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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유 Oct 17. 2024

그해 여름날의 기억 1

- 프롤로그

군데군데 틈을 보이던 싸리담장을 듬성듬성 더듬으며 몇 발짝을 내딛자 담장만큼이나 키 낮은 싸리문이 마주한다.

살짝 비켜 밀어 들어선 풍경에는 담장 너머로 먼저 눈맞춤한 풍경 속에서는 미처 마주하지 못했던 장면도 들었다.


녹색의 깻잎을 고르고, 더 짙은 진녹색의 채소들을 다듬으며 아픈 허리를 웅크리고 계시던 나의 할머니.

그 여름날의 시작이었다.


태풍에 집을 잃고, 방학을 나기 위해 외가를 찾은 그날에도 한낮의 여름 햇살은 뜨거웠다.

버스를 타고서 20분 남짓, 파릇파릇한 논 사잇길을 걸어서 또 20분 남짓 찾아갔던 외가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나는 명절이나 할아버지 생신날 등의 특별한 날이면 이따금씩 찾아가는 외가의 고풍스러운 검정 기와가 좋았다.

외가의 그 아늑한 정겨움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리고, 그런 외가를 향해 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걷던 그 논과 논 사잇길, 그 시골길이 좋았다.


그날 외손자 삼 형제를 맞기 위해 집 앞 텃밭에서 깻잎과 고추, 오이와 양파로 새벽장을 보셨다고 했다.

그리고, 한창 먹어야 할 나이에 채소만 가득한 점심상을 차리신다며 얼굴을 붉히시고는, 곧 논으로 나가셨던 나의 할머니.




밤새 기숙사 창틀을 들어내겠다는 듯 휘몰아치던 바람 속에서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는지 모를 일이다.

송두리째 뿌리까지 뽑힌 둥치 큰 나무, 제방이 터져 물에 잠긴 마을의 집들, 작은 돌다리는 모두 끊기고 무너졌다고 했다.


학교에서, 기숙사에서 그런 광폭한 태풍이 남해안에 상륙했다는 뉴스에 귀를 기울이다가 이른 아침에 못내 참지 못하고 서둘러 고향이 같은 동기생과 버스를 탔다.


거창에서 고향집까지는 함양ㆍ산청을 거쳐서 진주로.

진주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삼천포까지다.

하지만, 태풍에 함양에서부터 도로가 내려앉고, 군데군데 길이 끊겼다고 했다.

버스기사는 거창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시동을 걸자마자 합천으로 빙 둘러 우회해서 진주로 가야 한다고 말했고, 그렇게 버스는 합천의 낯선 마을 길들을 돌아 돌아서 겨우겨우 진주로 왔다.


그리고, 고향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이미 어슴푸레하게 짐작은 하고 있었다.

기억이 남아있는 그 어린 시절부터 여름과 가을엔 태풍이 만들고 간 상처들이 꽤나 있었으니,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던 일이다.

불과 몇 개월 전에도 집 옥상에 올라 낚시로 어린 도다리와 농어새끼를 낚았는데, 그랬던 집은 형체도 없이 그 모양이 일그러졌다.

덩그러니 콘크리트 기둥 몆 개만 아슬아슬하게 쓰러질 듯 서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는 파도에 실려온 황소만우람한 시꺼먼 바윗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87년 남해안을 휩쓸고 간 태풍 셀마 때의 일이다.

그해 여름의 기억 속 아련한 이야기를 더듬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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