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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글몽글 몽구름 Apr 17. 2023

번외) INFP로서의 주부, 엄마 그리고 일

가사, 육아, 일 _ 이 정도면 쓰리잡.

나는 머릿속이 늘 복잡하다. INFP라서 그런가? (MBTI 만능설)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들이 가득하고 이상한 상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갑작스러운 아이디어들(그중 1/100만 실현 중), 또 해야 하는 것들이 뒤죽박죽 섞여서 늘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두지 않으면 일을 이리저리 중구난방 벌려놓고 급한 것부터 급하게 마무리 짓는 스타일이다.


가사와 육아는 하던 대로 루틴화 시켜놓아서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괜찮았다.

아침에 첫째를 준비시켜서 등원차량 태워 보내고 둘째를 아침 먹여놓고 혼자 놀게 두고 나는 청소기를 돌린 다음(주로 둘째도 옆에서 청소기장난감을 들고 같이 한다 해서 오래 걸리지만) 둘째 옷 입혀 산책 나가고 아차차! 산책 나가기 전에 세탁기 돌리기는 필수이다! 다녀와서는 점심을 먹이고 낮잠을 재운다. 그동안 아침 점심 먹은 설거지를 하고, 나가기 전에 미리 돌려놓은 세탁물들을 널어두고 걷은 빨래는 개고.. 그리고 잠시 쉬고 있으면 첫째 하원시간이 온다. 둘째가 그전에 깨지 않으면 얼른 깨워서 하원장소로 데리러 가기만 하면 됐기에 늘 우왕좌왕하던 내가 겨우 루틴을 잡아가던 중이었다. (나 사실 J일지도...?) 사실 이런 루틴도 잡아가기 꽤나 힘들었었다. INFP로서 늘 우왕좌왕하던 중이었는데, 둘째가 돌이 지나면서 식사규칙도 잡히고 나만의 온전한 시간이 매일은 아니지만 보너스처럼 여러 날 중에 한 번씩은 생겨왔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엄마로서의 삶만 있는 내 인생,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집에서 육아로 지쳐있던 내가 기분전환이 필요하다며 육아스트레스를 풀고 싶다고 하자 남편이 선물해 준 아이패드로 취미 삼아 틈틈이 그림도 그려가던 중에 인스타광고가 눈에 확 꽂혀버렸다.


“캐릭터 문구 작가! 당신도 될 수 있어요!”

(캐릭터, 문구, 작가 이 세 단어 모두 내가 환장하게 좋아하는 단어의 조합이었다. 그림 그리는 것도, 문구류도 좋아하던 나에게 취미처럼 시작해서 이게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걸 내가 직접 만든다고? 상상만 해도 그 성취감에서 나오는 도파민에 이미 중독돼 버릴 지경이었다.)


어릴 때부터 귀여운 캐릭터 그리는 것 좋아했던 나.

내가 만든 캐릭터굿즈를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으면 하는 나.

엄마와 아내가 아닌 나 자체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싶던 나.


내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4년 넘게 육아와 살림만 하던 내가 내 정체성을 찾아 갈증을 심하게 느끼던 중이어서가 아닐까?


주부로서 엄마로서의 삶이 나빴다거나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름 두 사람을 사람답게 키워가는 것에 보람도 느끼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나의 색이 처음 묻기 시작해 나와 남편의 색으로 물들어가고 나의 가치관과 비슷해져 가는 모습을 보며 이래서 자식을 낳는구나 라는 생각도 했었다. 애초에 결혼한 이유 자체도 아기를 낳고 키우고 싶었기 때문에 아마 딩크를 원했다면 나는 결혼하진 않았을 거다.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하는 그런 주부의 삶에서 내 나름대로 나의 색을 잃지 않으며 나름 잘 살고 있었던것 같다. 하지만 점점 나라는 사람보단 아이들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되는 삶이 지속되면서 ‘나는 무엇인가, 뭘 해야 나를 잃지 않을까.’ 이런 불안감이 매일 내 머릿속에서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내향형에 생각도 많고, 감성적이라 나의 정체성에도 꽤 많이 진심인 나는 사춘기 때부터 하던 생각이 최근들어 한층 더 농도가 짙어진 느낌이었다. 요즘의 8090년생 엄마들의 육아사춘기가 이런 식으로 잘 온다고들 하던데, 최근엔 많은 애기 엄마들이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있는 걸까? 그전까진 막연히 답답하던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나의 여러 가지 욕망이 구체화되면서 이런 생각들이 더 뿌리깊게 자리잡기 시작한 것 같다. 둘째가 크면서 육아가 수월해지고 몸이 편해지니 슬슬 다른 생각이 발동 걸리려던 참이었나 보다.

어른들이 말하는 먹고살만하니 딴생각한다는 딱 내 모양새가 그러했다.


남편에게 말했다. 캐릭터문구 작가 관련한 강의를 수강해보고 싶다고.

아이들에게 소홀해지지 않으면서 시간 쓰기도 자유롭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을 거 같다고 이야기하며 내 나름대로의 사연을 구구절절 말했다.

그리고 사실 생활비에서 조금씩 아끼며 내 나름대로 따로 모아둔 비상금이 있었고 강의비도 비싸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야기도 하며 이걸로 수익이 생기면 가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부분도 어필했다.


“하고 싶으면 해 봐. 하면서 자기가 즐거우면 된 거지. 자기 말대로 돈까지 벌면 더 좋은 거구.”


가끔 너무 쿨하다 싶을 때도 있는 남편이지만 이럴 때 쿨하게 대답해 주는 부분이 은근 든든했다. 남편에게 내가 모은 돈도 있지만 여기서 제품제작을 하다 보면 추가로 더 돈이 들 수는 있다고. 그러나 금액은 맥시멈 이 정도일 거라고. 또 장기간 인지도 없는 브랜드로 있는 경우 생각보다 수익이 빨리 나지 않을 수 있다고 여러 가지 대미지가 있을 수 있다고 일러두었다. 월 수입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나마 우리에게 대출이 없고 아이들이 어렸기에 가능한 도전이었다.


그렇게 나는 문구사장이 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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