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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의 마지막 날들

-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약속

by 몽B

아빠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을까?


여러 단락을 썼다 지워버렸다.


다시 단어들을 가다듬어 문장을 적어 보지만 역시 지워버린다.


아직 나는 이 상황이 익숙하지 않나 보다.








아빠는 신부전증 환자로 10년 이상 혈액투석을 받았다. 깔끔하고 예민한 성격이라 가시기 한 달 전까지 아빠가 중증 장애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크게 인지되지 않았다. 긴 세월 동안 아빠는 일주일에 세 번 투석실에 누워 고통을 인내해야만 했다. 마지막 가시기 전에는 괴로움을 호소하며 혈액투석을 철저하게 거부하셨다. 오락가락하는 정신에 투석을 받지 않겠다고 괴성을 내뱉는 아빠를 잊을 수 없다. 아이처럼 엉엉 우는 아빠의 두 손과 두 발을 침대에 묶고 투석실로 향했다. 아빠를 살리고 싶었다. 투석을 포기한다는 것은 영원한 이별을 말하는 것이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와 엄마는 정말이지 아빠를 살리고 싶었다. 그렇게 허망하게 가버릴 줄 알았다면, 아빠 뜻대로 했어야 했다. 편하게 해드렸어야 했는데 마지막까지 그러지를 못했다.


새로 이사한 우리 집에 들렀던 아빠는 다리에 힘이 풀린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연신 구역질을 했다. 열이 오르고 식은땀을 흘렸다. 아빠를 부축해 응급실에 갔을 때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엑스레이나 다른 검사에서는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틀 후 엑스레이에서 폐렴이 확인되었고 아빠는 병원에 입원했다. 입원한 저녁, 아빠는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왔다. 얼른 집에 돌아가서 아이들 챙기라며 나를 돌려보냈다. 아빠는 웃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닥칠 이별에 대해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빠는 의식을 잃은 채 깨어나지 못했다.


아빠가 의식을 조금씩 회복하면서 고통스러운 시간이 이어졌다. 아빠는 섬망 증상에 시달렸다. 누군가 자신을 죽인다고 생각했고, 침대를 불바다라 생각하며 뛰어내리려 했다. 우리를 알아보지 못했고, 욕설을 퍼붓기도 하였다. 산소호흡기를 자꾸 떼어버리려 했고, 침대에서 떨어지려 하였다. 밤새도록 나는 아빠 옆에 누워 아빠를 붙들고 있었다. 이렇게 아빠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더욱더 힘을 줘서 아빠를 붙들었다.


섬망 증세가 사라지자 조금씩 의식이 또렷해졌다. 하지만, 기력은 더욱 쇠해져서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었다. 깔끔하고 예민한 성격이라 누워서 변을 보는 일도 거부했다. 아빠는 변의가 느껴지면 화장실을 쓰고 싶어 했고, 나는 온 힘을 다해서 아빠가 원하는 대로 아빠를 부축했다. 화장실에 다녀온 아빠는 내 손을 꼭 쥐며 정말로 고맙다고 말했다. 존엄을 잃지 않게 해 주어서 고맙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빠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입원실에 중증환자의 머리를 깎아주는 이발사가 전단지를 돌렸다. 아빠는 이발사를 불러달라고 말했다. 누워서 이발을 하고 면도를 했다. 긴 머리와 수염을 자르고 나니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잘 생긴 우리 아빠가 보였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계속해서 들었다. 드라마 주몽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메로나가 먹고 싶다고도 했고, 엄마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나는 메로나를 찾아 편의점을 헤매었고, 엄마는 커피를 내려왔다. 박카스가 먹고 싶다고 했는데, 그냥 주스를 사다 드렸다. 괜히 부작용이 생길까 봐 그랬다.


아빠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죽음을 앞두고서도 집에 키우던 물고기들을 걱정했다. 오케스트라를 하듯이 살아야 한다며 악기 하나가 소리를 낼 때 다른 악기들은 작은 소리로 연주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지휘자를 흉내 내며 들어보지 못한 음들을 흥얼거리기도 했다. 비몽사몽간에 헛소리를 하면서도 우리를 재미있게 만들었다. 나는 그런 우리 아빠가 너무 좋았다. 힘들어도 좋으니 좀 더 오래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떠나기 하루 전. 나는 아빠 옆에 앉아 믹스커피를 홀짝거리며 마시고 있었다. 아빠가 나를 보며 싱글싱글 웃었다.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애들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라.> 무슨 그런 전래동화 같은 말을 하냐며, 나는 웃었다. 아빠도 웃었다. 아빠의 베개를 고쳐 눕혀 주었을 때, 아빠는 온 힘을 다해 내 뺨에 뽀뽀를 해주었다. 정말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나도 아빠 뺨에 뽀뽀를 했다. 어린 시절 이후로 우리 부녀는 데면데면하였지만 그 순간 나는 아빠의 어린 딸이었고, 아빠는 사랑하는 우리 아빠였다.


아빠는 아침부터 깨어나지 못했다. 숨소리가 고르지 않았다.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 했지만, 나는 아빠가 곧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아빠의 윗옷을 갈아입힐 때, 아빠는 거친 숨을 거두어버렸다. 불규칙한 숨소리가 사라지니 온 세상이 고요해졌다. 당황한 나는 간호사를 불렀고, 간호사들이 가볍게 심장을 마사지하자 잠시 숨이 돌아왔다. 나는 울면서 아빠 귀에 속삭였다. <아빠, 사랑해. 아빠, 고마워. 아빠, 아무 걱정 말고 잘 가. 아빠, 나 진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잘 살게. 아빠, 사랑해. 아빠, 고마워.....> 나는 끝도 없이 아빠 귀에 속삭였다. 고맙고, 사랑한다고. 내가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아빠는 그렇게 떠나버렸다. 의사의 사망선고가 있었고, 나는 한참 동안 아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아빠는 내게 전래동화 속 교훈 같은 유언을 남겼다. 잘 먹고 잘 살라는 아빠의 유언대로 나는 잘 먹고 잘 살아볼 생각이다.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대한 화두에 대해 고민하게 된 궁극의 계기는 아빠와의 이별 때문이었을 것이다. 믹스커피에 대한 애착의 시작도 아빠와의 시간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 자신과 삶을 소중하게 여기듯, 내게 주어진 일과 인연 맺은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겠다. 아빠의 유쾌한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여전히 내 마음에 울리고 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잘 먹고 잘 살아보겠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이 글들은 오직 나의 본능과 사고에서 기인한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일 뿐이다. 각자 자신만의 잘 먹고 잘 사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권해본다.


십여 편의 글을 쓰며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으려 애써보았다. 앞서도 말했지만, 답은 없다. 굳이 답을 해야만 한다면, 하루하루 주어지는 시간 속에 정답이 있지 않을까 정도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내 곁에 누워 잠든 아이와 우연히 읽게 된 책 한 권이 삶인 것이다. 쌓여있는 빨래 더미, 아이스크림 하나, 꼭 잡은 손, 흐르는 눈물, 따뜻한 커피 한 잔.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담아내는 공간과 그 공간이 지나가는 시간의 중심에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알고자 하는 정답은 그에게 주어진 시간을 흐르는 자신만의 공간 속에 있지 않을까. 잘 먹고 잘 사는 삶에의 실천을 다짐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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