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일이다. 근무 중 메일 알림이 떴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글이다. 모른 채 메일을 닫고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으며 큰 소리로 웃었다. 기대 없이 신청한 글로 <작가> 칭호를 얻게 되다니.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을 투고하고 낙방하기를 여러 번 반복했던 내가, 작가의 꿈은 애시당초 마음에서 비워버렸던 내가, 축하의 메일을 받게 되다니... 이런 날 만큼은 맥주 한 잔 꼭 해야 하지 않을까???
맥주는 사랑이다. 믹스커피 못지않다. 맥주 예찬에 관한 글은 이미 <작가의 서랍>에 고이고이 저장되어 있다. 아이들 다 재워두고 송골송골 땀 흘리는 컵을 쥐어들 때, 청량감이 목구멍으로 흘러들 때, 손 끝까지 찌릿하며 알코올이 전해질 때. 나는 그 시간이 행복하다. 그런데... 맥주 사랑에 관한 글을 당분간은 완성하기 힘들 것 같다.
오늘은 한 달 전부터 예약되어 있었던 건강검진일이다. 어젯밤, 속을 비워내는 절차를 위한 물약을 고통스럽게 먹어냈다. 500ml 물에 두 가지의 가루약을 넣어 먹으면 된다. 그렇게 조제한 물을 전날 밤에 두 번 검사 당일 새벽에 두 번 마셔야 한다. 조제한 물 끝에는 맹물을 500ml씩 더해 먹는다. (사실, 많이 좋아지긴 했다. 2005년 무렵 내시경을 할 때 받아 든 물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용량이었다.) 좋아졌다지만, 고통스럽기는 매 한 가지.
어제 밤늦게까지, 맥주 대신 조제한 물을 꾸역거리며 먹어냈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기쁨으로 고통을 인내하면서... 혈압이 낮고 맥박이 빠르다는 걸 제외하고는 딱히 건강이 문제가 되었던 적은 없었다. 퍼붓는 빗줄기를 뚫고 오늘 오전 9시, 병원에 도착했다.
혈압은 여전히 낮았는데, 맥박이 100이 훨씬 넘어갔다. 빈맥이라나... 혈당을 쟀다. 공복 혈당 수치가 정상 범위를 벗어나 있다. 복부 초음파를 했다. 간에 종양이 보인다며, 추가로 CT를 찍었다. 단순한 혈관종처럼 보이긴 하는데 정확한 결과는 다음 주 중에 나온다 한다. 위내시경 결과 위산과다로 15일 분량의 약을 받아왔다.
맥박이 빠른 것에는 스트레스와 카페인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한다 한다. 혈당 수치가 높은 것은 당류 섭취가 문제 될 수 있겠지...그렇다면 믹스커피.....간이 좋지 않다면 그건 술 때문일 테고... 위가 좋지 않다는 건 그 모든 것을 복합한 이유일 수 있겠다.
잘 먹고 잘 산다는 기준을 이야기하면서, 믹스커피만큼은 먹어도 된다며 강력하게 이야기한 글로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런데 하루 만에 상황이 달라졌다. 잘 먹고 잘 산다는 기준을 다소 수정해야겠다. 맛있는 것 취향껏 먹으면서 살아가는 일은 당연히 행복한 일이다. 슬프게도 나는 그럴 처지가 안 되는 사람으로 판별되었다.
믹스커피 사랑, 맥주 사랑. 잘 먹고 잘살기에 대한 전면 수정이 필요하다. 빈맥과 높은 혈당의 식이에 대해 알아봐야겠다. 간과 위에 좋은 음식이 무언지 살펴봐야겠다. 그럴 나이가 되었다. 역시, 확신과 과신과 확언은 위험하다. 삶이나 내면뿐 아니라 내가 뭘 먹고 사는지도 틈틈이 살피고 경계해야겠다. 나는 잘 먹고, 잘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