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으면 누군가는 내 속에 그 자신을 넣고 싶어 한

by 차현

아침마다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고 일정한 행동을 하는 루틴이 있었다. 어느 책에서 말하기를 사람의 루틴은 100일 약 3달을 지키면 몸에 베인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서 힘들게 100일 가까이 지킨 루틴이었다. 하지만 무너지는 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지금 다시 그 루틴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마 그때로 돌아가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루틴이 무너지고 점점 루틴을 실행하던 이전의 나로 돌아가는 게 느껴진다. 루틴을 실행하고 지킨 시절은 시간의 소중함과 스스로가 중심을 잡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 중심을 잡고 있어 주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다. 루틴이 무너진 지금은 시간관리도 엉망이 되었고 제일 중요한 스스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루틴을 실행하려 했지만 스스로 동기부여가 그때만큼 크지 않아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침 루틴은 나에게 매우 중요했다. 스스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이 동기 부여가 되어 더 강하게 나를 몰아세울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아침루틴은 포기하지 말자 다짐했는데 지금 다시 시작을 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아침 루틴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일어나서 신문을 읽고 글을 쓰고 청소를 하는 것인데 출근시간에 맞추기 위해 시간 배분이 매우 중요했다. 이때 시간 배분의 중요함을 알게 되어 스스로에게 주어진 시간에 대한 한계를 생각하게 되고 그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의 중요성을 알고 쓰는 스스로의 모습에 동기부여를 더 할 수 있었다.


매일 루틴을 지키다 보면 아침의 일상이 달라진다. 우선 하루의 일과가 정해지는데 아침에 해야 할 일과 저녁에 해야 할 일이 나눠지게 되고 시간분배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그리고 앞서 말한 시간의 배분은 시간의 중요성을 알게 되어 내가 어떻게 하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든다. 내가 찾은 고민의 해답은 나를 위해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즉, 나를 중심으로 시간을 쓰고 생각을 하다 보면 내면이 단단해 짐을 느낄 수 있었다. 내면이 단단해며 주변의 유혹에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되었고 내가 가진 고민들 대부분이 해결되었다. 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우가 줄어 행동에 제약이 적었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말과 같았다.


루틴이 무너지고 난 뒤 이전의 나를 잃어버렸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점차 루틴을 실천하기 전의 내가 채우고 있었다.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작은 문제에도 타인에게 기대고 싶어 했다. 이전에는 아무런 문제도 아닌 것이 큰 문제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타인의 도움을 찾는 것이다. 또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한 경우 도움을 준 사람은 자신의 의도대로 내가 움직이고 변하길 바라는 경우도 많았다. 내가 중심을 잡고 있다면 도움을 준 사람의 의도는 생각하지 않고 순수한 도움만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상대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경우가 잦아지면 스스로 중심을 잡기보단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게 된 내가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이 우리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중심을 잡고 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내면은 가족의 영향이나 친한 친구, 혹은 선배의 영향이 반영되어 있다. 이때 타인의 영향이 나의 생각보다 크다면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 확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반대의 경우는 고집불통이 되거나 타인과의 소통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배분이 필요하다. 내면은 타인보다는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중요하고 타인의 영향이 그다음이다. 우선 타인의 영향은 나의 방향성을 잡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생각과 사고는 타인의 영향을 바탕으로 스스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고민을 하고 실천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을 자아라고 하고 자아는 나를 만드는 중심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얼마 전 일이었다. 직장 내 사소한 인간관계의 문제로 불편을 느끼고 있던 시기였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불편함을 다른 선배에게 털어놨고 얼마 뒤 그 선배는 나를 불러 위로해 주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감사하기도 한편으로 의아하기도 했다. 저 말을 한 게 근 한 달이 다되어 가던 마당에 갑자기 뜬구름 잡는 것 같았다고 할까? 하시고자 하는 말은 인간관계를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묵묵히 할 일만 하면 된다는 내용이었는데 결국은 다른 직원에 대한 험담을 통해 위로를 해주셨다. 그래서 듣고 난 후 나를 잃으면 누군가는 내 속에 그 자신을 넣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분이 그런 의도를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타이밍과 내용이 내가 가진 고민과 안 맞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내린 결론은 내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자신이 중심이 돼서 살아가고 판단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선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이 선택이 최선인지 아닌 도 모르는 상황에서의 선택은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 스스로가 옳고 그른 판단을 할 수 있는 기준과 내면의 중심을 잡고 있다면 그 판단이 비록 미숙하고 부족해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나는 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아마 내가 중심을 잘 잡고 있었다면 아무 말 없이 넘어갔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느낀다. 나를 잃으면 누군가는 자신을 채우려 한다. 내가 없는 상황에서 행동과 판단은 후회를 가지고 오는 경우가 크다. 참고로 조언을 구하는 것과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의 중심을 잡고 현명한 판단을 하며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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