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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유 Jun 04. 2024

그 아침 고래 구경

아버지의 미소

고래가 잡혔단다

학교 갈 준비를 하던 어린 나를 붙잡고

그 아침에 아버지는 고래 구경을 가자셨다


동지나해로 조기잡이에 나섰던 경남호가

달포가 채 되지 않아 만선으로 입항했다고도 하셨다

그 아침에 삼천포항 위판장에 고래 두 마리가 누웠다

투망배에 걸린 놈들인지, 정치망에 걸린 놈들인지

시꺼먼 놈들이 허연 배를 까뒤집고 누웠다


어린 내 기억 속

고래는 시꺼멓고 배가 하얀 커다란 몸집이

둥치가 얼마나 컸었는지 한참을 올려다본 후에야

덩그러니 누웠던 고래의 한쪽 눈동자가 보였다

사람들에게 잡혀 이젠 바다를 잊어야 하니

슬픈 눈을 하고 있을 거라는 내 예상은

초점을 잃어 멍했던 그 커다란 눈에

갈피를 잃었다


웅성거리며 자꾸만 모여드는 사람들

딱 그만큼씩 밀려 나가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기관장 삼촌이 목마를 태웠다

그제야 고래의 커다란 몸집이 한눈에 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아버지 모습도 보였다

커다랗고 노란 참조기가 보기 좋게 누워있는

수많은 고기상자 사이에서 바라보고 계셨는데

입가엔 옅은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침에 내게 보였던 그 미소였다


난 아직도 이따금씩은 그 아침을 꿈꾼다

경남호가 만선으로 입항했던 그 아침

덩그러니 누웠던 커다란 고래 두 마리

줄 지어 놓였던 수많은 노란 참조기 상자

그리고, 아버지의 옅은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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