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시간을 만나면 또 다른 아름다움이 된다
내가 일본에 머무르기 시작했을 땐 4월 초중순이었다. 일본의 벚꽃은 3월 말부터 예쁘다고 전해들었기에 4월 중순이 될 즈음엔 벚꽃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낮았다. 그래서였을까 기분좋은 따뜻함으로 시작된 한 낮의 나만의 일상 루틴에서 마주하게 된 벚꽃에 더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내가 마주하게 된 벚꽃은 하얀 빛깔 또는 분홍 빛깔로 가득한 만개한 벚꽃이 아닌 이제 막 이파리가 돋아난 푸르름을 머금은 벚꽃이었다. 사람에 따라선 벚꽃의 절정이라고 치지 못할 순간이다. 나 또한 그랬다. 고등학생 무렵부터 봄의 벚꽃 나들이는 당연한 수순이었으며 늘 하얀 꽃잎을 잔뜩 매단채 아름다움을 고고히 뽐내던 벚꽃나무의 모습이 생각난다. 슬슬 이파리가 날 즈음이면 '곧 지겠다' 라는 끝이 먼저 보였기에 더 알록달록해진 벚꽃나무의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았다.
여행이 시작된 이후 원하는 대로 선택할 나의 오늘과 내일이 기대되서였을까, 세상의 짐에서 잠시나마 벗어난 것 같은 홀가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여행이 주는 그 자체의 설렘 때문이었을까? 어쩌다 종종 마주하게 되는 또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게 바람에 흔들리는 벚꽃을 바라볼 때면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 있게 되었다. 벚꽃나무는 늘 그랬듯 본인의 수순대로 변해갔을 뿐인데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진 것이다.
모든 생명과 물건이 가진 매력은 고유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빛을 바래가는 것이 아닌 시간이 지남으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작은 깨달음을 얻으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나만의 화각이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분명히 사회의 어려움과 고달픔은 존재한다. 다만 우리에게 동등히 주어진 삶이라는 시간동안 각각이 가진 매력을 다양히 담아내고 그것에 감탄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순간마다 주어진 모든 상황들도 귀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행복이라는 가장 간절하고도 중요한 가치에 더 빨리 그리고 많이 다가갈 수 있는 힌트를 얻은 것 같은 기분과 함께 행복함이라는 우산 아래 하루가 또 저물어갔다.