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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ㄹim Apr 12. 2019

개나리 아파트 。
















그 날.


이십년을 살던 아파트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던 날.


요날 무슨요일에 아파트 헌덴다  


오래전부터 엄마가 말해주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날이 되어도 영 실감이 나질 않았더랬다.


하지만

 아침 출근길에만 해도 꼿꼿하게 서 있던 아파트는 저녁 퇴근길에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참말로 거짓말처럼.
 

아파트가 서 있던 집터에는 어느새 성벽같은 바리게이트가 쳐져 있었고 그 안으로 일개미같은


트럭들이 부서져내린 아파트 살점을 분주히 실어 나르는 모습을 보고서야.

이제 우리집을 영영 볼 수 없겠구나 싶어 별안간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무서움 인지 허무함인지 딱 이거다 할 수 없는 낯선 감정에 압도당해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질러메고 있던 가방끈만 꾹 움켜잡고 자꾸만 새어나오려는 눈물을 꿀꺽 삼키는 것 뿐이었다.



 세상은 한 순간에 변해, 영원할것만 같던 존재도 언젠가는 한 순간에 사라지고 잊혀지고 마는 것




막연히 알고는 있었지만 영 남일 같았던 진리를 난생처음 피부로 느꼈던 날이기도 했다.








아파트가 헐리면서 이 동네를 떠나온지 몇 년이 흘렀고 참으로 오랫만에 근처를 지나게 되면서 괜한 감상에 빠져버렸다.

내릴 곳도 아니면서 부러 내려 살던곳 주변을 걸으며 한참을 서성였다.




지나는 사람에게 이 곳에 아파트 단지가 있었어요 라고 하면 에이무슨 말도안되는소리~ 라는



대답을 들을 만큼 이미 이곳은 도로로 확장되어 차들이 생생달리고 거대한 빌딩이


하늘에 닿을듯한 기세로 솟아있었다.

아름드리 수목들로 둘러쌓였던 우리 집이 여기에 있었는데 말이지...


마흔살을 바라보던 아파트는, 사람으로 치면 노쇄한 노인이었다.

말년에는 시도때도없이 옥상에서 물이 새, 옥상과 닿아있던 우리집 방들의 천장 


곳곳엔 곰팡이꽃이 피곤 하였다. 뿐만이랴    

하루에도 몇번씩 덜커덕 거리며 멈추는 엘레베이터 덕에 자주 심장이 발등에 떨어지기도 했었다.

죽기전에 정을 떼려고 저런다. 하는 말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줄만 알았는데,

건물도 집도 아파트도 다를 바 없었다.


더러운 꼴 못볼 꼴 다 보여주는구나. 아유 이놈의 아파트가 헐리면 소원이 없겠다. 하곤 했지만.

여름이면 옥상으로 베란다 호스를 연결하여 난간을 타고 주렁주렁 자라나는 호박이며  오이에 물을 주었고, 주말이면 부르스타에 후라이팬 들고와 앉아 손 닿으면 있는 상춧잎 뚝뚝 뜯어 삼겹살을 구워먹었던 집이었다.

요즘같은 세상 서울한복판 그것도 13층 공동주택에서 마당 있는 집에서의 삶을 만끽하게 해주었고

오랫동안 가파른 계단의 허름한 빌라 옥탑층에 살던 우리가족에게,

처음으로 '엘레베이터 있는 집'에 산다. 하는 설레임과 뿌듯함을 안겨 준. 참 고마운 집 이기도 했다.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과

엄마 아부지의 40대 50대가 오롯이 담긴 집.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


낯선 빌딩이 세워진 옛 집터 주변에 서서 추억만 더듬거리는데 문득 우리가 살던 늙은 아파트 이름이 입 속에 맴돌았다.



개나리...


개나리 아파트.



아날로그적이다 못해 촌스럽기 짝이 없는 이름이었다.

철근과 콩크리트로 이루어진 거대한 덩치에게 병아리 수줍은 주둥이 같은 샛노란 이름이라니...

헐크같은 근육질 남자에게 꽃분이 라는 이름을 붙이는것과 뭐가 다를까.

이십년동안 살 때는 전혀 몰랐는데 이제와 보니 아파트 이름이 참 해도 해도 너무하네 싶었다.


그러다가도

또 어찌보면 이토록 나긋하고 감수성 넘치는 아파트 이름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일 모레 내일 모레 하며 숨을 할딱이던 아파트는 기어이 재건축 판정을 받았고 
얼마 후 우리가족은 이십년만에 이삿짐을 싸게 되었다.


떠나던 날. 집안의 가구를 다빼고 모든 점검을 마치고 이제 출발하자 하던 때.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홀로 옥상에 올라 붉게 녹이 슨 난간을 가만히. 꼭 쥐어보았다.


'고마웠어. 수고했어. 고생했어..'


아파트가 내 이야기를 들었을리 만무하지만 쥐고 있던 난간이 문득 따뜻하게 느껴졌던 건.
(기분탓이란걸 알지만서도)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교감이었다고. 나는 믿고 싶다.


쥐고 있던 난간에서 손을 떼고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옥상을 내려와 떠나왔던 그 날처럼.

좀처럼 떠날 생각을 않는 몸을 돌려 다시 정류장을 향했다.










후르륵 부수고 후르륵 세우고  빠르게

 가볍게  자극적이게  멋지게 !


아무래도  도시는 너무 리 변하고 변해서

 같은 사람에겐 가끔.

아니 사실은 무척이나 자주 벅찬  같다


버스 창가에 머리를 대고 기대 내내 생각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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