. "손 시려우니까 장갑? 아니면 지갑? 목도리? 뭐 갖고싶어?" 그랬더니 대답은 역시나였다. 


"돈 말고 갖고싶은거 없는데? 돈으로 주던지"


  그 대답에 왠지 마음이 섭섭해졌다. 나는 좋은 선물을 하고 싶었다. 돈처럼 쓰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쓰면서 나를 떠올릴 만한 그런 물건을 사주고 싶었다. 그런데 또 돈이라니. 완전 실망이었다. 뾰루퉁해진 나는 그냥 아빠 계좌로 입금해버렸다. 아빠와 나는 종종 그런 식이었다. 서로 잘해주려고 하다가도 서로의 말과 행동에 쉽게 감정이 상하고 말았다. 사실 주로 삐지는 건 내 쪽이었긴 하다. 어쨌든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건 돈이었다. 아빠는 왜 그렇게 돈을 좋아했을까? 



  

  아빠가 돌아가고도 난 슬픔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빠에 관한 온갖 재정적인 숙제들이 나에게 쏟아졌다. 엄마는 아빠의 부재를 감당하기에도 벅차보였다. 다른 지역에 사는 오빠에게 그 일들을 맡길 수도 없었다. 그 모든 걸 해결해야하는 건 나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 짓다가도 남은 일들을 생각하면 정신을 차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과정에서 느낀 점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참 많은 것을 대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사람의 목숨값이기도 했고,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아빠의 사고에 대해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면서 아빠의 목숨값이라는 표현을 썼다. 아빠의 죽음도 버거운 우리에게 각종 합의가 남았으니 정신 바짝 차리라고 했다. 이제부터 싸움의 시작이라고 말이다. 보험 회사를 상대로 돈을 제대로 받으려면 너네가 제대로 증거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도 충분히 벅찬데 이제 시작이라니. 무섭고 막막하기만 했다. 사실 우리 집에서 그런 어려운 일들은 아빠 담당이었다. 그런 아빠가 없으니 일이 돌아갈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일도 돈을 쓰면 쉬워졌다. 변호사나 손해사정사를 고용하는 일들이었다. 다 돈이었다. 


  또 돈은 마지막까지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을 대변하기도 했다. 아빠가 병원에 있을 때도 온통 돈이었다. "이런 치료, 저런 치료 있는데 할까요?" 병원에선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는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살릴 수 있으면 다 해주세요." 이후 명세서에 숫자로 찍혀 온 그 치료들의 비용은 어마무시했다. 장례식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역시 장례사업의 생리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사람을 자연으로 되돌리는데 필요한 온갖 상품들...마지막까지 조금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 앞에 돈은 필수였다. 온통 돈인 세상이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아빠에게도 돈은 그런 존재였을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세 사람을 지키기 위한 수단같은 거 말이다. 아빠가 악착같이 그렇게 모은 돈은 우리를 배부르게 했고 공부할 수 있게 했고 행복하게도 웃게도 만들었다. 아빠의 그늘 아래선 우린 돈 따윈 몰라도 괜찮았다. 돈 타령하지 않고 내가 나답게 살 수 있었던 건 다 아빠의 돈타령 덕분이었다. 이제서야 아빠와 돈을 생각하며 그의 그늘을 그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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