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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속 조약돌에 지치지 말 일이다

by 몽유

"당신을 지치게 하는 것은 오르려고 애쓰는 눈앞의 산이 아니라, 당신 신발 속의 조약돌이다."

"It isn't the mountains ahead to climb that wear you out; it's the pebble in your shoe."

ㅡ 무하마드 알리



라니냐 때문인지, 이제 지난 겨울이라 말할 수 있는 지나간 몇 개월 동안은 바다날씨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그 어느 해 겨울보다 변덕이 심한 날씨에 그렇잖아도 힘든 계절인 겨울을 나기가 만만한 것이 아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해도 차가운 계절이 겨울인데 말이다.

게다가 나름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래서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아온 기상청의 해상예보도 비교적 잘 들어맞았던 계절이었던 듯하다. 희한하게도 좋지 않은 것은 어째 또 잘 맞히다니 어이가 없어지려 한다.

하지만, 이제 라니냐가 사라진단다.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애를 먹이며, 고생시킬 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니었나 보다.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고, 또 한 편으로는 못내 아쉽기도 한 것이 영 찝찝함이 남는다.


바람과 너울성 파도 그리고 풍랑주의보로 인해서 지난 며칠도 바다에 나서지 못했다. 배를 몰고 바다로는 나서지 못해도 배는 관리를 잘해야 한다. 염분기 잔뜩인 바다 위에 떠서 이리저리 살랑거리며 흔들리는 배다. 하루라도 배를 보지 않으면 은근히 걱정거리가 생겨나니 천상 뱃놈인가 보다. 그렇게 늘 해오던 대로 엔진룸 곳곳을 살펴보고, 괜스레 걸레질도 하면서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가는 배를 보았다. 그리고, 선장실로 올라와서 시동을 걸었다. 출조를 하지 않아도 사나흘에 한 번은 시동을 걸어봐야 한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그런데, 시동을 건지 몇 분이 지나 갑자기 알람이 뜬다.

"Important, sea water press low, reduce RPM"


엔진냉각 시스템 계열인 해수압력이 낮으니 rpm을 줄여라는 것이다. 혹시나 싶어서 스트레이너를 살펴보고 난 후, 선미 배수구를 살펴보니 해수냉각수가 배출되지 않는다.

해수가 배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곧 해수가 유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수유입 펌프가 이물질로 막혔거나, 해수를 펌핑해서 엔진외부를 냉각시키고, 부동액과 청수를 냉각시키는 임펠러에 문제가 있거나, 펌프가 나갔거나. 아무튼 문제의 원인을 찾아서 수리해야 한다.


내가 살펴볼 수 있는 간단한 점검은 끝냈고, 경험이 없었던 문제이다 보니 정비기사와 통화를 했고, 몇몇 선장들과도 통화를 하며 원인을 찾으려 했다. 역시나 우려했던 대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다. 갖가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조언은 없다. 그나마 옆배 선장인 민선장 말대로 하나하나 순서대로 씨체스터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일이란 것은 순서가 있는 법인데, 매뉴얼도 없고, 무턱대고 임펠러를 탈거해서 될 일이 아니다. 결국 내 생각대로 임펠러 탈거는 제일 나중으로 미루고, 씨체스터 밸브를 잠그고 스트레이너부터 해수가 지나가는 파이프를 일일이 점검하며 성가심을 참으며 문제점을 해결했다.


이제 얼치기 정비사가 되어가지만, 불과 얼마 전 같았으면 대뜸 짜증부터 냈을 것이다. 대충대충 배를 짓는 바람에 이 무슨 고생이냐며 짜증스러워했을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짜증스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배를 인도받아 운항을 하며 사소한 문젯거리가 처음 생겼던 그때부터 as 한번 제대로 받지를 못했으니 그럴만하지 않을까. 약속의 의미가 이토록 다른 이들이 있다니 그것도 놀라운 일이기도 했지만, 아무튼 성가시다고 할 정도로 물어보고, 배워가며 고쳐서 운행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고, 경험했던 일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앞으로도 얼마나 많을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헛웃음도 짓고, 이리저리 궁리하여 고친 스스로가 대견하다 싶다. 지레 겁부터 먹고 이걸 혼자서 어떻게 고쳐하며, 그때까지 통화했던 여타의 다른 선장들 조언대로 했거나, 정비기사부터 불렀더라면 멀쩡한 임펠러를 새것으로 교환해야 했을 것이고, 출장비며 부품비며 쓰지 않아도 될 수리비를 썼으리라.


역시 생각을 달리하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하니 내 안의 한계가 더욱 명확해진다. 어떤 어려운 문제일지라도 반드시 문제의 시작은 내 자신에게서부터 라는 말이 더욱 실감된다.


일의 성공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저기 멀리에 동떨어져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내가 저걸 어떻게 해' 라는 자기 자신이 설정한 한계와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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