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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유 Jun 11. 2024

바다에선 옹골진 모래성을 쌓을 테다

이따금씩 바다에는 

누군가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상처만을 질질 끌고서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나쳐 온 이들이 있다

어딘가 한 군데씩은 상처로 구멍이 숭숭 뚫린 이들은

애써 자신의 상처를 감추지도 않고 드러내고서는

구멍 뚫린 기억은 메우고 휑한 가슴은 도려낸다


상처마다 곪아서 터진 노란 진물이 흘러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하게 래성을 쌓는다

기다랗게 누운 성벽은 콘크리트만큼 옹골지다

모래성 안에는 작은 마을까지 몇 채씩 들어섰

쓰러질 듯 기울어진 모래탑엔 햇살이 눈부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얗게 부서지는 이빨을 드러내며

파도가 밀려 나와 삼켜 버리고 만다

그러면 이들은 옆으로 자리를 옮기고는

또다시 무심한 듯 옹골진 모래성을 쌓는다


언제쯤엔가 모래성을 다 쌓을 수 있을게다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덤벼드는 바다에도 견디고

구멍 뚫린 기억을 메우고 휑한 가슴을 도려내도

아무렇지도 않게 옹골진 모래성을 쌓을 테다

기다랗게 드러누웠어도 작은 마을과 모래탑에

햇살은 눈부시고 옹골진 모래성을 쌓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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