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뭐든 직접 적고 기록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여행지의 숙소를 정할 때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가 방안에 "책상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공용으로 같이 방을 이용하는 게스트 하우스나 호스텔은 어쩔 수가 없지만
에어비앤비나 호텔 방 같은 경우에는
제공된 사진을 꼼꼼하게 찾아보고 되도록이면 책상이 있는 곳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렇게 신경 써서 숙소를 선택해도 장기간의 여행 중에 책상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만족할 만큼 생길 리 만무하다.
주로 카페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카페의 책상이 항상 적절한 게 아니어서
이런 나의 욕구를 한껏 충족시키기 위한 선택지는 바로 "도서관'이었다.
같은 문화시설이지만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누구나 들어와서 맘껏 보라고 반기는 곳이고
도서관은 왠지
'내가 여기 주민도 아닌데 들어가서 이용해도 될까?'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장벽이 높은 곳이었다.
그러한 편견에 여행 초창기에는 쭈뼛쭈뼛 겉만 보고 돌아서곤 했었는데
지난 여행에서 나는 스스로 이러한 편견을 시원하게 깨버렸다.
용기를 내어 도서관에 들어서는 나를 막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고
그들의 책상에 앉는 나를 저지하는 곳도 없었다.
책상에 앉아 몇 시간 동안 시간을 보내도 눈치 주는 곳 하나 없었다.
그 지역 그 도시의 "도서관"은 너무나 훌륭한 나의 책상이 되었다.
밴쿠버 공공도서관
Vancouver Public Library
조금은 고풍스러운 외관에 내부만 슬쩍 보고 나오려고 했지만 너무나 멋진 자리를 발견해서 시간을 보낸 도서관이다. 이 공간이 너무나 좋아서 다음 날 다시 찾아와 몇 시간쯤 있다 가려했는데 버스터미널에 락커가 없었던 관계로 다시 방문하질 못하고 밴쿠버를 떠났다.
자연채광의 멋스러움에 한껏 빠져서 그곳에서의 시간을 즐겼다.
이렇게 답답하리만치 고풍스러운 외관을 감상하며 내부로 들어서면
천창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기가 막힌 로비가 따뜻한 기운으로 방문객을 반겨준다.
이 내외부의 반전으로 건물에 대한 편견도 사라졌고 도서관에 있어서의 빛에 대한 편견도 바뀌었다.
저 유리 커튼월 안의 공간은 어떤 느낌일까...
저 자리에 한 번이라도 앉고 싶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서 안쪽으로 들어가서 올라가 보았다.
들어가는 나에게 그 어떤 제재도 없었다.
3층이었던가 4층이었던가
아까 로비에서 올려다보았던 바로 그 자리에 와보니 책상이 하나 비어 있었다.
책상 위에 등도 따로 있었고 심지어 충전도 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 책상에 앉아서 햇살과 공간을 즐겼다.
다음 일정 때문에 시간이 부족해서 금방 일어섰지만 분명 다시금 와서 몇 시간이고 머물고 싶은 자리였다.
(c)2017.mongpary all rights resreved.
시애틀 공공도서관
Seattle Public Library
이 도서관은 이미 한번 길~~~게 글로 쓴 적이 있다.
이전 브런치 글⬇
반나절밖에 즐기고 오지 못 한 게 아쉬운 곳이었고 여행자의 시간적 한계가 무척이나 아쉬운 곳이었다.
정말 이 도시에 산다면 매일매일 이용하고 싶은 그런 도서관이었다.
(뭐 또 막상 실제로 거주한다면 이런저런 핑계로 자주 이용하지 않겠지만ㅎㅎ)
올라가는 입구에 경비원이 서있어서 살짝 긴장까지 하였으나 반갑게 인사까지 해주며 이용안내를 해주더라고. 이때부터 도서관을 들어가는데 두려움이 많이 없어진 것 같다.
1층 로비에서부터 2층, 3층 올라갈수록 시간을 보내고 싶은 책상이 너무나 많이 보였으나
일단은 최상층으로 올라가서 자리를 잡았다.
빈자리가 많은 책상에 앉아서 한참 동안 비 오는 시애틀의 오후를 즐겼다.
시애틀이라는 이름도 멋진 도시에 와서 이렇게 이 지역 사람들과 같이 앉아
밀린 여행일기를 쓰고 있는데 혼자 이 상황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면서도 행복해서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 너무나 자연스럽게 착석해서 마포도서관인 줄!
스스로의 모습에 이때부터 자신감을 많이 얻은 것 같다.
(c)2017.mongpary all rights resreved.
뉴욕 공립도서관
New York Public Library
이 날은 사실......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먹고 자서 늦게 일어나 대충 씻고 카메라도 가지고 나오지 않은 컨디션 최악의 날이었다.
(이때만 해도 사진은 DSLR로 찍었...)
<홀푸드>에서 먹을 거리를 사서 <브라이언 파크>에 앉아 졸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숙취에 너무 힘들어 하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구경도 할 겸 들어가 본 도서관이다.
뉴욕 공립도서관과 브라이언 파크는 바로 옆에 붙어 있다.
들어갈 때 가방검사는 했는데 요금이나 뭐 그런 건 없었다.
화장실을 가려고 들어간 것이지만
급히 검색해보니 3층에 해리포터 영화에나 나올 법한 열람실이 하나 있다고 해서 그 쪽으로 향했다.
물론 급한 일은 해결을 하고^^
관광객이 많았다. 입구에 서서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도 처음엔 그 사이에 껴있었다.
그런데
어라~ 근데 이거 여기까지 들어왔으면 저들처럼 책상을 써도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뚫고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 착석을 했다.
(관광객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제한적이라고 하는데 나는 당시에 그 일부를 이용했던 것 같고
게다가 항상 개방하는 건 아닌 것 같으니 가기 전에 검색이 필요한 듯하다...)
그런데 와~ 정말 너무나 근사한 공간이었다!!!
여기 안에서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도 민폐인 것 같아서 아래 사진 저거 한 장 겨우 남겼는데
정말로 이 열람실은 "3층 로즈 메인 리딩 룸"을 검색해서 제대로 된 사진을 한번 보기 바란다.
책상에서 충전이 됐었던가?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데 많은 사람들이 노트북을 이용하고 있는 거 보면
충전도 가능했던 거 같고
운이 좋게도 나는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이 멋진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노트에 일기도 적고 여행정리도 하고 끄적끄적 밀린 이야기들을 적어 내려갔다.
적절한 높이의 책상과 적절한 위치의 스탠드를 제대로 이용하면서
그리고 고풍스러우면서도 진중한 이 분위기를 만끽하면서...
이 시간이 너무 좋았던지라 남은 여행 기간 중에 또 이용하려고 하였으나 역시 다시 가지는 않았다.
왜 여행 중에 꼭 다시 와야지! 하고 마음먹은 건 한 번도 지키질 못하는 건지~
이 날은 숙취때문에 많은 시간을 여기서 보냈지만 사실 여행 중에 긴 시간을 투자해 한 곳에만 머무르는 건
사실 쉽지는 않은 일이지!
포르토의 세랄베스 미술관
Museu de Arte Contemporânea de Serralves
건물을 보러 미술관을 갔다가 전시실을 다 보고 나서 지하쪽을 갔더니 거기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뭔가 느낌적인 느낌이 있어서 들어가 봤더니 이런 흥미로운 공간이 나왔다.
눈길을 확 끄는 이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데 나는 또 보이는 저 책상이 너무나 탐이 나서 내려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래 보이는 저 소박한 책상에 자리를 잡았다.
이래서 내 가방은 항상 무겁다. 언제 어디서 마음에 드는 책상을 발견할지 모르니 여행 다이어리와 수첩, 필기구만큼은 늘 가지고 다녀야 하니까 가방은 언제나 무겁지만 오늘도 즐겁다.
밀린 일기와 여행 계획을 정리하며 남은 일정에 대해서 엄청나게 고민을 했다.
다음 일정이 카사다뮤시카...인데 그걸 포기할까!
정말 카사다뮤시카를 포기하고 싶을 만큼 여기서 더 시간을 쓰고 싶었다.
여행자에게 주어진 시간이란 아무리 한 도시에서 넉넉한 기간을 잡는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한달살이를 할 만큼 여유롭지는 않으니까...)
순간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 게 못내 아쉽다.
고민을 했지만 카사다뮤시카를 포기할 수는 없어서 아슬아슬한 시간에 자리를 떴다.
미술관에서의 숨은 도서관이란... 이 날 즐거움의 충분한 이유였다.
(c)2017.mongpary all rights resreved.
프랑스 님의
Carré d'Art-Musée d'art contemporain
카레 다르 현대미술관이라고 해석은 되는 것 같은데 저층은 도서관이고 그 위에 미술관 그리고 최상층에 카페 겸 레스토랑으로 이루어진 건물이다.
나는 도서관을 먼저 이용하고 나중에 카페에서 바로 앞에 보이는 메종 카레를 감상하며 점심을 먹었다,
이 미술관의 백미는 단연코 메종 카레가 보이는 최상층의 카페이다.
미술관이지만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사실 도서관을 이용했다기보다는 1층에서부터 책상이 많이 보여 여기저기 돌아다녀보다가 로비에서 가까운 책상을 이용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착석을 하고 책상 위의 전등을 찾아서 켰는데 앞 테이블에 있던 친구들이 이거 전등도 켜지잖아 하면서 불을 켜더라.
그러고 나서 이것저것을 적고 있었는데
어떤 프랑스 여자애가 내 앞에 앉더니 나한테 프랑스어로 뭘 묻더라.
영어를 전혀 못하길래 파파고로 어찌어찌 해석해보니 노트북 충전은 어떻게 하냐고 묻는 거였더라.
아니 그걸 왜 나한테.........................................................ㅠ.ㅠ
너무 자연스럽게 물어봐서 그게 오히려 이상했다.
ㅎㅎㅎ
왜냐하면 내가 이 님 이라는 도시를 돌아다니는 동안 동양인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이 친구가 인종에 대한 편견이 정말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니면 이제는 어딜 가도 동양인들이 많이 있으니 이게 자연스러운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익숙한 듯이 앉아있어서 관광객이라는 생각을 못했구나! 라는 망상까지 생기니
어깨가 조금 으쓱해지고 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정말 공부하기 좋은 책상이었고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c)2017.mongpary all rights resreved.
정작 미술관은 건너뛰고 바로 최상층의 카페로...
내가 혼자여서인지 동양인이어서인지 메종 카레가 바로 보이는 난간 쪽 자리를 주지는 않았지만
영어를 못하는 내 담당 직원이 나랑 소통이 잘 되지 않는데도 너무너무 친절하게 응대해 주어서 굉장히 기분 좋은 식사를 했다. 생각보다 가격도 높지 않았고 한 시간 동안 멋진 전망 보며 정말 좋은 대접받으면서 굉장히 기분 좋은 식사를 했다... 풀코스 식사에 기차를 놓칠 뻔했지만 미술관만 이용하지 않은 만족스러운 미술관이었다.
(c)2017.mongpary all rights resreved.
이후 여행 기간 동안에는 도서관을 거의 만나지 못한 것 같다.
그르게 이후에도 도서관에 많이 간 줄 알았는데 다른 곳을 보느라고 바빴나 보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 일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너무나 책상이 고. 프. 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