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고백하건대 나는 ADHD에서 과잉행동이 빠진 ADD이다.
최근 ADHD의 개념에 대해서는 워낙 많이 알려진 터라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간단하게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나의 ADD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다 적고 보니 너무 많네....)
- 학교수업? 당연히 초. 중. 고 모두 정규 수업을 들은 적이 없다. 수업시간에 시끄럽게 떠들거나 하지 않았지만, 조용히 사부작사부작 딴짓과 딴생각만 했고 덕분에 시험은 거의 독학으로 공부해서 봤다.
- 지각은 뭐 말해 뭘 하겠는가? 학교 때는 가깝기도 하고 엄마에게 등 떠밀려서 잘 갔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는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내 첫 회사에서는 고맙게도 날 위해 출근시간을 30분 늦춰주었었다.
- 초등학교 때, 숙제나 준비물을 거의 안 해갔다. 이상하리 만큼 집에 오면 학교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뇌가 리셋이 되어버려 숙제나 준비물 따위는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 지하철을 반대로 타는 건 일상 다반사, 내릴 역을 지나치는 것도 마찬가지. 가장 심한 케이스는 다른 호선으로 갈아타고 한 정거장만 가서 내리면 되는데, 정신이 다른데 팔려서 10 정거장 이상 가서야 깨달았던 적도 있다.
- 정리정돈은 그냥 나에겐 없는 능력이구나 하고 포기했고, 그나마 다행인 건 업무 파일정리는 한다.
-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는 게 오히려 더 힘들고, 회의도 집중이 힘들어서 다른 일을 하면서 동시에 하는 게 오히려 더 편하다.
- 약속 시간이나 장소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고 약속조차 잘 잊어버린다. 정말 정말 고맙게도 내 정말 친한 지인들은 이런 나를 이해해 주어 하루 전이나 당일에 꼭 확인 문자를 보내준다. (고마워 ㅠㅠ)
- 일을 잘 벌인다. 충동성이 적다고 해도 이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래서 시작은 많이 하는데 끝을 보는 게 잘 없다.
- 업무 타임라인을 잘 못 맞추거나 뒤로 미루어 놨다가 하는 경우가 많고, 하기 싫을 때는 적당히 하기 싫어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그냥 못. 한. 다. (특히 단순작업은 쥐약이다.)
- 이런 이들의 문제 중의 하나가 아이러니하게도 과몰입인데, 본인이 좋아하거나 흥미 있어하는 일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심각하게 과몰입한다. 대학교 때, 26시간 동안 잠도 안 자고 밥도 동시에 먹으면서 한 과목 공부만 한 적도 있고, 뜨개질이나 게임 같은 순간 꽂힌 일을 하느라 밤을 새우는 일은 다반사였다.
- 여러 가지 생각이 시시 때때로 팝업처럼 떠오르기 때문에 (심지어 말하는 중간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해야만 하는 일들을 잘 못하고, 말하다가 다른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 엄청 신경을 써야 해서 중간중간 버퍼링이 있다.
나이가 거의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콘서타를 처방받아먹기 시작했고, 뒤늦게라도 좀 개선이 되긴 했지만 (최고용량을 먹어도 아직도 특성이 발현되는 거 보니 난 정말 심각한 수준인가보다....), 그전엔 어떠했겠는가?
적어도 지금은 하기 싫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머릿속 팝업들이 좀 줄어들었다. (이건 좀 아쉬운 점이긴 하다.)
당연히 연구실에서는 물론이고 회사에서도 나는 실수투성이였고, 다행히 이런 나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인정하고 있던 터라 스스로 실수 방지책을 만들기도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있도록 나만의 방식을 만들면서 일을 하고 있다.
다행히(?) 약간 강박적 성향도 가지고 있어서, 최종 결과물 전에는 어떻게든 스스로 수습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의도적으로 그냥 넘기지 않는 이상은 성과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여기서 나와 비슷한 특성을 가진 분들이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나만의 노하우를 좀 공유하고자 한다.
1. 인정하고 포기한다.
남들하고 다르고 약으로도 100% 개선될 수 없다. 때문에, 차라리 내 특성이 어떤지, 어느 정도 인지 인식하고 인정하고 포기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래야 그나마 ADHD인들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창의력을 발휘하여 나에게 맞는 방식을 고안해내어해야 하는 일을 완수할 수 있다.
2. 나만의 작업방식을 만든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분명히 실수를 많이 하고 빈틈 투성이 일 것이다. 특히, 단순 반복작업인 경우, 여러 번 검수한다고 해도 그 순간마저도 집중하지 못해서 실수한 부분을 놓칠 것이다. (뭐지... 예언인가...?)
나는 한두 번 이런 나에게 너무 큰 실망을 한 이후, 실수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가능하면 일을 올바르게 완수하기 위한 방식을 고안해 내려고 한다.
예를 들어,
- 예산을 짜는 일에는 300줄이 넘는 업무의 한 줄 한 줄에 각 특성에 맞는 금액을 넣어 이런저런 특성 별 합산이나 총금액을 계산해야 한다. (내가 또 숫자에 쥐약이라 특히 실수를 많이 하는 부분이다.) 그러면 그냥 엑셀에서 함수가 3줄을 넘어가고 복잡해도 무조건 함수로 해결했다. 기계는 거짓말을 안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절대 안 틀린다. (함수까지 틀리면..... 답 없지 뭐...)
- 또 다른 예는, 동일한 서식의 문서에 각 제품에 따라 다른 정보를 입력해야 하는 일을 100번 넘게 해야 했는데, 파이썬으로 자동화 코드를 만들어서 엑셀에 있는 각 데이터를 문서의 해당 부분에 넣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 리스트에 있는 수백 가지 파일을 다운로드해야 되는 경우, 엑셀파일에 있는 특정 정보로 웹사이트 크롤링을 통해 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웹페이지에서 소스를 제공하는 경우) 그러면 리스트와 프로그램만 있으면 하나하나 반복적으로 다운로드하여야 했던 파일을 클릭 몇 번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3. 검수를 철저히 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 나 스스로 검수를 하는 경우에도, 순서를 정해서 순방향에서 한 번, 역방향에서 한 번 하는 방식으로 순서를 바꿔서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 안 보이던 것도 보이는 경우가 있다.
- 하지만, 스스로 하는 검수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최종화 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한번 더 검수한다.
- 타임라인 부분에서는, 감사하게도 우리 너그러운 나의 전 매니저님께서 내 특성을 간파하시고, 진짜 타임라인을 안 알려주시고 대신 2-3주 전을 타임라인으로 지정해 주셨다.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속이는 방식으로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4. 모자이크 식으로 일을 완성한다.
지금도 글을 쓸 때, 생각나는 대로 여기저기 문장을 시작해 놓고 끝은 내지 않은 상태로 두었다가, 다른 문장을 쓰고, 또 다른 문장을 쓰고, 다시 순서를 배치하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글을 완성하고 있다. (이건 모두가 그러는 건가??)
생각이 팝업 형식으로 떠오르기 때문에, 그리고 휘발성 메모리라 금방 잊어버리는 통에, 생각나는 대로 작성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작업하는 게 지루하지 않아 좋다. 다만, 중간에 잊어버리고 완성을 안 하는 경우가 있어 실수에 주의해야 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가진 특성을 인정하고,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실수도 하고 어려운 순간도 있지만, 이런 경험이 나만의 성장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나와 같은 특성을 가진 다른 분들도, 실수에 좌절하기보다는 각자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