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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웃으면 너도 웃잖아!"

by 몽유

지난밤 창밖 가로등 불빛 아래, 커다란 돌틈바구니를 끼고 오랜 시간을 견딘 매화나무가 빨간 꽃망울을 열기 시작했다.

며칠 꽃샘추위에, 엄동설한에도 보이지 않던 눈까지 내려 애써 맺은 꽃망울이 얼어버렸으면 어쩌나 했더니, 다행히 철없는 사람의 부질없는 걱정일 뿐이었나 보다.

봄은, 계절의 봄은 그렇게 성질 급한 사람들의 부지런한 채근에도 시간이 되어야만 농익어가는 계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가 보다.


하지만, 역대급 최악의 내수경기와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그 심연의 끝을 알 길이 없는 경기침체에 근심 가득한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인간사의 봄은 아직이다.

뜬구름 같은 권세를 좇아 엄동설한의 차가운 거리로 그토록 선한 이웃들과 아이들까지 내몰고는 나 몰라라 하고 있는 세월의 모양새가 아직도 진정한 봄이 멀었다고 한다.

마음이야 하루라도 빨리 그 차갑고, 칙칙한 어둠에서 벗어나고 지만, 물가는 계속 고공행진 중이고, 이웃들은 어둠이 내리면 차가운 거리로 나서야 하니 저절로 마음속까지 얼어붙는 것을 어찌해야 하는 것인지.


사람 살아가는 세상에 근심걱정거리가 없을 수야 없는 것이라, 체념하고 살다보면 결국 죽어나가는 것 또한 사람의 일인 것을.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는 일이고, 온갖 생각들로 머리 박 터지게 궁리를 해도 답을 찾을 길 없는 난제라면 차라리 웃어버리고 말아야 하겠다.

골머리 박 터지는 생각들로 되지도 않는 궁리라면 인상 쓰가며 주름살 늘리는 것보다는 웃는 것이 좋겠다.


고교 시절.

대충 얼핏 지나쳐가며 생각해도 좋았던 그 시절.

다른 친구들도 그랬겠지만, 동갑내기 친구들 외에 멋짐이 뿜뿜 하는 좋았던 선배들이 몇몇 있다.

대개의 고등학교가 그렇지만, 내가 졸업한 거창고등학교는 특히나 선후배 간의 우애가 돈독했으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봄ㆍ가을 두 차례의 예술제를 학생들만으로 준비를 해야 하니 경험 있는 선배들이야 그렇다 쳐도 신입생들은 자연스럽게 선배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그러니 선후배들 간의 친분은 대물림되어 이어졌으니.


나도 그렇게 선배들과 잦은 접촉이 있었던 후배이기도 했다.

특히나, 1학년 때에는 바로 위 학년인 2학년 선배들보다 3학년 선배들과 더욱 친했었는데, 그 멋졌던 선배들 중에 유독 좋아했던 멋진 선배가 있었다.

그를 좋아하고 따랐던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미소가 떠나지 않았던 잘 생긴 그 얼굴이 단연 엄지손가락으로 꼽는 첫 번째 이유이다.

만날 때뿐만 아니라, 멀리서 보아도 볼 때마다 항상 웃는 얼굴. 기분 나쁘고 화가 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화를 내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 혼이 난 적이 절대로 없을 듯하지만, 있었더라도 얼굴을 찡그리며 그 잘 생긴 얼굴을 망치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되는 선배이다.


언제였던가 딱 한 번 그 선배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리고, 요즘 이따금씩 그 선배의 대답이 떠오르곤 한다.


"화를 내고, 좋지 않은 기분대로 해서 나를 화나게 했던 그 일이 해결된다면 나도 그렇게 하겠지. 하지만, 그렇게 될 리도 없고, 실제로 그렇게 해결되지도 않아. 그리고, 그럴 때마다 화를 내면 나도 너도 더욱 기분이 좋지 않게 될 텐데. 왜 그러겠어? 내가 웃으면 너도 웃잖아."


우리 옛 어른들의 속담에도 '웃는 낯에 침 뱉으랴'라는 속담이 있다.

웃는 얼굴에 어찌하여 침을 뱉을 수 있을까, 온전한 사람이라면 절대 그럴 수는 없다.

나에게 웃는 얼굴로 좋게 대하는 사람에게 나쁘게 응대하거나, 화를 낼 수 없는 것이 또한 인지상정이다.


현생에서 실제로 좋지 않은 분위기의 상황,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저렇게 웃으며 분위기를 바꾸려는 누군가의 노력으로 분위기가 반전되는 기분 좋은 경험을 얼마나 자주 가졌던가.

첫 만남의 어색함을 깨뜨리고, 화색이 돌진 않더라도 경직된 분위기를 없애려는 사람의 노력이 얼마나 반갑고 좋았던가.


사람은 좋은 사람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것 또한 사람이라면 당연한 인지상정이다.


웃자!

화가 나더라도 웃자!

인상 쓰이고 감정 상하더라도 웃자!

화를 내도 안 풀리는 일이겠고, 웃는다고 해서 풀리는 일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자!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니, 오늘 하루도 웃으며 보내자!

잠시 잠깐 내 웃음으로 실 없이 보이는 사람이면 어때!

정작 나는 실없는 사람이 아닌 것을!

그러니 웃자!

오늘도 즐겁게 웃으며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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