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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eer Feb 01. 2023

아빠가 돈을 쓰는 방법

아빠에 대한 기억 조각 셋

  아빠와 돈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아빠는 작은 돈은 무척 아꼈지만 큰 돈을 제대로 쓸 줄 알았다. 지원할 때 제대로 지원해주자는 식이었다. 아빠가 제일 싫어하는 건 티 안나는 작은 돈이 빠져나가는 일이었다. 주차비, 전기세, 은행 수수료...눈에 보이지 않는 돈 쓰는 걸 용서치 않았다. 



  아빠는 왠만하면 자기 물건을 사지 않았다. 자기 옷이나 물건사는 건 그렇게 아꼈다. 꼭 필요한 것만 샀다. 그러고는 슬쩍 우리한테서 얻고싶어하기도 했다. "나 이거 필요한데 니가 사줄래?" 이런 말도 종종 했다. 오빠 집에 갈 때는 오빠 옷을 공략하며 그렇게 하나 달라고 졸랐다. 우리가 엄마한테 선물을 해줄라치면 나한테는 뭐사줄거냐며 옆에 붙었다. 그런 아빠 모습이 조금 웃기기도 했지만 엄마는 너네 아빠는 자식한테 왜 그러냐며 손사래를 쳤다. 



  아빠는 그렇게 아낀 돈을 크게 썼다. 오빠가 유학을 준비할 때, 오빠가 새롭게 직장을 얻어 집을 구할 때, 내가 결혼을 앞두고 전세집을 구할 때. 우리 인생의 큰 순간에 아빠는 지갑을 열었다. 



  작년이었다. 결혼을 앞둔 나는 전세집을 구하고 있었다. 좋은 집을 원한 건 아니었다. 그냥 살 만한 집을 원했다. 하지만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라있었고 내 수중의 돈으론 삼십년 넘은 아파트도 역부족이었다. 아빠는 나보다 더 걱정을 했다. 나보다 나서서 주변 부동산들을 찾아가 집을 구하고 있었다. 


  나는 예산에 맞는 집을 찾았다. 상가주택으로 집 앞 공원이 예쁜 곳이었다. 난 보자마자 그 집이 마음에 들었다. 계약을 하려는데 갑자기 집주인이 전세에서 월세로 바꿔야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월세로는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집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아빠한테 전화해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고 다른 집을 보러 향했을 때였다. 갑자기 아빠한테 다시 전화가 왔다. 그 사이에 아빠가 그 거래를 주선했던 부동산을 찾아간 것이었다. 아빠는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2000만원 더 얹어주기로 하니까 전세로 살게 해준다더라. 그거 내가 해줄게. 이 집으로 해라."


  그 사이에 아빠가 딜을 해서 거래를 성사시킨 것이었다. 그게 또 신나서 바로 나한테 전화해 소식을 전했다. 나는 결혼할 때 양가 부모님 도움없이 딱 우리 돈으로만 하고싶었었다. 그래도 아빠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보다. 자기가 나서서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주고 싶었나보다. 그렇게 아빠의 도움으로 지금의 전세 집에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이사오는 날 아빠는 자신의 영웅담을 의기양양하게 이야기했다. 


안된다카는걸
내가 딱 나서서 이 집 잡았다아니가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처음 얻은 직장을 다닐 때 일이었다. 당시 나는 버스로 40분 넘게 걸리는 직장으로 출퇴근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내가 버스를 탈 때 이미 버스는 만원이었다. 40분을 내리 서서 버스를 타고 갔다. 이미 출근만으로도 지쳤다. 그 때 아빠가 차를 사야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내 수중에 돈은 충분치 않았다. 나는 작은 경차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 형편에 맞다고 생각했었다. 그러자 또 아빠는 바로 움직였다. 온갖 중고 차 파는 곳을 뒤졌다. 그러더니 어느 날 나한테 다짜고짜 차를 보러가자고 했다. 솔직히 난 경차를 사려던 내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아빠가 못마땅했었다. 툴툴거리며 아빠를 따라갔는데 새하얀 예쁜 차가 있었다. 중고차였지만 10000km밖에 타지 않은 거의 새 차였다. 그 차가 마음에 들었다. 아빠는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해서 차를 구매해주었다. 그게 내 차와의 첫 만남이었다. 아빠는 이 때도 그렇게 말했다. "거봐라. 내 말대로 하니까 다 잘됐다아니가?" 그렇게 아빠의 지원으로 많은 것들이 쉽게 이루어졌던 나날들이었다. 



  아빠에 대한 마지막 기억도 돈과 관련있다. 태국 여행 바로 전날이었다. 나는 운동을 가기 위해 친정집에 들렀었다. 평소 나는 퇴근한 후 친정집 근처인 운동 센터를 갔다가 신혼 집으로 가는 일정으로 지내고 있었다. 운동을 마치고 친정집으로 돌아왔더니 아빠가 갑자기 집에 데려다준다고 했다. 나는 춥고 밤에 어두우니 괜히 운전하지 말라며 걸어가겠다고 말했다. 나의 거절에도 아빠는 꼭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아빠 차를 탔는데 아빠가 우리 집으로 향하지 않고 반대쪽으로 운전하는 것이었다. 어디가냐고 물으니 은행에 간다고 했다. 


니 놀러간다며! 용돈 줘야지  


 

  나중에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운동간 사이에 아빠는 나한테 용돈을 줘야 하는데 현금이 없다며 ATM기에 갔다오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엄마는 아빠에게 당신이 돈 찾으러 간 사이에 내가 집에 갈 수도 있다고 아빠를 말렸고 아빠는 애 잘 잡고 있으라면서 엄마한테 부탁했었댔다. 엄마가 제대로 부탁을 들어 줄 지가 의심스러웠는지 아빠는 나를 기다렸다가 직접 데려다주며 은행으로 향했다. 그렇게 은행에 주차해놓고 뛰어가서 헐레벌떡 돈을 찾아온 아빠의 모습이 나의 마지막 기억이다. 



내 꺼 뭐 사오지말고 그냥 니 다 쓰고 온나   

  



   용돈을 쥐어주며 그렇게 말했다. 아빠가 주는 마지막 용돈인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용돈은 무뚝뚝한 아빠가 표현했던 최대한의 사랑이었다. 자신에게는 지독히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줄 수 있을 만큼 내어주는 것이 아빠가 돈을 쓰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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