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방학을 우리 3형제가 외가에서 보내며 즐거웠던 기억들이 많았지만, 막내이모와의 미꾸라지 천렵은 지금까지도 단연 재미 있었던 추억으로 기억된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조금은 덜 했던 날이었던 듯하다.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던 막내이모가 쉬는 날이라며 고기와 간식거리를 사 왔는데, 거의 매일 파릇파릇한 생깻잎지와 김치, 고추와 오이무침으로 세끼를 먹고 있던 우리 3형제에게는 이모가 사 온 간식과 고기반찬은 영양식이 따로 없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고기를 굽고 하며 점심을 먹었는데, 얼마나 맛있게 허겁지겁 먹었는지 분명 그런 날이 있었는데, 어떻게 먹었는지는 분명한 기억이 없으니, 여하 간에 간식까지 몇 개 먹고 나니 이모가 미꾸라지 잡으러 갈래 그러는 것이다.
그 이전 아주 어릴 때 기억에도 막내이모와 어머니와 함께 미꾸라지를 잡으러 갔던 기억이 있었지만, 그때는 꿈이런가 싶은 오래된 기억 속의 날들이었다.
주저하는 기색이라곤 없이 외양간 한쪽 귀퉁이의 빨간 고무대야에 포개져 있던 파란 원형의 플라스틱 소쿠리 두 개와 양철버킷 하나를 챙겨 들고 막내이모와 함께 미꾸라지를 잡으러 나섰다.
외가의 텃밭을 지나 조금만 걸어 나오면 제법 넓은 또랑물이 흐르는 냇가가 있었고, 냇가의 가장자리에서 깊은 곳은 그때 180센티를 약간 넘었던 내 키의 무릎 정도 깊이였다.
이모는 능숙하게 수초들을 헤집고는 한 움큼 뭉쳐진 수초들의 뿌리 끝에 소쿠리를 대고, 한쪽 발로 수초의 안쪽부터 밟으며 더듬어 나왔다. 그러면 수초 끝자락에서 놀란 미꾸라지며 붕어, 민물장어 놈들이 쫓겨서 소쿠리에 담기게 하는 것이었다. 나와 바로 밑 동생 둘이서 이모가 하는 대로 수초들을 한 움큼씩 움켜쥐고, 수초 뿌리 끝에 소쿠리를 대고 위에서부터 수초들을 밟으며 내려오면, 다 밟고 내려와서 소쿠리를 들 때마다 미꾸라지들이 제법 들었었고, 작은 붕어들도 예쁘게 누워서 파닥거렸었다.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미꾸라지와 붕어, 장어까지도 몇 마리가 버킷에 들었는데, 또랑을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 저수지를 지나서도 또 한참이었다.
동생들도 나도 생판 처음 해보는 미꾸라지 잡이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양철버킷을 들고 또랑의 위쪽을 걷기도 하고, 또랑의 수초를 헤집기도 하며 겁 없이 앞서 나가기도 했다.
이모는 미꾸라지를 잡아 버킷에 털어 넣으면서도 저수지 아래 두세 그루 서 있던 돌배나무부터 눈이 겨우 닿아 보이는 멀리 우물가에 있는 논까지 전부 외가의 논이었다고 했다. 큰외삼촌이 사업한다고 팔아먹었다는 이야기를 했고, 큰 이모가 장사한다고 팔아갔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저수지에 놀러 가거든 혹여나 노랗고 하얀 큰 잉어를 보거든 해코지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덧붙이기도 했다.
그리고서는 몇 해전에 저수지에 빠져 죽은 친구이야기를 하며 씁쓸해하기도 했는데, 그때 저수지에 빠져 죽었다는 이모의 친구는 내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의 누나이기도 했다.
몹쓸 친구들의 꾐에 넘어가 몹쓸 사내놈들 몇몇에게 몸이 더럽혀졌고,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몇 차례의 시도 끝에 결국 저수지에서 안타까운 생을 마쳤다는 것을 친구로부터 들었던 적이 있었다. 소문난 얼짱이었다는 것과 공부를 아주 잘한 여고생이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중2 때의 일이었다.
그렇게 이모와 우리 3형제는 한참이나 더 또랑을 헤집고 다니며, 양철로 된 버킷 가득히 미꾸라지와 붕어, 민물장어 몇 마리를 담고서 어둑해지는 논길을 따라 걸어서 외가로 돌아왔는데, 미꾸라지를 잡으며 오를 때엔 거리감이 없더니 한참이나 걸어서야 외가의 검정 기와가 보였더랬다. 할머니께서 미꾸라지는 몸속에 머금고 있는 흙을 뱉어내게 해야 하니 조금 넓은 빨간 고무대야에 옮겨 담으셨고, 민물장어구이와 붕어찜을 해주셨더랬다. 방금까지도 숨을 꿈벅거렸던 놈들이었지만, 얼마나 고소하고 맛있었는지.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모와 함께 했던 그날 저녁은 유난히도 길었던 듯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날 먹었던 장어구이와 붕어찜만큼이나 맛있는 민물고기 음식은 맛볼 수 없었던 듯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우리 3형제는 살짝 데친 호박잎과 생깻잎지, 계란찜과 추어탕을 매 끼니마다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