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운 Dec 16. 2023

39. 눈도 오고 그래서

커피를 마셨어

오늘 언제 눈이 내렸냐는 듯이 해가 비친다.

늦잠을 자고 싶은 아침이었다. 

몸은 천근 만근이였고 여러 가지 문제로 머리는 더 천근만근이었던 아침이었다.

엄마 눈이 와!!!!!!!!!!!!

아이의 신난 목소리에 눈을 떴다.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나는 눈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월급쟁이 시절에도 나는 눈을 좋아했다.

눈이 많이 내려 지하철이 연착되고 대지각 사태가 속출되는 때에도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발이 푹푹 들어가는 눈길을 한 시간씩 걸어서

너무너무 행복하게 출근을 했었다.

정말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말이다.

평소 하던 지각도 눈이 내리는 날에는 하지 않았다.

소복이 쌓인 눈에 한해의 고난도 미움도 슬픔도 다 녹아내려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어린시절에는 똥강아지처럼 눈이 오는 날은 밤낮없이 운동장에 꼭 첫 발자국을 남겨야 하는 아이였다.

눈이 내리는 날에는 아빠는 카메라를 들고 나는 무장을 하고 골목이며 학교 운동장이며 몇 시간을 뛰어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대단한 우리 아빠이다.

눈으로 포근하게 느껴지는 추위였겠지만 온몸이 꽁꽁 얼도록 나의 사진을 찍어주고 웃어주고 눈사람을 함께 만들어 주셨던 나의 아빠. 보수적이라 참 많이 싸웠지만 정말 자상하고 가정적인 우리 아빠.

어린시절 나와 함께했던 아빠는 내가 들어가자고 할 때까지 원 없이 나와 즐겨주신 덕에

나는 아무리 차가 막혀도 아무리 눈이 쌓여도 그저 눈이 오면 행복했다.


그랬던 나는 오랫동안 눈이 와도 아무렇지가 않았다.

헌데 오늘은 눈이 내린다는 말에 몸을 일으킬 기운이 났다.

대충 옷을 구겨입고 커피숍에 않아서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어 마셨다.

잠시 나와 아빠가 깔깔거리며 행복했던 시간이 생각났고 

오늘따라 창밖의 흩날리는 눈도 참 이뻐 보였다.

 

작가의 이전글 39. 길이 있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