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도 행복하지 않을까?

by 몽츄
그토록 원하던 간호사가 되었고, 응급실에서 일하며 많은 걸 이루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웃을 일이 줄어들었다.
‘안정적인 삶’은 분명 나를 위해 선택한 길이었는데, 왜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을까?
이 글은, 나 자신을 버텨내기 위해 버리고 있던 것들에 대해 써 내려간 기록이다.


졸업 후엔 바로 취업을 했다.


모두가 말렸다.


“그렇게 힘든 응급실을 왜 굳이?”

하지만 나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응급실에 지원했고, 원하는 대로 발령받았다.
내 목표는 단 하나였다.


사직은 없다. 중증도별 모든 구역의 트레이닝을 마치고, 응급 소생 구역도 혼자서 다 커버 가능할 때까지는.


하지만 입사 후 처음 만난 프리셉터는, 말 그대로 ‘악마’ 같았다.
동기 없이 가장 먼저 입사했던 나는 프리셉터뿐 아니라 모든 선배들의 감정과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혹독한 신규 시절. 그럼에도 단 한 번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2년 차, 3년 차가 되자 말로만 듣던 “일이 재미있다”는 시기가 왔다.

타 부서에서 헬퍼로 온 동기가 말했다.
“너 진짜 일 잘한다.”


어느 파트든 능숙하게 적응했고, “우리 연차가 없으면 응급실 안 돌아가”라며 귀여운 건방도 부리던 때였다.


‘대학병원 응급실 간호사’라는 타이틀은 어느새 내 인생의 대표 정체성이 되었고,
부모님께도 나는 언제나 자랑거리였다. 취업 후 비교적 높은 연봉을 받았고 적금도 들고, 새 차도 사고, 자취도 시작했다. 그리고 그 타이틀은 결혼할 때도 나에게 유리한 명함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토록 원하던 일인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3년 차가 지나고, 후배가 생기고, 슬슬 체력과 감정이 소진되기 시작했다.
동기와 선배들에겐 하소연을 했지만 “1, 3, 6, 9년 차만 넘기면 괜찮아져.”라는 말만 돌아왔다.
공허함은 커졌고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수다, 술, 연애 같은 유흥거리에 의지했다.
하지만 그건 감정 해소가 아닌 감정 소비였다. 그럴수록 내 몸과 마음은 더 무너져갔다.


매일 바뀌는 것 없이 툴툴 대는 동료들과의 불평, 불만도 진절머리가 났다.
그래도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내 현실이 나아질까.

나는 어떻게 하면 다시 ‘간호사’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왜 그토록 바라왔던 일을 함에도 행복하지 않은 걸까.

밤 근무를 하고 잠 못 드는 그 시간마다 탈 임상을 고민했다.
대학원을 가면 좀 나아질까, 엔클렉스 준비, 공무원, 공기업 준비를 위해 동기들과 후배들이

퇴사를 한다고 한다. 결혼, 육아를 병원의 도피처처럼 떠나버리고 퇴사하는 선·후배, 동기들을

보면서 씁쓸하지만 부러웠던 감정을 애써 부정했다.


동기들과 선배들은 잘 참고 일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만 계속해서 방황하고 있는 것 같다.
두 번의 로테이션 후에도, 나는 그저 영혼 빠진 기계처럼 같은 일을 반복하며 현실을 부정했다.


그 시절, 스트레스 해소라는 명목 아래 동기, 선배들과 술을 마시고,
의미 없는 부정적 한탄을 하는 데에만 시간을 썼다.
동기들의 긍정적 사고 전환을 위한 외침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연애를 할 때면 남자 친구와 있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 연애 초반, 상대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익숙함이 찾아오면, 권태감도 금방 따라왔다.

이 무렵, 나는 잠꼬대하면서도 일을 했다고 한다.


우선, 응급실을 벗어나면 해결될 줄 알았다. 그래서 로테이션을 신청했다.


“더는 못하겠습니다.”


왜 그렇게 서러운지 눈물을 줄줄 흘리며 파트장님과 면담을 했다.

5년 차였던 나는 로테이션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여러 차례 면담과 설득 끝에 부서 이동을 했다.


다 해결될 것 같았지만 나는 다시 매일 어딘가 꽉 막힌 기분으로 퇴근만을 기다렸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났다.
환자들에게 대하는 내 모습이 싫었다.
'나 이렇게 못된 마음으로 계속 일해도 되는 걸까.’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내 발로 병원까지 찾아가 상담 치료도 받았다.


비교적 안정적인 연봉과 삶은 시간이 갈수록 나를 붙잡는 족쇄가 되었다.
차곡차곡 적금을 들고, 재테크를 공부하며 탄탄한 삶을 그려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주는 안도감은, 동시에 더 큰 불안과 두려움을 함께 안겼다.

익숙해진 보상 심리는 쉽게 바뀌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나를 돌보는 법을 몰랐다.
외부의 안정에 기대면 기댈수록, 이상하게 더 외로워졌다.


출산과 육아휴직 제도가 잘 갖춰졌다는 이 병원에서도, 복직 후 더 힘들어하고 지쳐가는 선배들을

보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익숙한 환경을 마치 특권처럼 여기며 후배를 괴롭히거나, 매일 남의 이야기에

집착하는 하이에나 같은 선배들과 한 공간에서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이건 내가 바라던 미래가 아니었다.

“배운 게 이것뿐이라 다른 걸 할 수 없어.”


많은 간호사들이 그렇게 말했고, 나 역시 그 말에 갇혀 있었다.

취업 걱정 없이 바로 안정적인 삶을 시작한 건 분명 축복이었다.

하지만 그 안정감은 어느새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그 사이, 보상 심리에 기대 소비만 늘어났고, 병원이라는 프레임 안에서만 세상을 해석하려 했던 내 시야는,
마치 좁은 틈새로만 바깥세상을 엿보는 듯했다.


그래서, 변화를 결심했다.
두 번의 로테이션도 해봤지만 해답은 아니었다.
의욕은 날마다 줄어들었고,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갔다.
간호사로서의 자부심도, 열정 가득했던 눈빛도 사라져 갔다.


더는 ‘간호사’라는 정체성 하나로 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안정적인 직업이라도, 나를 지치게 하는 일은 오래갈 수 없다.

나는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부정하지 않는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여전히 내가 아끼는, 소중한 내 일부다.
하지만 이제는 ‘안정’보다는,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게 되었다.


지금도 간호사라는 직업을 사랑한다.
그건 내가 진심을 다해 살아낸 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일'이 아닌 '삶'을 중심에 두고 살아보고 싶다.

내가 나로서 숨 쉴 수 있는 삶.
지속 가능한 열정을 위해, 나는 다시 나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에게 '간호사'란?

이라는 정답을 찾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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