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단련실에서 내가 본...

by 몽유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런 즐거운 기억 속에도 추억으로 남기기엔 아쉬움이 남는 사건이 몇 있었는데, 그중 하나의 이야기다.

지금은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2 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인 것이다.

평소 야자(야간자율학습)하곤 거의 담을 쌓고 지내던 나였는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야자가 당겼다니...

하숙집에서 저녁을 먹고 쉬다가 일부러 두 번째 야자타임에 맞춰서 학교에 올라와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란스러웠다.

그래서, 애들이 몰린 아래층으로 갔더니, 3학년 선배 몇 명이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막 지하 1층으로 내려가고 있었고, 선두에는 친한 선배가 복도 끝 방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아래층 즉 지하 1층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왼편으론 독서실 책상이 놓인 3학년 전용 자습실이고, 오른쪽으로 도서실과 체력단련실, 탈의실, 다용도실이 있었다.

출입구는 지금 나와 3학년 선배 몇이 서 있는 곳 말고는 없었으며, 복도 끝 방은 체력단련실이었다.


그 선배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무엇인가가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무엇인가가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호기심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평소 이 선배의 짖꿎은 장난을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괜스레 휘말리기 싫어서 그냥 나오려고 했더랬다.


그런데, 그 선배의 사뭇 진지한 그 표정은 여태껏 본 적이 없는 것이었고, 뒤에 있던 선배 둘의 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아, 이거 재미난 일이겠구나"라는 것을...


그래서 선배의 한 발짝 뒤에서 그것이 뛰어 들어갔다는 복도 끝 체력단련실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체력단련실은 두 개의 문이 있었는데, 나와 선배 몇은 바로 앞쪽의 문으로, 선배들 몇은 조금 더 가서 또 다른 문으로 들어갔다.

잔뜩 긴장한 눈으로 체력단련실을 쭈욱 훑어보니, 어둠 속에서 맨 안쪽 끝 모서리에 무엇인가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무언가에 눈을 고정해 놓고, 불을 켜려고 스위치가 있는 벽을 더듬거리는데, 분명 그 무엇인가가, 아주 차가운 무엇인가가 내 손등을 짓눌렀다.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안쪽 끝 모서리에 그 존재는 여전히 꼼짝도 않고 거기에 서 있었는데, 얼음이 된 나는 손을 누르고 있는 그것 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불 켜라 하는 소리가 들렸고 곧 불이 켜졌다.

그 찰나의 순간에 난 분명히 보았다.

모서리 끝에 서 있던 그 존재... 그리고, 불이 켜짐과 함께 사라져 버린 그 존재를.


이마를 타고 내린 머리카락이 한쪽 눈을 가리고 있었지만, 얼마 전 학교 강당에서의 에피소드를 갖고 있었던 그 아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전학을 갔다던 그 아이, 분명히 그 녀석이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한 후배.

평소 말없이 조금은 고립된 생활을 했던 듯한 그 후배.


난 그 아이의 모습을 짧은 시간이지만, 분명히 보았다.

그런데 선배들은 아무것도 보질 못한 모양인지 두리번거리기만 했고, 체력단련실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고 지목했던 선배들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라는 말로 애써 자위할 뿐이었다.


나도 아무것도 못 본 체 했고, 이 일이 어떻게 시작된 일인지 물었더니. 선배가 말해 준 것은 이러했다.

두 번째 야자타임에 맞춰서 여학생 기숙사에 귀신장난을 치려고 하얀 소복을 입힌 여자인형을 무선조종 비행체에 묶어서 기숙사 앞 공터에서 날리는데, 옥상에서 누군가가 서서 내려다보고 있더란다.

얼핏 봐서 남학생 같았는데, 이 자식이 비웃고 있는 듯하니, "야 너 누구야 빨리 안 내려와, 거기 어떻게 올라갔어?" 하고 소리를 쳤다는데, 그 소리를 듣고 기숙사 사감선생이 나왔고, 이 선배는 그대로 학교로 도망을 쳤다네.


그런데, 지하 1층 독서실로 내려가는데, 아까 기숙사 옥상에 있던 그 아이가 이 선배의 소복 입힌 여자인형을 갖고 앞서서 가고 있더란다.

그래서 ""하고 불렀는데, 갑자기 뛰면서 체력단련실로 도망을 쳤다는 거지.


아마도 짧은 순간 내가 봤던 그 아이가 선배가 말한 그 아이 같은데, 이 아이는 지난 방학 때 학교 강당에서의 미스터리 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으며, 학교에 제대로 적응을 못하고 스스로를 고립시켜 나가더니 결국 전학을 갔다고 들었던 아이였다.


후배들로부터 전해 들은 학교강당의 미스터리는...

방학 동안엔 특별한 일이 아니고선 강당이 잠겨 있는데, 어느 날 지나가던 아이들이 보니 어떻게 들어갔는지 이 아이가 강당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더란다.

어떻게 들어갔겠지 하고 다들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이 아이가 정문으로 향하는 것을 본 아이들이 따라갔더니 굳게 잠겨있는 정문 앞에서 사라졌고 피아노 앞에 있더란다.


이 이야기는 계속 떠돌았고, 선생님들이 물어도 아무런 말도 안 해줬다고 하더니 결국 어느 날엔가 전학을 갔다고 했다.

전북 어딘가에서 거창으로 왔던 아이이고, 내성적인 성격에다가 학교성적에 대한 걱정이 많은 부담이 되기도 했었나 보다 싶더라.

그것 말고도 몇 가지 기행을 후배들이 전해줬었는데, 지금은 기억 속에서 잊혔다.

그리고, 나중에 들린 이야기로는 고향으로 전학을 간지 얼마 안 되어 자살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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