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물건: 태블릿
오랜 시간 날 겪어본 사람들은 눈치챘겠지만 난 사물과 제법 데면데면한 편이다. 처음 어떤 물건을 구매하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일단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두고는 오고 가며 한 번씩 눈길만 준다. 이때 주변에 꼭 나보다 궁금증을 참지 못 하고 본인이 열어보면 안 되겠냐며 부탁하는 이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단호히 나의 소유임을 상기시킨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이삼일 동안 상자는 꿈쩍 않고 같은 장소에 놓여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른 후 슬그머니 다가가 상자에 단단히 붙어 있는 테이프를 조금씩 뜯기 시작한다. 상자를 개봉하고 실체를 확인하고도 굳이 애써서 바로 사용하지 않는데 왜 그러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도 다분히 조심스럽고도 게으른 성격과 더불어 한 살씩 나이가 먹을수록 호기심의 부피가 줄어들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큰 맘먹고 구입한 거대한 액정 태블릿도 마찬가지로 실제로 사용하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심지어 매거진 미팅을 위해 방문한 차에디터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어차피 안 쓸 거면 싼 값에 팔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며) 태블릿을 바라볼 때도 티셔츠의 소매를 당겨 쌓인 먼지를 슥슥 닦으며 거절의 제스처를 보였을 뿐.
그러고 보면 내가 처음 태블릿을 구매했던 건 약 3년 전쯤이다. 사실 돈도 없었지만 직업으로 사용될 거란 생각조차 못 했던 터라 작고 저렴한 중국제 보드 태블릿을 사용했다. 첫 책의 원고를 빨리 마감해야 하는 시기에 잠시 한국에 가게 됐는데 밤마다 까만 태블릿에 잘 먹히지 않는 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를 뒤에서 한참 바라보던 엄마가 물었다. 왜 계속 같은 선만 긋고 있냐고. 감사하게도 이러고 있는 날 안타깝게 여긴 엄마가 그때 선물해준 게 아이패드 프로였는데 지금까지도 너무 잘 사용하고 있다. 사실 한 곳에 진득하게 앉아서 작업하는 스타일이 아닌 나에게 최적의 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후 침대에 반쯤 누워서, 소파에 걸터앉아서, 심지어 움직이는 차 안에서도 함께 하는 존재가 되었다.
사실 허리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할 상황이었다. 결국 다양하게 구부정한 자세로 작업을 하던 나에게 갑자기 허리에 큰 고통이 찾아왔고 그때부터 뒤늦게나마 자세와 도구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먼저 딱딱하고 높이도 맞지 않는 의자를 처분하고 인체공학적이라고 광고하는 제품을 구입했다. 그리고 많은 고민의 시간 끝에 결국 책상에 세워놓고 사용하는 액정 태블릿을 질러버린 것이다. 그 후 한참 동안 그 도구는 전원이 켜지지 않은 채 책상 한 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거진 일을 시작하면서도 일단 하겠다는 결심이 생기면 곧바로 행동에 옮겨야 하는 차 에디터에 비해 난 조금 느릿하고 천천히 업무에 적응하는 스타일이었다. 이 같은 성향의 차이가 어쩔 땐 갈등의 작은 시작점이 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 오히려 서로를 보완해주는 역할이 큰 것 같다. 과거 회사에서 많은 시간 동안 엑셀 파일을 들여다보던 내가 (그렇다고 이 업무를 좋아하는 건 절대 아니다.) 자연스레 재무 회계 업무를 담당하고 나보다 조금은 더 새로운 걸 다루는 데 거리낌 없는 차 에디터가 인디자인의 많은 부분을 도맡아 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이 나눠졌다. 그리고 새 작업을 시작하면서 잘 풀리지 않아 애를 먹던 날 배려해 많은 행정적인 부분을 차 에디터가 맡아 주기도 했다. 물론 조금 더 긍정적인 파트너십을 위해 끊임없이 이런 부분들을 함께 얘기하며 고쳐나가고 있다.
어렸을 때 생각해보면 내가 가지지 못 한, 혹은 나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끌리곤 했다. 물론 그렇게 시작한 관계들의 끝이 항상 아름다웠던 건 아니지만. 그런데 사업이라는 분야는 서로 전혀 다른 사람들이 만나 각자 잘하는 것을 존중해주며 같은 목적을 향해 일하는 게 시너지가 극대화되는 것 같다. 물론 서로 공감하고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이 일치한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얼마 전 드디어 나를 쏙 닮은, 꽤 그럴듯한 작업실이 생겼는데 이 과정을 곰곰이 살펴보면 내 태블릿의 성장 단계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어렸을 때 혹은 혼자 자취할 때는 당연하게 잠을 자는 공간 바로 옆에 책상이 함께 있었다. 그 책상은 간단한 음식을 먹는 식탁으로 쓰이기도 하고 발 하나를 올리고 동영상을 시청하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다 독일에서 나의 첫 작업실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는데 제이미가 1년 동안 운영하다 접은 치킨을 파는 가게에 있던 낡은 사무실이었다. 솔직히 사무실이라기보단 창고에 가까웠지만 그곳에서 작업을 해도 되냐는 나의 부탁에 버리려던 책상을 갖다 놓고 바닥엔 폭신한 매트를 깔아 놓는 등 나름 신경 써서 작업실처럼 꾸며준 것이다. 하지만 겨울의 한가운데 오래된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차가운 공기를 작은 전기난로와 털 매트로 이겨내기는 쉽지 않았고 오래된 벽에서 느껴지는 음침한 분위기는 그다지 작업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물론 작업이 풀리지 않는 핑계는 백 가지도 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처음으로 제대로 작업실이 생긴 난 신이 나서 사진과 그림들도 벽에 붙이고 지나친 자기애의 소유자 마냥 내 책과 그림들을 액자에 곱게 넣어 여기저기 배치해 놓았다. 역시 이 독특한 성격의 한 부분 덕분에 며칠 동안은 하루에 몇 번씩 들여다보기만 하고 굳이 식탁에 노트북을 들고 나와 일을 했지만.
투룸 매거진을 창간한 지도 벌써 6개월째가 되었고 난 여전히 자주 불안하고 가끔은 다 때려치우고 싶은 충동이 생기다가도 다시금 나 자신을 붙잡으며 사업을 하고 있다. 정말 마음의 안정이 안될 때면 속으로 주문처럼 말한다. 잘 되면 좋고, 안 되면 또 그만이라고. 정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으면 어쨌든 무언가 남는 게 있을 테니, 그럼 다시 또 일어날 힘이 될 테니 유연한 태도를 가지려고 한다. 그리고 (나만의) 작업실에서 태블릿 펜으로 카툰의 배경을 노랗게 칠하면서 오늘도 기대해보는 것이다. 투룸매거진의 미래도 이처럼 알맞은 속도로 하나하나 성장해 갈 거라고.
이 글은 모국과 이국 두 개의 공간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투룸매거진 6월호에 실린 에세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