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한국의 공간엔 화분이 3개가 있다. 하나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집에서 가져왔고 나머지 둘은 텅 비어있는 벽장이 너무 허전하다며 제이미가 앙증맞은 화분 둘을 선물해 줬다. 원래는 여름에 독일에 잠시 들어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 집의 초록을 담당했던 셋을 잠시 엄마집에 맡겨두었다. 그러다 보니 이 집이 더욱 삭막해졌다. 도로 들고 오기엔 또 귀찮고.
누리는 이 집에 있을 때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소파에서 보낸다. 가끔 장난감으로 놀아 줄 때 빼고는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쉬고 있는 거라 생각하려 해도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아 독일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산책하는 데 보내고 있다.
'집'이라는 공간은 독일이나 한국, 어느 나라에 위치하느냐보다 내 취향과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공간이 어디인지, 그리고 누구와 함께인지가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요즘은 독일의 우리 집이 그리울 때가 많다. 특히 이 시기에 오이와 고추, 상추와 깻잎을 키우고 1년 중 햇볕이 집중돼 있는 독일의 여름을 즐겼던 내 작은 정원이 유독 생각난다. 열려있는 문 사이로 정원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던 누리도 비슷한 생각일까? 간식을 던져주면 입에 물고는 부지런히 정원으로 나와 잔디와 잡초가 공존하는 풀들 사이에 자리 잡고는 눈을 감고 쩝쩝대며 맛을 음미하던 내 개. 말을 할 수 없으니 물어볼 수도 없고 그저 답답할 뿐이다.
다시 독일에 돌아가면 본격적으로 정원 구석진 왼쪽 땅에 작은 텃밭을 가꿔볼 생각이다. 우린 벤치에서 맥주 한 잔을 홀짝이고 누리는 옆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고개를 들고는 지나가는 이들의 냄새를 킁킁 맡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