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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운 Jan 29. 2024

산후조리 도우미

고민고민하지 마~~

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이 작은 아이를 내가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

보통은 산후도우미를 고민하는 순간이다.

이 좁은 집에 도우미가 잘 곳도 없었고 출퇴근 도우미를 부르더라도 내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기는 게 불편했다. (아마 그때는 호르몬의 노예라서 그랬었던 듯하다.)

지금 누군가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산후도우미와 가사도우미에게 맡기고 일 년은 온전히 심신을 회복하는데만 쓰라고 할 것이다. 그것이 길게 본다면 아이와 훨씬 퀄리티 있는 육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육아는 생각보다 굉장히 큰 에너지와 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온전히 돌보는 행복감도 있지만 내 몸이 온전하지 못하면 정작 안고 뛰고 아이가 기억할 나이다 되었을 때 짜증 내고 화내는 자신을 발견하고 죄책감과 씨름하는 지옥의 쳇바퀴에 갇힐 위험이 크다고 생각한다. 양가 조부모가 많은 부분 육아에 힘을 써 주신다면 또 상황이 다르지만 온전히 홀로 애를 키워야 한다면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자녀를 키우는 것이 당연하지만 남편이 돈만 벌어오는 것을 가장의 역할을 다 한 것으로 알고 있는 상황이라면 나를 위해 도움을 받아서 더 완벽하게 회복을 해야 한다.


아이의 젖병거부로 모유수유를 하게 된 나는 산후도우미가 비싸기만 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밥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다 할 건데 굳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출퇴근으로 가사 도우미의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가사 도우미를 부른 것은 백번 잘한 일이었다. 외식을 몇 번 줄이면 되는 일이고 옷을 안 사면 되는 일이었다.

산후조리 기간에 대한 정확한 조언과 정보가 없었던 것도 나의 선택에 한몫을 했다. 

산모교실과 출산 교실, 부모교육 그리고 각종 육아서와 임신 출산 관련 책에도 산후에 관해서는 정확하고 자세하게 나온 것이 없었다. 신체 변화에 대해서 자세히 나온 곳도 없었다. 주야장천 온갖 수업과 강의와 책으로 임신과 출산 육아를 공부한 나도 이렇게 무지한데 '너도나도 낳는 애 낳아놓고 너만 애 낳았냐' 하는 남편이나 시부모가 뭘 알고 나를 이해를 할 수 있을까. 게다가 공감 능력도 떨어지는 사람들이라면 두말하기 입이 아플 지경이다.

그리고 병 수발에 장사 없다고 했다. 날 낳아 준 부모도 아닌데 뭐 그리 곰살맞게 나를 보필하겠는가.

(물론 주변을 보면 너무 훌륭한 남편들이 많다. 태교일기를 쓰고, 아내와 태교를 하고, 아이를 낳기 위해 밤을 새워서 호흡을 하고, 매일 밤 다리를 주무르며 수고를 말해주고, 어떤 아빠가 될 것인지 고민하고 계획하고 실천하는, 출산 후에는 아기띠로 안고 집에서 남은 업무를 보고 아내에게 개인 시간을 확보해 주고 이벤트와 서프라이즈 선물을 하는 가정에 애틋한 남편. 능력이 심하게 많은 남편들이 많고 그의 아내인 그녀들이 말 끝마다 "나는 그렇게는 못해!! 나는 그렇게 하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내가 뭔가를 못해서 이렇게 살게 된 것 같지는 않다. 잘못이 있다면 그런 남자를 알아채는 눈과 지혜가 모자랐달까.. )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모유수유를 한다고 산후 도우미를 생략한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산후도우미는 아기 우유만 먹이고 먹이고 재우는 일만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다.

산모의 마음도 편하게 도와주고 마사지도 해주고 잘 시간과 화장실 갈 시간(매우 중요하다.)  씻을 시간을 확보해 주어서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도와주어 모유수유하는 엄마에게도 엄마의 행복한 호르몬이 흐르는 젖을 아이에게 줄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인 것이다.

산후도우미를 포기했던 나는 피곤함과 스트레스로 넘치던 젖량이 한 끼가 모자랄 정도로 줄었고 덕분에 아기의 배는 작아져서 입 짧은 아이로 성장하며 성장기 내내 매일매일 매끼마다 밥 먹어라 더 먹어라 실랑이를 하게 되었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넘쳐흐르는 젖을 먹고 자란 아이는 예민한 아이가 되어(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엄마인 내가 담기 버거울 정도의 에너지로 아이의 회복탄성력을 키우기 위해 심신을 다해 노력해야 했고 돈도 들어가야 했다.


내가 산후도우미를 구할 때가 아마 280만원였던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한국도우미분들은 30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의 나는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을 하였고(일을 하다 그만두니 돈 벌어오는 고충도 아는 터라 괜히 눈치를 보던 시절이었다.) 이제 아이도 태어났으니 하루라도 더 빨리 집을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세로 집 없이 시작한 결혼이라 하루빨리 집을 사기 위해 개인 소비(나의 소비)를 거의 0원에 맞추며 살아가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돈이면 아이 침대도 좋은 걸로 살 수 있고 나아가서 아이에게 적금도 주식도 차곡차곡 사줄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아이 적금도 주식도 들어주지도 못하고 세월만 흘려보냈다.) 경제권이 없었던 내가 주장하기 버거운 금액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내 새끼만 낳은 것도 아니고 이 한 몸 탈탈 털어 낳은 생명인데 충분히 주장해도 될 권리였다. 하지만 그때는 참 남편의 수고를 존중해주고 싶었던 건지 아직 애정이 남았던 건지 아니면 아이를 위해 현재를 빨리 받아들이고 살아내야 했던 건지 알 수 없으나 산후도우미는 포기를 하고 가사 도우미에게만 도움을 받기로 했다. 아마도 후자였을 것이다. 남편이 해결해 주길 기다렸던 것 같다. 자꾸 산후조리원도 산후도우미도 돈이 나가는 선택을 떠 밀고 책임을 전가하는 남편이 꼴 보기 싫었거나 말끝마다 나오는 돈 버는 생색을 여유롭게 찬양해 주지 못했던 나의 마음이 선택한 것 일 수도 있겠다. 그게 뭐라고.... 듣고 싶은 말 해줘 버리고 내 몸 챙기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것인데 그때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가며 구슬리는 것이 비참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더러워서 안 한다!! 안 해!!' 생각이었다. 아름다운 그녀들의 조언처럼 듣고 싶은 말 해주고 내 것이나 챙기는 게 이제서는 맞는 방법이었다는 것을 알지만 이제 깨달아서 뭘 하겠는가. 우아하게 늙을 수 있었는데... 굵은 손가락마디와 팔뚝, 높이 솟은 승모근과 굽은 어깨를 얻게 되는 첫 시작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타인의 도움을 받아들이고 나의 권리를 주장하며 나의 회복에 집중하였을 텐데... 많은 아쉬움이 든다.


가사도우미 혼자 3인의 생활을 도와주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일단 다 큰 성인이 아니었기에 모든 살림이 한 번 더 손이 가는 일이었다. 나도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다. 아기 옷가지와 이불은 내가, 아기 식기를 씻고 소독하고 정리하고, 음식을 만들고 먹이고, 아이를 씻기고 재우고, 나중에는 아기 물건 정리하고 소독하고, 웃어주고 놀아주고 책을 읽어 주고.... 차려 놓은 밥도 제때에 먹지를 못해 식은 밥을 데워 국에 말아 꾸역꾸역 마시고는 다시 아이의 일정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들이었다.

나는 아이를, 가사도우미님은 생활공간과 화장실, 식사, 어른빨래 등등으로 하루 종일 쉴 사이 없이 일을 하였다. 행복을 가장한 전쟁이었다. 아기가 자는 동안 엄마도 쉬어야 또 아이랑 웃으며 눈을 맞추니 자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가사도우미님 한 분뿐이셨다. 모두가 엄마가 키워야지 엄마가 돌봐야지 엄마는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 모두 나의 컨디션과 상관없이 쏟아지는 좋은엄마?지혜로운 엄마의 역할들 속에서 말로만 하는 조언과 도움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를 직접 쉬게 해주는 유일한 도움자는 도우미님이셨다.

아빠가 처음이듯이 엄마가 처음인 이 상황에서 산후도우미와 가사 도우미는 엄청남 도움이었다.

그래서 좋은 도우미님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천운이 따라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던 것이었다.

그만큼 좋은 분을 만나는 것도 참 쉽지 않고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 엄마들 사이에서는 이모님을 모시고 산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워킹맘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나 또한 여러 도우미님들을 만났었고 내가 어떤 사람과 함께 할지 선택해야 했다.

나는 일은 조금 못 할지라도 아이가 보고 듣기 때문에 밝고 긍정적인 분들과 주로 인연을 맺었다. 한번 맺어진 인연들은 아이가 성큼 자라기까지 함께 했었다. 말하지 않아도 친정엄마처럼 챙겨주시고 아이도 이뻐해 주셨던 분들이셨는데 코로나가 한참 위협적일 무렵 우리는 그렇게 연을 멈추게 되었다.

이후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면서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으나 면접을 볼 에너지도 없어서 결국 온 가족이 더러움에 적응하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만 남아 있지만 지금도 내가 경제력을 가지게 된다면 당장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혹시라도 산후 도우미로 고민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고민을 거두고 돈 낭비의 의심을 거두라고 말하고 싶다.

가사 도우미도 마찬가지이다.(추후 이 이야기는 다시 다루어 보겠다.)

한두 푼이 아닌 가격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영원히 하는 것도 아니고 기간과 시간을 정해서 충분히 도움을 받아야 한다. 10년 동안 골골거리면서 찌들어서 안 아픈 곳을 찾는 게 더 빠를 지경이 되지 않으려면 형편에 맞게 조율해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한 달이든 두 달이든!!

그 기간을 투자해서 산모의 몸이 제대로 회복되어야 여자는 행복하게 육아를 할 수 있고 남자는 아가씨 때의 어여쁜 마누라를 다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형편이 안 된다면 절대로 요청을 해야 한다.

남편에게!! 부모님에게!!

산후조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나중에 남편 탓, 부모탓, 자식 탓을 하고 싶지 않다면 산후조리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적은 돈으로 나의 몸을 되돌릴 수 있는 그 시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란다.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홀로 온전히 완벽할 수는 없다.

때로는 든든한 지원군에게 지원을 받고 투자하는 것이 훨씬 이로운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원군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내가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뉘앙스의 것들은 음...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도 될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엄마가 행복해야 가정이 행복하고 아이가 행복하다

이 말이 의미를 깨달았다.

임신과 태교 출산 육아의 과정에서 엄마의 행복을 선택한 가정들은 모두 행복하게 10년을 지나 20년을 바라보며 잘 지내고 있다. 어떤 상황이 다가와도 든든한 남편과 함께 아웅다웅 알콩달콩 잘 살아가고 있다.

온갖 강의와 책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이 말은 아주 많은 것들을 담고 있는 말이었다.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엄마가 행복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 에너지로 아이에게 남편에게 웃을 수 있다면 아주 잘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고 굉장히 훌륭한 엄마라고 자부해도 좋을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부터 매일이 힘든 엄마가 아니라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할 것이다. 훌륭하진 않아도 아이에게 행복한 엄마의 모습을 남겨주고 싶다.

이 밸러스게임에서 승리하는 그날까지!!

나 혼자 하는 육아도 행복한 육아가 되게 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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