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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의수박 Sep 07. 2018

마지막 퇴근을 했다.

지독했던 여름이 갔다.

어제 마지막 퇴근을 했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잘 실감나지 않았다. 마지막 근무가 뭐 대수일까 싶어. 벌써 조금씩 책상에서 내 개인짐들을 거둬간지 며칠되었고, 인수인계도 그 전날 끝낸 상황이었다.

관리팀에 전달해야 할 서류들을 전달하고, 컴퓨터에 남아있는 내 흔적들을 지워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출근이었다. 책상 위에 쌓인 명함을 보면서 조금 마음이 어지러웠다.

3년 남짓, 그래. 열심히 명함을 주고 받았네.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 명함은 곧 나였다. 그동안 수고했어, 00과장. 마지막 명함까지 모두 파쇄했다.

직원들과 점심을 먹고, 친한 동료와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그간 고생했노라고, 덕분에 회사생활이 조금은 더 각박하지 않았다고 마음을 주고 받았다. 사무실에 돌아와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짐을 쌌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사무실을 나오자, 우리팀원이 쫒아나와 내 손을 꼭 잡아주며 선물을 안겨줬다. 홀가분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울컥했다. 남은 시간 고생하라고 한마디 해주려고 했는데, 울컥한 마음에 아무말도 못하고 손인사를 겨우했다.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있는 힘껏 심호흡을 했다. 울지 말아야지..  조금 후, 다른 팀원이 나와 고생하셨다며 나를 불러세웠다. 함께 고생했던 우리팀원들의 마지막 얼굴표정과 인사가 고마웠다.  


퇴사 결정을 하고, 업무를 정리하고, 인수인계를 하며 가장 걱정스러웠던 우리 팀원들.

아직 1,2년차밖에 안된 우리팀원들이 이 프로젝트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어, 경력직의 후임자를 요청했지만 회사에서는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팀원들에게 최대한 상세히,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인수인계를 해줬다. 남은 과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예산은 어떻게 써야하는지, 그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들의 경우의 수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버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고, 못할 짓인가 싶었다.

퇴사일이 확정되고, 팀원들한테 메일을 썼었다. 우리가 함께여서 어려웠지만, 잘 이겨낼 수 있었고 프로젝트가 무사히 진행될 수 있었다고, 덕분에 함께해서 즐거웠고, 고마웠다고. 정말 그랬다. 혼자였으면 절대 못했을 프로젝트들. 이 회사에 나는 확실히 프로젝트 협업을 풀어가는 방식과, 팀장으로서 내 역할과 위치에 대해 고민했고,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


집에 와서도 한참동안 마음을 추스릴 수 없었다. 팀원들의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업무와 관련된 모든 단톡방을 나갔고, 우리팀이 있는 단톡방엔 마지막 인사를 했다. '생각지 못한 배웅에 너무 많이 고마웠고, 언제든 힘들면 연락해요. 언제든지 맛있는 밥과 술을 사줄테니.'  그리곤 차마 단톡방을 지우진 못했다. 마음 한 모퉁이를 남겨뒀다.


어제 잠들기 전 퇴사일기를 쓰려고 했는데, 결국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 잔뜩 쌓인 짐들을 하나씩 정리하려고 했는데, 결국 하나씩 펼쳐보기만 한 채 못했다.

내가 이 일에 이렇게 애정이 있었구나... 성급하게 지우려고만 하지 말고, 기록해둬야겠다.

마음을 거두는 일은 이처럼 어렵다.


퇴사를 했다. 출근하지 않는 것이 영 어색하지 않다. 연차로 하루 쉬는 기분이다.

이런 마음이면 어떻고 저런 마음이면 어때. 연차로 쉬는 것 같은 기분이 끝나면,

그때, 이제 뭘 하면 좋을지 생각해봐야지.


잔뜩 미뤄뒀던, 내 마음 들여다보기를 시작하기 좋은 가을인걸.

지독했던 여름이 갔다. 가을의 초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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