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완전히 뒤집혔다.
확실한 계획을 세우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퇴사 소식을 알렸다.
“호주 간호사로 가는 거야?”
사람들은 물었다. 검색해 보니, 영어 점수만 있으면 간호사 면허를 전환할 수 있고 영주권까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런 선택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지만, 일단 가능성은 열어두기로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마치 국제운전면허증을 바꾸듯, 몇몇 서류만 준비하면 끝나는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영어 점수가 이미 준비된 사람에게는 정말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나는 늘 나 자신을 믿어왔다. 원하는 것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결국 손에 쥐었던 나였기에, 이번에도 해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2-3달 안에 영어 점수를 만들었다는 후기를 보며 해 낼 수 있을 거라 의심하지 않았다.
두 달 안에 끝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매일을 계획표로 채웠다.
그러나 그 첫걸음은 상상보다 훨씬 길었고, 결국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비자 기간이라는 ‘시한폭탄’을 등에 달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실패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나를 조여왔다. 내 인생에서 가장 파격적인 도전이었던 만큼, 스스로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결코 우스워지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어쩌면 이런 마음가짐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13번의 시험.
989시간의 기록된 공부 시간.
500만 원을 훌쩍 넘긴 시험과 과외 비용.
그 사이, 불안과 우울, 그리고 한 줄기 희망이 번갈아 가며 밀려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버티는 일도, 나를 믿는 일도 점점 더 어려워졌다.
“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걸까.”
“왜 운은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 걸까.”
가끔은 세상을 원망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후반부에 들어서며 독학의 한계를 인정하고 도움을 구했을 때, 튜터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목표 점수를 받는데 크게 무리가 없어요”
피가 말라가는 듯한 불안감 속에서, 모의고사는 나를 더 애타게 만들었다.
튜터들의 말은 더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다.
매번 모의고사 점수는 목표 점수를 넘어섰다.
어느 순간 시험보다 포기가 더 어려워졌고, 나는 점점 더 지쳐갔다.
“한 번만 더.”
“이번에는 정말 될 것 같아.”
그렇게 반복하며 마지막이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품고, 한국 돈으로 45만 원이 넘는 시험 응시료를 ‘도박 기계에 동전 넣듯’ 아무렇지 않게 결제했다. 운만 따라주길 바라며, 연달아 시험을 예약했다.
장난처럼, 실제 점수는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1~3점 차이에 매달리며 희망을 품었다.
“이제 정말 다 왔다”라고 느끼던 그 순간,
거짓말처럼 사이클론 소식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