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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B Oct 21. 2023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

학선 류래웅 선생님과의 만남



그동안의 모든 인터뷰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류래웅 선생님으로부터 책을 선물 받던 순간입니다. 긴 인터뷰를 마치고 선생님께서는 가족들의 부축을 받아 안방 침대에 누으셨습니다. 그리고 어깨를 사용하셔서 힘겹게 서명을 해주셨습니다. 힘이 들어 보이셔서 하나만 해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여섯 권 모두에 서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때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 시간이 아주 긴 시간처럼 여겨졌습니다. 비어있는 시공간에 놓여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는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어떤 부름을 받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반드시,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공부하겠다는 약속을 마음 깊숙이 새겼던 시간이었습니다. 나와의 약속이기도 하고, 선생님께 드리는 약속이기도 한 다짐이었습니다.




명리학을 공부하는 사람 중에 학선 류래웅 선생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연배가 있으시기도 하고 그 삶의 행적이나 일화가 대단하기도 하여 범접할 수 없는 분인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선생님께서 집필하신 <사주실록>은 명리를 공부하고 얼마 되지 않은 때에 구입을 했던 책입니다. 박청화 선생님과 창광 선생님 그리고 백민 선생님을 인터뷰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생겼나 봅니다. 류래웅 선생님의 사무실로 무턱대고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선생님과 통화는 아주 짧게 이루어졌습니다. 인터뷰를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었는데, 백민 선생님이 하셨다면 더 알아볼 필요도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사는 지역이 부산인지 아시고는, 울산에 갈 일이 생길 테니 인터뷰 날짜는 천천히 잡아보자고 하셨습니다. 전화를 끊고는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싶었습니다.


기약이 없는 인터뷰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선생님께서 4월 강연회에 초청해 주시는 연락을 주셨습니다. 울산 코엑스에서 열린 강연회는 선생님 개원 51주년 기념을 겸하는 행사였습니다. 그 강연회에서 선생님을 처음 뵐 수 있었습니다. 기문둔갑에 대한 짧은 강의를 해 주셨고, 연이어 명리 등에 관한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뜻깊은 날 선생님을 뵙고 인터뷰를 다시 한번 기약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뷰를 하였던 다른 선생님들은 오랜 시간 강의를 들으며 익숙해진 분 들이거나, 여러 번 소통하며 이야기를 나눈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류래웅 선생님은 사전 상담도 하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눈 것도 아주 짧았기 때문에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막막하였습니다. <고려기문학회> 카페를 통해 선생님 글들을 읽고, 그 철학적 견해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또 선생님과 어떤 주제로 대화를 이어 나갈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 보았습니다. 콘티를 작성해서 보내드리고도 암담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을 뵙기 직전까지 계속해서 선생님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보고 알아보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나는 선생님과 대화하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선생님과 가족분들이 따뜻했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유머감각은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가족분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얼마나 많이 웃었던지 배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린 시절의 사고로 소아마비로 평생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선생님과 함께 있는 내도록 선생님이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가족분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손발이 되어 주신 이유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선생님께서 너무나 큰 어른으로 계시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몸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은 나에게 책을 선물하시던 시간에서였습니다. 손으로 글을 쓰시는 일이 어렵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서나 출판물이 많으시고, 학문적으로 너무나 다양한 활동을 해 오셨기 때문에 컴퓨터를 사용하시거나 필기를 하시는 일에 어려움이 있으실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글을 쓰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공기처럼 가벼웠고, 자유로움이 넘쳐흘렀습니다. 선생님께서 어깨를 이용하셔서 글을 적어 내려 가시는 동안, 여러 단어가 머릿속에 스쳤다가 사라졌습니다. 공기, 물, 바람, 별, 땅, 얼음, 사람, 영혼, 삶, 행복, 슬픔, 아픔, 기쁨, 환희, 권력, 돈, 사랑, 명예, 건강, 진리, 진실, 공부, 학문, 몰입, 노력... 사람이 만든 그 어떤 단어로도 그때 내가 느낀 어떤 이해를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순간의 시간과 공간은 공기처럼 가벼웠고, 자유로움이 넘쳐흘렀습니다.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 그날의 다짐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https://youtu.be/FXfaQuW6jlQ?si=FDdME79E4TYt-x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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