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 하나?’
그 생각만은,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시험에 떨어졌지만, 내 퇴사는 결코 충동도, 무모함도 아니었다.
그래서 후회도 없었다.
물론, 쉽지 않았다.
텅 빈 통장 잔고 앞에서, 계획했던 목표들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순간 앞에서,
나는 멍하니, 그리고 또 뜨겁게 고민해야 했다.
내가 쏟아부은 노력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상상 이상으로 날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억울했다.
부정하고 싶었고, 흔들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나는 하나의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실패도 결국 결과라는 것을.
그리고 그 결과는 때때로,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신호일 수도 있다는 것.
오히려 그 실패는,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다시 묻는 계기가 되었다.
호주에서 내가 배운 가장 큰 가치는 ‘삶의 여유’였다.
사소한 인사 한마디, 따뜻한 미소,
그 작은 태도가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직접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시선에도 휘둘리지 않고 살아가는 자유.
그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나는 온몸으로 깨달았다.
그래서였을까.
‘호주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흔들리지 않는 삶은 장소가 아닌, 나의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것.
그게 바로, 나만의 자유였다.
부모님은 끝까지 내 워홀을 반대하셨고, 몇몇 사람들은 내 선택을 평가하며 뒷말을 했다.
그 시선이 두렵고, 때로는 창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본다.
늘 내 노력이 원하는 결과로 이어졌던 삶에서,
‘실패’라는 단어는 어쩌면 내가 꼭 받아들여야 했던 소중한 메시지 아니었을까.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처음으로, 성공이 아닌 실패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나만의 기준을 갖게 되었다.
그 기준은 내 시선을 바꾸어 놓았다.
‘잃은 것들’이 아니라, ‘내게 남은 것들’을 바라보는 눈.
우리는 보통 실패를 끝, 혹은 멈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방향 전환의 사인이자 삶이 내게 보내는 진심 어린 피드백이라는 것을.
그 피드백은 때로 너무 냉정하고, 잔인하기까지 하다.
“지금 이 방향이 아니야.”
“이 방식으로는 너를 지켜낼 수 없어.”
“그 목표는 너의 것이 아니야.”
실패는 이렇게 나에게 속삭이듯, 때로는 거칠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 속삭임을 무시하지 않고 들여다볼 때, 그 속에는 늘 나를 위한 안내표지가 있었다.
우리가 실패 앞에서 무너지는 이유는,
그것이 곧 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실패는 내가 누군지 잊지 않게 해주는 거울이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이 목표는 진심이었나, 아니면 타인의 기대를 좇은 걸까?”
“나는 왜 이 상황에서 흔들리는 걸까?”
이 질문들을 마주하며, 나는 점점 더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기준'으로 나를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성공을 통해 기뻐하지만,
실패를 통해 단단해진다.
실패는 ‘의심 없는 나’를 처음으로 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그 흔들림 덕분에,
나는 더 깊이 스스로를 들여다보았고, 겉이 아닌 속을 다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건 마치
“이제껏 살아온 방식만으로는 다음 챕터를 열 수 없어”라고 알려주는 일종의 성장 신호처럼 느껴졌다.
늘 잘해왔던 사람은 자칫 타인의 아픔을 모르기 쉽다.
하지만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누군가가 좌절 앞에서 고개를 숙일 때
"그 마음 알아”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다.
실패는 나를 겸손하게 했고,
그 겸손은 나를 더욱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도전을 응원할 때,
그 진심이 조금은 더 깊어졌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제는 실패를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한다.
그 실패가 있었기에 나는 더 나은 방향으로 더 단단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니까.
이제 나는 안다.
실패는 나를 망치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기회를 준 것이었다는 걸.
실패 덕분에,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의 모습이 더 분명해졌고
그 모습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는 믿음도 생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30대 여성의 이상적인 삶’—커리어, 결혼, 육아—는 분명 의미 있는 길이다.
하지만 그런 안정감은 때때로, 자유와 도전을 멀어지게 만든다.
나는 그런 안정적인 삶을 꿈꾸면서도 그에 반하는 도전을 택했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게 지금의 나를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는 불확실함 속에서도 나의 기준과 삶의 가치를 지켜내고 싶다.
언젠가 마주할 소중한 나의 사람들을 위해,
그 사람에게 당당한 내가 되기 위해,
지금 나는 나를 단단히 세워가는 중이다.
똑같은 실수로 다시 괴로워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더 단단해진 ‘미래의 나’를 위해.
간호사라는 나만의 정답을 찾아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